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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윤봉길 · 이봉창 국적이 북한?…수정 않는 중국 바이두

중국의 역사 왜곡, 비단 어제오늘 일은 아닙니다. 윤동주 시인이 중국 지린성 옌볜 조선족자치주 룽징(당시 만주 북간도)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중국이 윤동주 시인의 국적을 중국으로, 민족을 조선족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입니다. 당시 룽징은 중국 땅이었지만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터전 중 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윤동주 시인은 한글로 시를 썼고, 그의 시에서 중국 한족 소녀를 '이국 소녀'로 칭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중국의 대표적 포털 사이트 바이두 백과사전에는 여전히 윤동주 시인의 국적이 '중국'으로, 민족은 '조선족'으로 표기돼 있습니다.

지린성 옌볜 조선족자치주 룽징에 세워진 표석. 중국은 2012년 윤동주 시인의 생가를 복원하면서 '중국 조선족 애국 시인'이라고 적힌 표석을 세웠다.

윤봉길 · 이봉창 의사 국적에 '조선'…'조선' 누르면 북한 사이트로 연결

광복절을 맞아 우리나라 독립운동가 50명이 중국 바이두 백과사전에 어떻게 표기돼 있는지 전수조사해봤습니다. 독립운동가 50명의 명단은 성신여대 서경덕 교수로부터 받았습니다.

50명 중 국적과 민족이 제대로 표기된 사람은 헤이그 특사로 활약했던 이위종 선생 한 명뿐이었습니다. 이위종 선생의 국적은 '한국'으로, 민족은 '한민족'으로 돼 있습니다.

바이두 백과사전의 이위종 선생 사이트

김구, 안창호, 유관순, 이회영, 김좌진, 이시영, 방정환, 이육사, 심훈, 최용덕 선생 등 11명도 그나마 용인할 만했습니다. 이들의 민족은 표기가 안 돼 있는 대신, 국적은 한국으로 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 11명 가운데는 이번에 유해가 카자흐스탄에서 고국으로 돌아온 홍범도 장군도 포함돼 있습니다. 국학 보급과 민족문화 앙양에 힘쓴 정인보 선생은 반대로 국적이 표기돼 있지 않은 대신, 민족은 '조선인'으로 표기돼 있습니다. 이준, 나운규, 송몽규, 이동녕, 이승훈, 주시경, 김도연, 김병조, 신익희, 이윤재, 정인승, 홍진 선생 등 12명은 국적과 민족이 아예 표기돼 있지 않습니다.

바이두 백과사전의 홍범도 장군 사이트

그렇다면, 50명 중 절반인 다른 25명은 어떻게 표기돼 있을까요.

먼저, 안중근 의사와 안 의사의 사촌동생 안명근 선생은 민족은 표기돼 있지 않고 국적이 조선으로 돼 있습니다. 두 분이 황해도 출신이고 생전에 대한민국이 건국이 안 됐으니 국적을 조선으로 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조선'을 누르면 설명 사이트로 이어지는데, 북한 인공기와 함께 북한 소개 사이트가 뜬다는 것입니다. 같은 논리라면, 일제강점기에는 북한도 세워지지 않았으니 북한 사이트로 연결시키는 건 맞지 않습니다. 바이두가 이 분들의 국적을 한국으로 표기하기 싫었다면 조선으로 표기하되 북한 사이트로 연결되게 하지 말았어야 합니다. 평안도 출신 홍범도 장군의 국적을 한국으로 표기한 것과 비교해도 일관성이 결여돼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바이두는 윤봉길, 이봉창, 김원봉, 안재홍 선생의 국적도 조선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윤봉길 의사는 충남 예산, 이봉창 의사는 서울, 김원봉 의열단장은 경남 밀양, 안재홍 선생은 경기도 평택 출신입니다. 이 중 김원봉 단장을 제외한 3명의 국적 '조선'을 클릭하면 역시 북한 설명 사이트로 연결됩니다.

바이두 백과사전에 윤봉길, 이봉창, 안중근 의사 등의 국적이 '조선'으로 돼 있고, '조선'을 클릭하면 인공기와 함께 북한 설명 사이트로 이어진다.

신채호 선생 등 23명을 중국 소수민족 '조선족'으로 묘사

바이두의 '민족' 표기도 문제입니다. 바이두는 윤동주 시인뿐 아니라 윤봉길, 이봉창, 김원봉, 김규식, 민영환, 박은식, 서재필, 신채호, 이상설, 이범석, 여운형, 민종식, 신규식, 손병희, 유인석, 안재홍, 이상재, 양기탁, 이범진, 조병세, 최익현, 황현 선생 등 독립운동가 23명의 민족을 조선족으로 표기했습니다. 이 또한 당시는 대한민국 건국 전이기 때문에 넓은 의미의 '조선인'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조선족'도 누르면 설명 사이트로 이어지는데, 다름 아닌 중국의 소수민족 조선족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주로 지린성·헤이룽장성·랴오닝성 등 동북3성에 분포돼 있으며 두만강, 압록강, 목단강, 송화강 유역 등에 집중 거주하고 있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적어놓았습니다.

바이두의 조선족 설명 사이트. 주로 중국의 동북3성에 분포하고 있다고 돼 있다.

바이두는 기존 '민족'이라는 표기 외에 일부 독립운동가에 대해선 '민족족군(族群)'이란 표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민족족군'은 굳이 우리 말로 옮기면 '민족집단'이라 할 수 있는데, 바이두는 이를 '민족보다 넓은 개념'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조선족과 한민족의 뿌리는 같기 때문에 민족족군의 개념으로 보면 하나로 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주장하고 싶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그래도 중국 조선족 설명 사이트로 이어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 중국인이 바이두 백과사전만 보면 대한민국 독립운동가들을 중국의 소수민족, 나아가 중국인으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윤동주 시인이 그렇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이위종 선생에 대해선 '한민족'으로 올바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얼마든지 제대로 표기할 수 있는데도 바이두가 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민족족군'이란 개념까지 끌어들인 것은 꼼수에 불과합니다.

서경덕 교수는 지난해 말부터 바이두에 정정을 요구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바이두는 수정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바이두 백과사전은 위키백과처럼 개인이 편집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취재진이 직접 신채호 선생의 민족 정보를 수정해봤습니다. 조선족으로 돼 있는 것을 한민족으로 고쳤습니다. 바로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이 참고 자료 등을 대조해 심사를 한 뒤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사흘 뒤 '귀하가 제출하신 신채호 정보 수정은 통과되지 않았습니다'라는 문자메시지가 왔습니다.

바이두가 보내온 문자메시지. 취재진이 신채호 선생의 민족 정보를 수정하려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역사를 쓰는 자는 반드시 그 나라의 주인되는 한 종족을 먼저 드러내어…." 단재 신채호 선생의 '독사신론' 서론에 나오는 글입니다. 우리 고대사를 되찾는 등 누구보다 민족의식 고취에 앞장섰던 신채호 선생. 선생은 본인의 민족이 조선족으로 돼 있는 걸 아신다면 심정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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