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이번 주말 비 예보가 있어서 좀 주춤할까 하는 기대도 있지만 더위를 꺾기에는 역부족일 것으로 보인다. 기온은 주중보다 조금 내려가더라도 습도가 높아져 체감온도는 폭염 기준을 넘을 가능성이 높다. 서울의 7월 최고기온 평균은 32도로, 1994년에 이어 역대 2번째로 높은 것으로 기록됐다. 29일 기상청은 8월 첫주에도 서울 낮 최고 34도, 최저 26도 수준의 더위가 계속될 것으로 예보했다. 최저기온이 26도를 넘는다는 건 낮에 더울 뿐 아니라 열대야도 계속된다는 걸 의미한다.
[그게 뭔데?] 어느 정도 더워야 '폭염'?
우리나라만 더운 것도 아니다. 세계기상기구가 '극한의 여름'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유럽과 미국도 이미 지난 6월부터 40~50도를 넘나드는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일부 매체는 이들 국가에서 타이어나 신호등, 플라스틱 쓰레기통이 폭염에 녹았다고 소셜미디어 사진들을 소개하기도 했다(아래는 문제가 된 사진들…. 페이스북 캡처).
이런 사진들은 각국 언론사들의 팩트 체크 결과 폭염이 아니라 불에 녹은 것이거나 굳지 않은 아스팔트 위로 차를 운행했기 때문 등으로 밝혀졌지만, 사람들이 폭염 탓이라고 별 의심 없이 받아들일 정도로 각국의 폭염이 심한 것이 현실이다.
중위도지역은 역사적으로 볼 때 극심한 기후변화가 상대적으로 적어서, 먹고 살 만한 나라들이 발달한 지역이다. 그런데 왜 이런 곳에 폭염이 발생할까. 전 지구적 온난화가 영향을 크게 끼쳤다. 최근 북극지방 기온이 오르면서 적도와 기온 차이가 줄어들고 제트기류가 약해졌다. 제트기류가 약해지면 극지의 공기가 곳곳에서 그보다 낮은 위도의 지역으로 흘러내리게 되고, 동서방향 대기 흐름을 방해한다. 중위도 지역 곳곳에 생긴 고기압들은 정체되며 열기가 쌓이게 된다. 대표적으로 북미 지역에 대규모 산불을 부른 폭염이 이런 연유로 발생했다.
[WHY?] 올해 폭염, 2018년 대폭염과는 어떻게 다를까?
대체로 폭염이라 할 정도의 더위가 여름철에 사람들을 힘들게 할 때는 '열돔' 현상이 발생한다. 열돔이란, 건축물의 둥근 돔 지붕처럼 뜨거운 공기가 어떤 지역을 덮고 있어서 열기가 빠져나가지 않고 정체되는 상태를 말한다.
2018년 여름이 전형적으로 그런 경우였다. 당시에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강성하게 발달해 한반도를 덮은 상태에서, 아시아 내륙 서쪽 티벳 고기압 또한 한반도 상공까지 확장했다.
우리나라 땅 위에 더운 바다의 습기를 잔뜩 머금은 북태평양 고기압이 자리잡았는데, 그 위에 다시 내륙의 뜨거운 공기를 품은 티벳 고기압이 쌓여 열돔을 형성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올해는? 올해 7월도 몹시 덥긴 했는데, 2018년 만큼 지독하지는 않았다는 느낌을 받은 사람이 많다. 이유가 있다. 올 7월 초-중순, 북태평양 고기압은 남북 길이가 짧아지고 동서로 긴 형태로 발달했다. 2018년 대폭염 당시 타이완에서 중국 동부해안, 일본 전역까지 뒤덮었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었다(월말인 지금은 좀 달라졌다).
한편, 중국 서쪽 내륙에서 뜨겁고 건조한 공기를 공급하는 티벳 고기압은 당초 2018년처럼 한반도 상공을 덮을 것으로 예측되었으나, 실제로는 한반도까지 커지지 않았다. 대신 중국 북부, 몽골 등의 상공을 통해 간접적으로 한반도 더위에 영향을 줬다. 이명인 울산과학기술원 폭염특이기상연구센터장은 지난 27일 이번 폭염이 2018년 폭염만큼 맹위를 떨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 이유 가운데 하나로 '상층 고기압의 세력이 2018년 당시만큼 강하게 발달하지는 않았다'는 점을 들었다.
폭염 치고는 덜 끈끈했던 이유는?
반면 올해 7월 중에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동서로 길쭉하고 남북으로는 짧은 모양이어서, 바람도 대체로 남동쪽에서 우리 동해안쪽으로 타고 들어오는 경향을 보였다.
우리나라 동쪽 바다는 동남아쪽보다 수온이 낮다. 그래서 이쪽 바람은 수증기를 덜 품고 있다(공기는 온도가 높을수록 더 많은 습기를 품을 수 있다). 중부지방에서는 푄 현상도 나타났다.
동해안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해발 1천 미터 이상 산맥을 넘으면서 품고 있던 수증기를 빗방울로 응결시켜 떨어뜨리고, 서쪽으로 하강하면서는 고온건조한 바람으로 변하는 것이 푄 현상이다.
이 덕분에 올해 7월에는 폭염이라고 해도 습식사우나 같지는 않은 날, '찌는 더위'보다는 '굽는 더위'에 가까운 날이 많았다. 예년의 7월 하순은 습도가 80~90%까지 치솟고, 사람들은 '이럴 거면 차라리 비로 쏟아져라'하고 푸념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올해는 한낮 습도가 50-60%대인 날이 많이 나타났다. 아래 그림은 2018년 7월24일과 올해 같은 날 체감온도를 비교한 것이다(붉은색은 35도 이상, 녹색은 30도 이하).
다만 이번 주 후반부터 북태평양 고기압의 양상이 다시 변하면서, 남서쪽에서 유입되는 고온다습한 바람이 늘었다. 이로 인해 일부 지역엔 주말에 비가 예보되었다. 이달 들어 보였던 패턴과 다소 다른 '습한 폭염'으로 바뀌는 모양새다. 날씨는 언제나 변화무쌍하며, 인간의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방심은 금물] 온열질환…목숨을 위협할 수 있다
(그림=환경부 홈페이지 캡처)
더위, 비, 추위 등의 기상 현상은 얼마나 심하냐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오래 지속되느냐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준다.
그럼 이번 폭염은 언제 끝날까?
올 7월에는 한반도에 직접 영향을 주는 태풍이 없었다. 예년 7월에는 1개 정도가 영향을 주었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그럼 8-9월에는 어떨까? 7월 한반도에 오는 태풍의 개수와 8-9월에 올 태풍의 개수에는 상관관계가 없어서 현재로서는 예상이 어렵다고 한다. 지구 온난화로 기상 변동 폭이 커져서 더욱 그렇다. 태풍이 오더라도 피해는 없이 더위만 식혀줬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구성 : 이현식 선임기자, 장선이 기자, 김휘란 에디터 / 디자이너 : 명하은, 이지수/ 자문 : 정구희 SBS 기상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