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강도 거리두기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확진자가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확진자 증가세를 주도하는 것은 델타 변이의 급증이다. 델타 변이의 국내 유입이 처음 확인된 건 지난 4월18일이다. 이후 약 두달 간 국내 확진자 중 델타 변이 비율은 2.5%를 넘지 않았지만, 6월 중순 이후 상황이 급격히 바뀌었다. 요즘은 확진자 10명 중 3명, 변이 감염자 중에서는 10명 중 7명이 델타 변이 감염자라고 한다.
공교롭게도, 델타 변이 확진자의 급증은 정부가 거리두기 완화 방침을 발표했던 지난 6월20일 이후에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정부 당국자의 발언도 6월 하순과 7월 중순 사이에 상당한 온도차를 보인다. 6월 하순만 해도 델타 변이 검출율이 안정적이라며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더니, 이번주 들어서는 “매우 심각”하다는 것이다.
델타 변이에 감염된 환자는 위중증으로 악화할 위험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방대본(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지난 10일까지 델타 변이로 분류된 790명 중 32명(4.1%)이 위중증 환자였다. 전체 확진자 가운데 위중증 환자 비율(1.3%)은 물론 영국발 ‘알파 변이’ 감염자의 위중증 비율(2.2%)보다 높았다.
델타 변이는 2020년 10월 인도에서 처음 확인됐다. 델타변이의 전파력이 기존의 2.7배에 달한다는 것은 인도에서 벌어진 참상을 통해 이미 전세계에 알려진 얘기였다. 국내에서도 휴가철을 앞둔 시점에 거리두기 완화지침을 준비할 게 아니라 델타 변이가 많이 퍼진 국가들로부터의 입국자 관리를 철저히 하는 등 보다 치밀하게 대비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델타변이만 문제가 아니다. 남미에서는 람다 변이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WHO에 따르면 4월 이후 두 달간 페루 신규 코로나19 확진자의 80%가 람다 변이에 의해 감염됐고, 주변국들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도 람다 변이에 감염됐다. 람다 변이는 현재 미국과 영국 등을 포함한 29개국으로 퍼져나가는 중이다. 알파(영국발), 베타(남아공발), 델타 (인도발) 변이가 그랬던 것처럼, 람다 변이도 국내에 들어와 문제를 일으키지 말란 법이 없다. 변이의 이름은 그리스 알파벳으로 붙인다. 알파, 베타, 감마, 람다 모두 그리스 알파벳이다. 변이가 계속 발생하면 언젠가 오메가 변이도 나올 것이다.
그런데, 이런 변이들은 왜 생기는 것이고, 인간의 몸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 걸까?
[그게 뭔데?] 바이러스의 변이는 왜 생길까
바이러스 표면에는 ‘스파이크 단백질’이라는 것들이 돋아나와 있다. 이것이 세포의 문을 여는 열쇠 역할을 한다. 인간의 세포에는 ‘수용체’라는 것이 있다. 세포의 문에 달린 자물쇠라고 생각하면 쉽겠다. 바이러스가 세포에 다가와서 수용체에 딱 맞는 스파이크 단백질을 들이밀면 세포의 문이 열리고, 바이러스는 인간 세포 안으로 들어가서 자신을 마구 복제할 수 있다.
복제된 바이러스들은 해당 세포 밖으로 나와 다시 다른 세포를 감염시키며, 이 과정을 반복한다. 이렇게 감염된 세포가 늘어나면, 우리 몸은 증상을 일으키고 아프게 된다.
그런데, 바이러스가 자신을 복제해 무수히 많은 카피본을 만들어 내는 과정은 인간의 세포가 분열하는 과정처럼 정밀하지 않다. 빠르게 많이 대충 복사를 하다보니, 유전정보 카피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에러가 점점 늘어난다. 말 전하기 놀이를 생각해 보면 된다. 처음엔 비슷하게 말을 전해 나가다가 줄 끝에 다다르면 전혀 엉뚱한 말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
문제는, 이런 변이가 우리 몸의 면역체계를 속인다는 것이다.
바이러스가 우리 몸 속 세포들을 공략하게 되면, 우리 몸의 면역체계는 그 바이러스를 무력화하기 위한 ‘중화항체’를 만들어 낸다. 중화항체는 바이러스별로 맞춤형으로 만들어진다. (간염 바이러스를 무력화하기 위한 중화항체와 감기 바이러스를 무력화하는 중화항체는 다르게 만들어진다.) 중화항체는 바이러스가 갖고 있는 열쇠(스파이크 단백질)를 덮어씌워서, 바이러스가 우리 세포의 문을 열지 못하게 한다.
그런데 변이종 바이러스는, 기존 중화항체를 속이고 우리 세포의 문을 딸 수 있는 스파이크단백질을 갖고 있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자동방범시스템에 “눈 가린 복면한 놈이 강도다. 잡아라.”라고 입력을 해 놨는데, 강도가 눈 가린 복면 대신 입 가린 복면을 하고 나타나는 거다. 방범시스템은 이 침입자를 ‘강도’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통과시켜 주게 된다. 그런 일이 우리 몸 속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바이러스는 우리 몸 속 세포에 침입한 뒤 그 세포를 망가뜨리고 바이러스 복제공장으로 만든다. 그러면 우리 몸의 면역체계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태가 더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그 공장을 파괴해야 한다. 면역세포들이 나서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를 죽임으로써 우리 몸을 보호하는 것이다.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침입자(바이러스)의 정체와 전술을 알고 있다면 바이러스들의 공세를 성공적으로 퇴치할 것이다. 그러나, 처음 보는 바이러스가 처음 보는 전술로 공격을 해 온다면? 적어도 처음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다.
백신의 목표 : 감염되더라도 입원이나 사망까지 가지 않도록
그렇다면, 현재 각국에서 많이 쓰이는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모더나 등의 백신은 변이 바이러스에 대해서도 효과가 있을까? 적어도 지금까지 미국 영국 등 각국의 상황을 보면,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감염력이 강한 델타변이가 신규 감염의 52%를 차지하는 미국에서, 백신 접종을 완료(2차 접종을 마치고 2주가 지남)하면 코로나에 거의 감염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 CBS뉴스는 현지시간 10일, 전체 신규 감염자의 99.7%는 백신 접종을 완료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보도했다.
[중요한 사실] 미국·영국 연구결과 : 백신은 델타 변이에 대해서도 효과 있다
잉글랜드공중보건국(PHE)은 지난 5월22일, ‘백신 2회 접종을 마치면 델타 변이에 대해 매우 높은 예방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발표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 화이자 백신은 2차접종 후 2주가 지나면 델타 변이의 증상 발생 예방율이 88%로 나타났다. 알파변이 (기존 영국 변이)에 대한 예방율은 93%였다.
-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2차 접종을 마친 뒤 델타변이 증상발생 예방율이 60%로 나타났다. 알파변이에 대한 증상 발생 예방율은 66%로 나타났다.
- 두 종류의 백신 모두, 1차 접종 후 수주일이 지난 상황의 델타변이 증상 예방율은 33%로 나타났다. (1차 접종 후 알파변이에 대한 증상예방율은 50% 수준)
-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2차 접종을 마친 뒤 델타변이 증상발생 예방율이 60%로 나타났다. 알파변이에 대한 증상 발생 예방율은 66%로 나타났다.
- 두 종류의 백신 모두, 1차 접종 후 수주일이 지난 상황의 델타변이 증상 예방율은 33%로 나타났다. (1차 접종 후 알파변이에 대한 증상예방율은 50% 수준)
여기까지만 보면 화이자보다 아스트라제네카가 못한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PHE(잉글랜드 공중보건국)은 섣불리 그렇게 판단할 수 없다는 단서를 달았다. 백신 접종 후 형성되는 항체 프로파일 데이터를 보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의 효과가 정점에 오르는 데에는 화이자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AZ 백신의 2차분 보급이 화이자보다 늦었던 것이 증상예방율 차이로 나타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진: 맷 행콕 당시 영국 보건장관. 5월22일 발표와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2천만명 이상의 영국인 (인구의 1/3 이상)이 새로운 변이에 대해 상당한 수준의 보호를 받게 됐다. 그리고 그 숫자는 더 많은 사람들이 2차 접종을 마침으로써 매일 수십만 명씩 늘어나고 있다."
“화이자-AZ, 델타변이로 인한 위중증 예방율은 더 높을 것”
조동찬 SBS 의학전문기자(전문의)는 각종 변이가 기승을 부리면서, AZ 백신처럼 실제 바이러스를 활용한 백신의 효과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화이자 모더나 등 mRNA 백신은 우리 몸 속에서 특정 바이러스에 대한 중화항체가 많이 생겨나도록 하는 힘이 뛰어나다. (앞서 그림으로 설명한 것처럼, 중화항체는 바이러스가 우리 세포를 여는 열쇠를 못쓰게 만든다.) 그런데, 중화항체는 그렇게 작동하기 위한 조건이 까다롭다. 변이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기존 중화항체는 제 역할을 못한다. 그래서 감염되는 세포가 늘면 그때는 면역세포들이 나서서 감염된 세포를 처치해야 하는데, 이 면역세포를 활성화하는 힘은 AZ백신이 뛰어나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 AZ백신을 접종하지 않는 미국에서도, 화이자로 접종을 완료한 사람의 변이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 부스터샷은 AZ백신으로 접종하자는 의견도 나온다고 한다.
* 조동찬 전문기자의 설명 듣기
(14분대 부터 백신 관련 설명. SBS팟캐스트 '골라듣는 뉴스룸' 뽀얀거탑 289회)
한국보건의료연구원과 대한의학회의 신속 검토 연구를 봐도, 아스트라제네카와 화이자, 모더나 백신의 접종을 완료한 경우, 모든 변이(알파, 델타, 베타, 감마) 바이러스에 대해 유증상 감염예방, 입원 및 사망 예방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국내연구에 따르면, 1회 접종 완료 시 변이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입원 및 사망을 78 ~ 96%로 감소시킬 수 있었다. 2회 접종까지 완료 시 입원과 사망 위험을 86~96%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산 백신의 변이 감염 예방 효과는 의문
인도네시아는 중국산 백신에 의존한 대표적인 나라인데, 최근 변이바이러스 확산으로 위중증 및 사망환자가 늘어 곤욕을 치르고 있다. 특히 우선 접종 대상자인 의료진의 90%가 시노백을 접종받았는데, 시노백을 두 차례 접종받은 의료진 26명 중 이달들어 10명이 코로나로 사망했다고 6월 27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사진: 최근 델타변이 확산으로 사망자가 급증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장례식장 직원들
인도네시아는 지난달 초부터 델타 변이 확산으로 신규 감염자 수가 급증하면서 새로운 코로나19 진앙으로 떠올랐다. CNN에 따르면 지난달 초에 비해 신규 확진자 수가 10배 넘게 급증했다. 일일 사망자 수도 6월 초에 비해 10배 가량 증가했다.
선진국 3차 부스터샷 본격화되기 전에 충분한 백신을 국내에 들여놔야
사진: 이스라엘 3차접종 돌입
이스라엘은 벌써 3차 접종(부스터샷)에 돌입했다. 미국은 아직 2차 접종 완료율을 끌어올리는 게 급선무라며 신중한 분위기지만, 만일 3억 3천만 인구를 가진 미국에서까지 부스터샷 확보 붐이 일어난다면 우리나라의 백신 수급은 더욱 꼬일 수 밖에 없다. 국가 역량을 총동원해 계약물량이 실제로 우리나라에 도착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해야 할 이유다.
(구성 : 이현식 선임기자, 장선이 기자, 김휘란 에디터 / 디자이너 : 명하은, 이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