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포털에 자오 기사 11건 vs 윤여정 기사 4만 6천 건
중국이 아카데미상 시상식 소식을 모두 차단했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영화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 배우의 이름을 바이두에 검색해 봤습니다. 방대한 양의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아카데미상 시상식 이후에도 수십 건의 기사가 올라와 있습니다. 윤 배우의 수상 소감에서부터 윤 배우가 걸어온 길을 집중 조명한 기사까지 다양합니다. 자오 감독과는 대조적입니다. 한국 배우에 대한 중국 매체의 이런 관심이 이례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28일 오전 11시 현재 자오 감독 기사는 단 11건에 불과한 반면, 윤여정 배우 기사는 4만 6천여 건에 달합니다.
자오 감독의 아카데미상 수상 소식을 전한 중국 매체는 환구시보의 영문판 글로벌타임스가 유일합니다. 하지만 기사 자체가 영어로 돼 있고, 자오 감독의 이름도 영어 이름(Chloe Zhao)으로 돼 있습니다. 중국인들이 얼마나 이 기사를 봤을지 의문입니다. 글로벌타임스는 "중국 네티즌들이 자오 감독의 수상을 축하한다"면서도 영화 평론가의 말을 빌어 "자오 감독의 영화 '노매드랜드'는 미국 사회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중국 관객들의 관심을 끌지 못할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통상 글로벌타임스의 영문 기사는 환구시보에서 중문 기사로 함께 전하기 일쑤인데, 이 기사는 환구시보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중국의 자랑"에서 비난 대상으로…"뿌린 대로 거두는 것"
자오 감독은 왜 이렇게 중국인들의 미움을 사게 된 걸까요. 자오 감독은 베이징에서 태어났습니다. 바이두 백과사전에는 자오 감독의 국적은 중국이라고 분명히 명시돼 있습니다. 자오 감독의 양어머니는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위원으로 활동했던 중국 유명 배우 쑹단단입니다. 지난달 초 자오 감독이 골든글로브상을 수상했을 때만 해도 중국인들은 열광했습니다. 일부 매체는 "중국의 자랑"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자오 감독이 2013년 영화 잡지와 인터뷰한 내용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분위기는 180도 바뀌었습니다. 골든글로브상 수상 등으로 자오 감독이 조명을 받자, 중국 네티즌들이 자오 감독의 과거 행적을 살펴보다 발견한 것입니다. 자오 감독은 미국으로 건너가 활동하고 있는데, 8년 전 인터뷰에서 "내가 중국에 있었던 10대 시절, 그곳은 거짓말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고 했습니다. 자오 감독이 지난해 호주 매체와 인터뷰에서 "미국은 이제 내 나라"라고 말했던 사실도 잇따라 드러났습니다.
중국 네티즌들은 발끈했습니다. 어떤 네티즌은 자오 감독에게 "중국인이냐, 중국계 미국인이냐" 따졌고, 어떤 네티즌은 "중국으로 돌아오지 마라"고 했습니다. 자오 감독 영화에 대한 보이콧 움직임도 확산했습니다. 자오 감독의 영화 포스터와 자오 감독을 칭찬하는 해시태그가 중국 소셜미디어에서 사라졌습니다.
자오 감독 과거 인터뷰 내용 삭제…중국어로 수상 소감
자오 감독은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도 중국어를 섞어 수상 소감을 밝혔습니다. 자오 감독은 "중국에서 자랄 때 아버지와 중국 고전을 암송하는 게임을 하곤 했다"며 "지금도 깊이 기억하고 있는 중국 고전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중국에서 아이들에게 문자를 가르치는 데 사용한 대표적인 교과서 '삼자경'의 한 구절을 중국어로 소개했습니다. '人之初. 性本善', '사람이 태어날 때 성품은 본래 착하다'는 뜻입니다. 이 구절을 통해 중국인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려 했는지는 불분명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중국인들에게 우호적으로 비치려 했던 의도는 담긴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 매체들이 윤여정 배우에 대해 앞다퉈 보도하는 것은 분명 반길 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자오 감독에 대한 중국 매체들의 입장 변화를 지켜보면 뭔가 씁쓸한 뒷맛이 남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