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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중소벤처기업부가 세금 도둑을 대하는 방법

비대면 바우처 사업 부정 판치는데 '자진 신고'가 대책?

[취재파일] 중소벤처기업부가 세금 도둑을 대하는 방법
지난해 11월 SBS는 중소벤처기업부의 '비대면 바우처 플랫폼' 사업이 졸속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소·벤처기업과 소상공인의 비대면·디지털화를 돕겠다며 시작한 재정사업이 세금만 축낼 수 있다는 우려였다. '비대면' 의향도 별로 없는 기업들에게 억지로, 중기부가 만든 시장 안에서, 중기부 지정 업체의 서비스만, 정부 보조금 받아 최대 400만 원어치를 사게끔 해놓으니, 판매 기업과 구매 기업 사이 리베이트 등 부정이 판칠 거란 경고였다.
▶ 20인 화상회의가 400만 원? "내 돈이면 안 사"

아니나 다를까, 사업 시행 석 달여가 지나 살펴본 바우처 사업은 난장판으로 치닫고 있다. 순댓국집과 족발집 등 비대면 업무와는 애초 거리가 먼 식당은 물론, 개인택시나 미용실에까지 세금으로 개당 400만 원짜리 재택근무 앱이 지원됐다. 그런데 앱을 지원받았다는 곳은 정작 그 앱이 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쓸 줄도 모르는데…미용실 · 분식집에 '재택근무 앱'

노동규 취파용 캡처

● 미용실·족발집·개인택시가 '재택근무 앱' 72억 원어치 구입

바우처 사업은 ▲비대면 업무가 필요한 중소기업이 바우처 홈페이지를 통해 ▲중기부 지정 업체들이 파는 화상회의 등 6개 분야 비대면 서비스를 살 때, ▲정부가 대신 400만 원어치 값을 치러주는 개념이다. 서비스 공급 기업으로선 경쟁력만 있다면 바우처 손님을 상대로 400만 원씩 매출을 안정적으로 올릴 수 있다. 작년 3차 추경으로 만든 예산 3,110억 원과 올해 2,160억 원으로 모두 14만 개 기업에 '비대면화' 혜택을 준다는 게 정부 목표다.

"소상공인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을 하시는 분들에게도 재택근무가 가능하도록 한 기업 당 400만 원씩 지원을 해드리고 있거든요. 그래서 이런 것들을 또 많이 활용을 하시면 소상공인의 디지털화, 중소기업의 디지털화, 이것이 얼마큼 진전되느냐에 따라서 대한민국의 경쟁력이 확보된다고 생각합니다." -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작년 9월 28일 MBN 인터뷰)

중기부가 국민의힘 윤영석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지난달 24일 기준 전체 361개 공급기업 가운데 318개 기업이 바우처 플랫폼을 통해 매출 2,083억 원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5만8,000원어치를 파는 데 그친 곳도 있지만, 석 달 새 292억 원어치를 판 1위 기업을 비롯해 상위 10개 기업이 챙긴 보조금 소득만 1,200억 원에 달한다. 보조금을 특정 공급기업들이 독식한 셈인데, 라디오 광고 등으로 알려진 기업도 있지만 '이런 회사도 있었나?' 싶은 곳도 많다.

SBS가 이 기업들의 판매 내역을 입수해 살펴봤다. 수상한 점이 적지 않았다. 200만 원, 400만 원짜리 재택근무 애플리케이션 2개를 약 1,800개 기업에 팔아 72억 원 매출을 올린 교육기업이 대표적이다. 미용실과 족발·보쌈집, 순댓국집처럼 도무지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곳에 대거 앱을 판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개인택시가 구매한 경우도 46건, 1,840만 원어치에 달했다. 서울 남대문시장, 경기 연천군 ○○시장 등 같은 소재지에 있는 동일 업종이 같은 날 동시 구매한 경우가 많다. 회원들을 '동원'할 수 있는 시장 상인회나 미용사 단체, 개인택시 조합 등을 상대로 공급기업이 '영업'을 한 것이다.

노동규 취파용 캡처

● '단체' 상대 리베이트 미끼…조직적 대리 신청·결제 부정행위

그런데 기자가 앱을 구매했다는 이들을 찾아가 보면, 정작 자기가 앱을 산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200여 명이 제각각 앱을 사들인 것으로 나타난 남대문시장 한 패션상가 상인들도 그렇다. 이들 대부분은 자기 이름으로 결제된 앱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한 상인은 "상인회가 교육 차원에서 필요하다 해서 도와줬고 10만 원씩 받기로 했다"고 말했다. 리베이트를 약속받았다는 얘기다. 이렇게 뭔지도 모르고, 실제 쓰지도 않는 앱을 '구매'한 상인이 남대문시장 안에서만 488명이다. 한 상인은 기자 설명을 듣고 "내 이름 빌려줘서 그 기업이 400만 원씩 벌어가는 건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속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서울 강동구에선 업주 홀로 운영하는 미용실이 대거 재택근무 앱을 구매했다. 한 미용실 업주에게서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미용사 단체 지회에서 '해야 한다'고 연락 와 30만 원 받기로 하고 가입해줬다"고 털어놨다. 이 업주는 "말을 조심해야 한다, 말을 더 많이 하면 피곤한 일이 생긴다"고 말했다.

노동규 취파용 캡처

이들에게 앱을 판 공급기업 측 전직 아르바이트 직원 A 씨의 폭로는 충격적이다. 단순 리베이트 영업을 넘어, 바우처 신청에서 제품 구매까지 자신들이 알아서 했다는 것이다. 비대면 서비스가 필요한 기업 스스로 바우처 홈페이지에 '수요기업'으로 등록하고 구매 결제를 해야 하지만, 이런 과정을 공급기업 측이 대신했다는 거다. 바우처 대리 신청·결제는 중기부가 금지한 대표적 부정행위다.

A 씨는 공급기업 대표의 지시로 남대문 시장으로 출근했다고 말한다. 시장 상인회가 내준 사무실에 며칠씩 상주하며 "팀을 꾸려 하루 80여 건씩 대리 가입과 결제를 했다"는 것이다. 그가 보여준 자료엔 상인들의 사업자등록증과 납세 기록, 통신사 정보 등 개인정보가 가득했다. '작업' 편의를 위해 바우처 홈페이지 ID를 "○○301, ○○302, ○○303…" 식으로 만들어 가입했고 비밀번호는 모두 "134679a!"로 통일했다. 휴대전화 본인 확인은 "상인과 통화해 인증번호를 받아 해결했다"고 A 씨는 말했다. 누가 봐도 이상한 바우처 신청과 결제가 연쇄적으로 이뤄지는 데도 중기부는 걸러내지 못했다.

한국경영혁신중소기업협회(메인비즈협회)

● 고양이한테 생선 맡긴 격…부정 걸러낼 심사기관이 '구멍'

이런 부정을 걸러내야 할 곳 가운덴 한국경영혁신중소기업협회(메인비즈협회)도 있다. 바우처를 쓰려는 기업들을 심사·승인하는 역할도 한다. 3,000억 원 안팎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정부 사업의 한 축이 되어야 할 이 협회가 오히려 '구멍' 역할을 했다. 공급기업들이 400만 원짜리 앱을 '형식상' 구매해 줄 '고객'을 최대한 확보하려고 막무가내 영업을 해 수요기업들을 '창출'하고 대리 바우처 신청에 결제까지 하는데, 협회는 눈뜬 장님이었다.

조건을 갖추지 못한 기업들을 바우처 수요기업으로 만드는 데는 사실상 협회의 도움이 있었다고 A 씨는 말한다. 수요기업이 되려면 필요 서류 3종을 각각 바우처 홈페이지에 업로드해야 하지만, 이를 한 장의 사진으로 만들어 업로드해도 심사기관인 메인비즈의 퇴짜를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메인비즈는 같은 수법으로 반복되는 '오류'를 의심하지 않고 '승인 보류' 처리해 줬고, A 씨는 나중에 시간을 두고 의도했던 오류를 수정했다. 공급기업의 부정에 메인비즈가 시간을 벌어준 것이다.

A 씨는 "바우처 대리 신청 때 무조건 심사기관을 메인비즈협회로 지정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도 말했다. 메인비즈 공식 이메일 계정으로는 '○○(기업 상호)에 대한 서류 보완 요청을 드린다'는 이메일을 반복해 보냈다고도 한다. 공급기업의 부정을 메인비즈가 적극 돕거나 조장한 게 아니라면, 적어도 심사기관으로서 무능함을 드러낸 건 확실하다. 기자가 만난 메인비즈협회 고위 관계자는 이런 사실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관계자는 "중기부가 (작년) 8만 개 수요기업을 빨리 만들라고 지시하는데 5~6명이서 심사하는 덴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중기부 바우처 부정행위 엄단

● 부정 판치는데 자진신고?…"장물 돌려주면 도둑도 용서하나"

중기부는 작년 11월 바우처 부정을 경고한 SBS 보도 이후 "검찰 고발 등으로 바우처 부정을 엄단하겠다"고 공언했다. '민관합동 단속반'까지 만들었다. 메인비즈도 여기에 참여했다.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겼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중기부 관계자는 "우리가 현장 조사를 자주 나가지만 부정을 잡아내는 데 한계가 있다"며 민관합동 단속반을 유지할 뜻을 내비쳤다.

이러는 사이 바우처 사업 부정행위는 각 분야에서 계속되고 있다. 한 공급기업은 인삼시장 상인들에게 "유튜브에 활용할 시장 홍보 영상을 찍어주겠다"며 접근해 화상회의 앱을 팔았다. 태권도장과 장례식장에 재택근무 앱을 팔며 대가로 열화상카메라를 제공한 업체도 있다. 비싼 맥북을 주겠다는 업체는 물론, 누구보다 투명해야 할 세무법인이 대리 신청에 동원된다. 떡하니 중기부 이름을 박은 명함을 파고 다니며 아무것도 모르는 소상공인들을 홀리는 이들까지 등장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 거대한 세금 낭비의 전모는 검찰 수사로만 밝힐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중기부는 때아닌 '업계 자정'을 기대하는 눈치다. 이달 들어선 바우처 홈페이지에 '페이백 및 리베이트 자진신고 안내문'까지 게시해 "(자진 신고한 경우) 관련 결제금액에 대해 전액 환수만 진행"한다고 밝혀 형사 고발 칼날을 스스로 거둬들인 모양새다. "도둑이 장물만 돌려주면 처벌 안 받아도 되는 것이냐"고 업계는 혀를 찬다. 세금 도둑에 이토록 관대해도 되는 것일까.

바우처 사업은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사업이었다. 달랑 400만 원을 쥐어주면 우리 중소기업들이 비대면·디지털화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도 터무니없지만, 3,000억 원 넘는 세금이 들어가는 사업을 실효성 한 번 따져보지 않은 채 졸속으로 추진한 것도 문제다. 정부는 이 사업이 당장 시급한 사업이라며 국무회의 의결로 예비타당성 조사조차 무시했는데, 그 의도는 누구나 알 것이다. 내 돈이라면 절대 이럴 수 없다.

중기부는 이 문제 많은 사업의 올해 예산 2,160억 원을 소진하기 위해 오는 16일부터 또 한 번 바우처 신청 기업을 접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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