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20대 여성들이 많이 자살하나요? 이유가 뭐예요?"
요즘 가장 많이 듣는 질문입니다. 아무래도 제가 '상담 하는 사람'이라는 직업을 가졌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저는 질문하신 분들이 만족할 만한 답을 드리지 못합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제가 하는 '상담'의 특성 때문인데요. 저는 정신의학 전문의나 자살관련 센터들처럼 소위 질환이나 위기 상황에 놓인 분들을 상담하는 입장이 아니라, 보편적인 시민들을 대상으로 예방 차원의 상담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신체 건강으로 치환하자면 동네 의원들이 사망자를 자주 보기 어려운 이치와 비슷하달까요. 둘째, 20대 여성들의 자살률 증가 원인을 말하기 어려운 이유는 '최근에 발견된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저 뿐만 아니라 많은 관련 종사자, 연구자들이 '이제 막' 현상을 포착해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쉽게 말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유를 알고 싶어 합니다. 전문가라면 이유를 금방 찾아내고 또 말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래서 가끔은 이런 편향적인 답변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20대 여성 자살률이 높은 이유는 남성들에 비해 여성들이 공감, 위로, 지지와 같은 사회적 교감을 더 필요로 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해서 이런 여건이 박탈된 것이 원인이라고 본다"
어떠세요? 여러분은 이 답변에 동의하시나요? 저는 동의하지 않을뿐더러, 상당히 위험한 답변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소 두 가지 측면에서 말이지요.
첫째, 일단 자살은 단순히 성격 성향 문제로 야기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개개인이 가진 기질이 우울이나 위기감을 가속 시키느냐 여부에는 영향을 미칠 수 있겠지만, 이것이 근본 원인이라는 것은 자살을 겉으로 살짝 훑은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지요. 둘째, '여성이라서' 교감과 위로가 더 필요하다는 것은 성별의 카테고리로 기질을 분류, 단정한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합니다.
하지만 분명 20대 여성 자살률이 높다는 지표는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서울시 자살예방센터를 비롯한 전국의 전담기관에 따르면 전년도 동기 대비 20대 여성 자살률이 늘어난 것은 확실합니다. 즉, 실제로 20대 남성보다 여성이 극단적인 시도를 더 많이 하고 있다는 점은 팩트인 것이지요. 하지만 이것은 성별의 감수성 측면이 아닌, 사회적 불안의 상황에서 파악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릅니다.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사회적불안(social anxiety)과는 또 다른, 사회학적 의미의 사회적불안(social unrest)을 말하는 건데요. '사회적 요인'으로 다수의 사회구성원이 공히 경험하는 불안 정도로 정의해볼 수 있겠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겁니다. 전남, 경남, 울산 등 남부권 도시에서 상담을 진행하면 20대 여성들이 '결혼 후 단절된 경력과 고립된 관계'에 대한 고민을 자주 말합니다. 동년배 수도권 여성들이 '직장 및 진로'에 대한 고민을 주로 삼는 것과는 대조적이지요. 상기한 지역의 평균 초혼연령은 30.07세, 30.80세 등인 반면, 서울은 31.55세로 큰 차이를 보입니다. 이렇게 환경적 요인이 개인의 불안을 야기 시키는 배경이 된다는 것이 사회적 불안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지금의 20대 여성들의 극단적 선택에 대해 우리는 여성 청년이 남성 청년에 비해 불안을 겪는 '시기'가 빠를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 사회의 20대 청년 전반의 생애 주기를 살펴보면 군복무 등으로 인하여 남성은 대체로 25~8세까지 학생 신분으로 이행기가 연장, '피부양자'로서의 시기가 상대적으로 긴 반면에, 여성의 경우는 23~5세 정도면 이 시기가 종료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구직시장에 조금 더 빨리 진입하는 만큼,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위기를 겪는 여성 사회초년생들의 인원이 더 많은 것은 분명한 사실일 겁니다. 물론 이 또한 다양한 원인 중 아주 작은 하나일 수 있겠지만, 그만큼 '여성의 성향' 문제가 자살률의 절대적 원인이 아니라는 반례는 지속적으로 발견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제 막 연구가 시작된 만큼, 차차 드러나는 요인들은 한두 가지가 아닐 테고요.
더욱이 가장 중요한 점은 20대 여성들이 '유독 많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20대 여성을 시작으로' 다른 세대들의 자살률도 점점 증가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이 예측한다는 점입니다. 견인 집단이라는 의미랄까요. 그것이 코로나19로 촉발된 사회적 위기와 연관되어 있다는 점은 분명하고요. 그러니 우리는 타자적 시각에서 그들을 폄하하거나, 나약함을 지적하기보다는 함께 그들의 문제를 고민해야 할 겁니다. 그들이 그저 '먼저 시작한' 상황이라면, 그들의 극단적 불안과 공포, 늘어나는 자살률은 점점 우리에게도 다가올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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