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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들어는 봤나, 기후위기 어벤져스

김지석│그린피스 서울사무소 기후에너지 스페셜리스트

마블 영화사의 어벤져스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 화려한 CG와 액션, 멋진 영웅들의 활약도 재미있고 군데군데 꽤 감동적인 부분도 있었다. 가장 최근 시리즈에서는 우주를 공포에 몰아넣은 타노스가 인구 증가, 자원 소비 폭증에 따른 환경 재앙을 막기 위해 인피니티 스톤을 모았다는 설정도 나름 화제가 되었다. 넘쳐나는 쓰레기와 심해지는 이상 기후를 겪으면서 영화 속 타노스가 생각난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최악의 폭염과 함께 마른 하늘에 수천 번의 번개가 치면서 시작된 산불이 무시무시한 규모로 타고 있다. 가장 큰불은 이미 1,500km2 이상의 숲과 마을을 불태웠고, 두 번째 큰불 역시 비슷한 규모인데 둘 다 아직 꺼지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는 8호 태풍 '바비'의 피해를 채 다 복구하기도 전에 강력한 9호 태풍 '마이삭'이 오늘(3일) 새벽 한반도를 강타했는데 또 다른 태풍이 잇따라 우리나라를 향해 오고 있다. 코로나 재유행까지 겹치니 기분은 더 심란하다.

유엔사무총장이 작년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에서 '완전한 재앙'이라고 표현한 기후 위기 문제는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거나 에어컨을 잠깐 끄거나 일주일에 한 번씩 채식을 한다고 하는 정도로는 제대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국가 차원에서 석탄, 석유, 천연가스 사용량을 대폭 줄여야 하는데 그러려면 김 모 씨, 이 모 씨와 같은 개인의 단위가 아니라 삼성, 현대 같은 기업 차원의 에너지 전환이 필요하다.

그런데 난세에 영웅이 나타난다고 했던가. 기후 위기에 직면해 나름 의미 있는 목표를 발표하고 전환에 나선 기업들이 나타났다.

애플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애플, 2030년 탄소 중립 목표

사용하는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대부분 태양광, 풍력)로 충당하자는 기업 에너지 전환 프로젝트가 있다. 전 세계 242개의 회사가 참여 중인 'RE100'이라는 건데 애플은 초창기에 RE100을 선언하고 2016년에 이 목표를 조기 달성했다. 애플같이 이름있는 회사의 재생에너지 100% 조기 달성은 의미 있는 성과로 큰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한 편에서는 애플은 제품을 직접 제조를 하지 않는 회사이기 때문에 쉽게 달성할 수 있었으며 삼성전자 같은 제조업 회사와 비교하는 자체가 불공정하다는 비판도 있었다.

이런 비판에 대한 답을 내놓기라도 하듯 애플은 지난 7월 22일, 부품을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최대한 줄이고, 줄이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노력으로 상쇄해 탄소 배출량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발표했다. 애플은 이날 탄소 배출 제로에 참여할 71개 협력사도 공개했는데 한국 기업으론 SK하이닉스가 포함됐다. 이밖에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 회사인 TSMC, 아이폰 조립 공장을 운영하는 폭스콘(홍하이정밀), 소니 반도체 솔루션 등이 목록에 포함됐다.

애플은 아이폰을 중심으로 고가의 태블릿과 노트북 컴퓨터를 포함해 수많은 제품을 판매하는 시장의 절대 강자다. 최근에 시가총액이 2조 달러를 넘어가며 전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회사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애플의 이런 탄소 중립 목표 설정은 주목할 만하다. 다른 휴대전화 생산 업체들이 이같은 움직임에 동참한다면 우리는 적어도 휴대전화 생산에서만큼은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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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

# TSMC, RE100 가입

반도체 생산은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업종이다. 그래서 반도체 생산 기업은 재생에너지 사용 전환이 어렵다는 하소연은 나름 설득력이 있었다. 실제로 RE100에 가입한 242개의 기업 중 반도체 생산업체는 없었다. 하지만 지난 7월 27일 세계최대 반도체 업체인 TSMC가 RE100에 전격 가입하면서 대형제조업은 재생에너지 전환이 어렵다던 기존 인식에 일대 반전을 가져왔다.

대만 반도체 업체라고 해서 중소기업 정도라고 여길 수 있는데 TSMC는 2019년 11월 25일 시가총액 기준 삼성전자를 제친 대형 반도체 회사다. 2020년 8월 31일 기준 TSMC의 시가총액은 3,921억 달러(삼성전자 2,731억 달러)에 이른다. 한국 사람의 입장에서 삼성전자가 시가총액에서 대만 업체에 밀렸다는 게 은근히 마음이 상하는데 사실 더 아쉬워해야 할 것은 RE100에 가입하는 첫 반도체 회사가 한국의 삼성반도체나 SK하이닉스가 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TSMC의 재생에너지 100% 전환 목표는 2050년이고 중간 목표는 2030년까지 25%까지 달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TSMC는 2025년에 완공 예정인 1.2기가와트 규모의 초대형 해상풍력에서 나올 전기를 전량 구매하기로 계약을 마쳤다. 참고로 대한민국에 설치된 풍력발전기를 다 합친 규모가 1.5기가와트다.

TSMC 같은 거대 반도체 회사가 재생에너지 구매에 나서면서 앞으로 대형 재생에너지 사업이 더욱 탄력을 받아 온실가스 감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이미 해외 언론에서는 TSMC에 이어 삼성전자가 RE100에 가입하지 않겠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테슬라 (사진=픽사베이)

# 테슬라의 비상

전기차 시대를 열어 기후변화 문제 해결에 일조하겠다며 2003년 창업한 테슬라가 최근 4분기 연속 흑자를 달성했다. 이와 함께 여러 요인으로 주가는 급등했다. 테슬라는 지난 5월에 일본 토요타의 시가총액을 턱 밑까지 쫓아가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데 불과 3달 뒤인 8월 말 시가총액 4,000억 달러를 돌파하며 토요타 자동차의 시가총액을 두 배 이상 뛰어넘었다.

환경적 측면에서 테슬라의 주가 상승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 테슬라 주가가 오른다고 온실가스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 해결 관점에서 의미 있는 건 테슬라가 중국, 미국, 독일에 대형 공장을 만들며 확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기차는 환경적으로 완벽하지는 않지만 휘발유나 디젤, LPG를 연료로 하는 기존 자동차에 비해 에너지 효율이 훨씬 뛰어나다. 여기에 더해 태양광, 풍력 등으로 만든 온실가스 제로 전기로 충전할 수 있어 환경이 지속적으로 개선된다는 점도 큰 강점이다.

테슬라는 현재 연간 약 50만대의 전기차를 생산할 수 있는데 2021년 말에는 생산 능력을 약 100만 대 수준까지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테슬라의 이런 행보가 고무적인 건 테슬라의 성공이 다른 자동차 메이커들의 전기차 전환을 앞당길 수 있는 촉매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이미 폭스바겐도 테슬라 따라잡기에 나서야 한다며 'ID3'라는 전기차 전용 모델을 개발해 판매를 시작했고 현대자동차 역시 전기차 출시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며 과거보다는 진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어벤져스 구성원 더 늘리려면?

앞에 소개한 회사를 포함해 여러 회사가 기후 위기 해결에 도움이 되는 일들을 하고 있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필요한 만큼 온실가스를 감축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미적거리는 회사들도 많고 도움은커녕 오히려 해가 되는 일을 하는 회사들도 여전히 아주 많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회사가 애플, TSMC, 테슬라처럼 기후 위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게 만들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훨씬 더 많은 휴대전화 회사와 자동차 회사들이 탄소 중립 목표를 세우고 재생에너지 확대 등 목표 달성을 위해 전념할 수 있게 제도를 만들어 줘야 한다. 동시에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등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을 하는 회사들이 하던 일을 멈추도록 선을 그어줘야 한다.

혹시라도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기차 전환이 기업 활동에 악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면 애플, TSMC, 테슬라가 기업으로서 어떤 성과를 내고 있는지, 주가는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펴보길 권한다. 2020년 8월 말 기준, 재생에너지와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적인 애플, TSMC, 테슬라는 셋 다 잘나가고 있다. 그것도 아주 잘.

인잇 필진 네임카드

#인-잇 #인잇 #김지석 #생존의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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