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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나흘 차 입국…장례 간 박원순 아들, 못 간 '최 씨 아들'

박원순 전 시장과 최 모 씨의 죽음, 그 사이 간극

[취재파일] 나흘 차 입국…장례 간 박원순 아들, 못 간 '최 씨 아들'
# 죽음 1

지난 6일 저녁, 최 모 씨가 심장마비로 숨졌습니다. 최 씨의 죽음은 중국에 업무차 나가 있던 아들에게 곧 타전됐습니다. 아들은 가장 빠른 한국행 비행기 표를 구했고, 7일 오후 3시쯤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습니다.

# 죽음 2

지난 9일 밤, 박 모 씨가 숨졌습니다. 박 씨의 사망 소식 역시 영국에 체류 중인 아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아들은 가장 빠른 한국행 비행기 표를 구했고, 11일 오후 2시쯤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똑같이 아버지의 죽음이었고, 똑같이 상주였습니다. 그런데 최 씨의 아들은 귀국 당일 빈소를 지키지 못했고, 다음 날 발인조차 치르지 못했습니다. 코로나19 검사를 받느라 그랬습니다. 반면 박 씨의 아들은 귀국 당일 빈소에 도착했고, 이틀 뒤 아버지를 장지까지 무사히 보내드렸습니다. 코로나19 검사를 받았어도 말이죠.

네, 박 씨는 바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었습니다. 최 씨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가장이었고요. 최 씨의 아들은 TV를 통해 박 전 시장의 아들이 귀국 당일 장례식에 참석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 놀랐다고 합니다. 그 장면을 보기 전까지는 정부 당국에 대한 원망보다 아버지 옆에 없었던 자신을 책망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책망이 분노로 바뀌었고, 곧 '그와 나는 왜 달랐을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질문에 최대한 객관적인 답을 얻으려면 필요한 게 있습니다. 사흘 차이로 일어난 이 죽음들에서 '같은 인간'이라는 상수만 남겨놓고 나머지 모든 변수들, 예를 들어 사회적 지위나 인지도, 업적 등은 제거해봅시다. 그런 뒤의 시선으로 7일 오후 3시쯤의 인천공항과 11일 오후 2시쯤의 인천공항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인천 공항검역소에 따르면 두 아들 모두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 부모상(父母喪)을 근거로 '자가격리 면제 서류'를 받았습니다. 코로나19 음성 판정을 받는다면 해외 입국자일지라도 상을 치를 수 있도록 14일간의 자가격리가 면제됩니다. 물론 보호구 착용 등의 추가 조건이 있지만 말이죠.

최 씨 아들이 받은 '자가 격리' 안내문 등

최 씨 아들에 따르면 그는 입국 직후 '면제 서류'를 제출했고, 면제자에 한해 지급되는 '노란색 명찰'을 받았습니다. 입국 심사대에서 '부친상'이라고 다시 한번 사유를 밝힌 뒤 입국장을 나섰는데 대기 중인 당국자의 인솔에 따라 공항 밖에 있던 버스에 올랐다고 합니다.

지난 7일, 인천공항 바깥으로 최 씨 아들을 인솔한 검역 관계자

버스는 격리소로 지정된 경기도 안산의 농어촌 인재개발원에 도착했고 그는 그 시간을 오후 4시 반~5시 사이로 기억합니다. 이제 곧 검사를 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하루 두 번 검사를 하는데 당신은 오후 입국자라 밤 9시에 검사를 할 예정'이었답니다. 최 씨의 아들은 "장례식에 갈 수 없을 것 같아 애끓고 슬픈 마음이 더없이 컸지만 검역 관계자도 고생하는데 무리하게 부탁할 수는 없었다"며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그의 검체 채취는 예정 시간보다 40분 정도 빠른 밤 8시 20분쯤 이뤄졌다고 합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발인이라도 볼 수 있도록 최대한 빠른 검사를 부탁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가장 빠른 검사 시간이 '8시간'이라는 말에 그는 절망했습니다.

1인 격리실에 머물던 아들에게 '음성' 결과가 통보된 시각은 다음 날 아침 6시 2분. 아버지를 경남 창원 시립화장터로 오전 10시까지 모셔야 했기에 발인은 이미 5시에 마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장지로 내려가는 내내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원망스러웠던 건 코로나가 만연한 이 세상과 아버지 옆을 지키지 못한 자신뿐이었다고 했습니다.

이제 박 전 시장의 아들이 인천공항에 도착한 11일 오후 2시쯤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인천공항 검역소를 취재한 결과 그 역시 '면제 서류'를 보여주고 노란색 명찰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당국자의 인솔에 따라 버스에 오르는 대신 인천공항 안에 있는 검사실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검체를 채취한 시각이 대략 3시쯤이라고 합니다. 음성 반응이 나온 시각은 저녁 7시 반. 검사 시간이 약 4시간 반 정도 걸린 셈입니다. 결과를 통보 받고 인천공항에서 바로 출발했을 테니 밤 8시 반쯤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었을 겁니다.

똑같이 부친상을 당했고 똑같이 '면제 서류'를 갖고 있었는데 왜 최 씨의 아들은 인천공항에서 경기 안산까지 가서 검사를 받고, 박 전 시장의 아들은 인천공항 안의 검사실에서 검사를 받았을까요. 왜 최 씨의 아들은 검체 채취부터 검사 결과를 통보받기 전까지 9시간 40분이 걸렸고, 왜 박 전 시장의 아들은 4시간 30분밖에 걸리지 않았을까요.

인천공항 검역소를 취재한 결과, 박 전 시장의 아들이 귀국한 날 전후로 해외에서 들어온 선원이 많았답니다. 이들 때문에 농어촌 인재개발원을 포함해 자가격리 장소가 부족했고요. 그래서 부득이하게 인천공항 안에서 검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군요. 아들만 따로 검사한 게 아니라 같은 항공기를 타고 온 사람들은 모두 같은 방식으로 검사를 했다고 합니다. 각기 다른 두 아들의 도착일을 기준으로 불과 나흘 만에 격리 장소가 남았다가 부족해지는 우연이 일어났습니다.

대기 인원이 별로 없어서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다는 공항 검역소 측의 설명도 들었습니다. 11일 당일 오전 9시~10시 전까지 입국자가 많이 몰렸는데, 박 전 시장의 아들이 도착한 오후 2시쯤은 비교적 한산했다는군요. 그 시간과 비슷하게 인천공항에 도착한 항공편을 살펴보니 영국을 비롯해 일본, 프랑스, 폴란드, 네덜란드 등 세계 곳곳에서 승객들이 들어왔는데도 말이죠. 7일과 11일 비슷한 시간에 도착한 승객 수를 비교할 수 있으면 명쾌할 텐데, 조회 권한이 없는 탓에 검역소 측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쨌든 승객이 확 줄어든 우연이 다시 한번 벌어졌습니다.

세계적 재앙 수준인 코로나 사태로 국내 방역·검역 관계자들이 7개월 넘게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노력과 희생을 폄훼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특혜 검사'는 없었다는 공항 검역소 측의 설명을 믿고 싶습니다. 숨진 박 전 시장 측이나 아들 스스로 '프리패스'를 요구했을 리 만무합니다. 다만, 누군가는 우연에 우연이 거듭돼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우연이 없어서 장례식은 커녕 발인조차 지켜보지 못한 일이 벌어진 겁니다. 최 씨의 아들이 제게 했던 말로 끝을 맺을까 합니다.

"우리나라는, 대한민국은 정말 공정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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