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네 살'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지만,
우리 아이는 이제 막 18개월을 넘었는데 이건 뭐 산 넘어 산이 아닌가.
저번 주에는 딸 로라가 아침밥을 먹다가 숟가락으로 밥그릇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밥이 먹기 싫거나 심통이 나면 이렇게 종종 숟가락으로 내려치곤 한다. "로라야 그러는 거 아니지"하고 일단 좋게 말했다. 그런데 들은 척도 안 하고 숟가락으로 계속 밥을 치니 밥풀이 사방으로 튀었다. 화가 나는 걸 참으며 목에 힘을 주어 말했다. "안 돼! 그만해" 그러자 숟가락 치기를 멈추고 이제는 과자를 달라고 조르기 시작한다. "까자!" 분명한 발음으로 식탁 뒤에 있는 과자를 가리키며 달라고 떼를 쓴다.
"로라야 지금 밥 먹는 시간이야. 밥 먹고 과자 먹을 수 있어"하고 타이르며 밥 먹자고 설득했다. "밥부터 먹어야지" 그런데 이번에는 숟가락을 바닥으로 집어던지는 게 아닌가! 그 전에도 몇 번 숟가락을 던져서 그때마다 "던지는 거 아니지", "던지면 안 돼"하고 타일렀는데 이번엔 참지 못하고 화가 터져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안 돼! 숟가락 던지지 말랬지!" 그 소리에 흠칫 놀란 로라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나를 쳐다보았다. 순간 표정이 얼어붙고 눈이 시뻘게지더니 닭똥 같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흐흑 흐흑'하고 어찌나 서럽게 울던지 그 모습에 그만 마음이 약해져 화를 풀고 말았다.
"로라야, 숟가락 던지면 안 되지. 로라가 그러니까 아빠가 화났잖아. 밥 먹을 때 숟가락 던지는 거 아니야"하며 나긋한 목소리로 달랬다. 로라는 내 말을 알아듣는 건지 젖은 눈으로 나를 응시하며 끝까지 들었다. "아빠가 화내서 미안해. 로라도 숟가락 던진 거 잘못한 거니까 아빠한테 '미안'하고 사과해."라고 하며 내가 먼저 로라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아빠가 미안". 로라도 나를 따라 "미얀~"하면서 고사리 같이 작은 손으로 내 손등을 쓰다듬는다. "자 이제 포옹해"라고 하자 훌쩍거리면서 내게 안겨왔다. 그렇게 겨우 아침 식사 시간을 넘겼다.
아이의 짜증이 느는 요즘 나의 짜증도 덩달아 늘어가고 있다. 요 며칠 전에는 아이의 짜증을 참지 못하고 아내에게 애를 떠맡기듯 하고 밖으로 뛰쳐나간 적도 있다. 그때 혼자 걸으며 생각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게 이렇게 감정적으로 힘든 일일 줄이야. 육아에 대한 육체노동이 수월해지니 그보다 더한 감정 노동이 뒤따라 왔다. 아이의 온갖 짜증과 억지를 받아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하지만 내 감정의 그릇은 부모가 되기에는 턱없이 작게 느껴졌다. 아이가 짜증을 낼 수도 있고 숟가락을 던질 수도 있는데 그것을 참지 못하고 버럭하고 화낸 나 자신이 그저 한심했다. 다 큰 어른이 아이의 감정 하나 받아주지 못하는 게 부모 자격이 없는 건 아닐까. 자존감은 무너져 내리고 미안한 감정은 쌓여만 갔다.
사실 남의 아이는 마냥 귀여워만 하면 된다. 하지만 내 아이는 내가 키우고 또 바르게 가르쳐야 하기에 잘못된 행동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바르게 가르친다는 것이 말이 쉽지 아이의 감정에 동요하지 않고 침착하게 똑바로 알려준다는 게 과연 감정의 동물인 사람이 할 수 있는 건가 싶기도 하다.
육아 관련 서적에서 아이가 느낀 나쁜 감정을 부모에게 버린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아이는 자기가 감당하기 힘든 감정을 부모에게 맡기려고 하고 부모가 잘 걸러서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감정의 크기로 만들어주길 기대한다는 것이다. 마치 이유식을 먹을 때 큰 음식을 부모가 작게 잘라주는 것처럼 그렇게 아이들은 부모라는 감정의 거름망을 통해 감정 근육이 서서히 발달한다고 한다. 한편 아이가 심하게 떼를 쓸 때면 1~2분 정도 외면하는 방법도 있다. 짜증을 내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아이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알고는 있지만 막상 현실에 부딪히면 또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곤 한다. 아이의 모든 감정을 다 받아주고 공감해주고 싶지만 부모라는 그릇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곧 있으면 미운 네 살이고 멀게는 사춘기도 있는데, 화내지 않고 아이를 타이르면서 잘 알려줄 수 있을지 걱정이다. 아이를 키운다고 나름 노력한다지만 결국에는 부모로서 나 자신도 키워야 하는 것이 육아인 듯 하다. 아이가 배워가야 할 생활양식과 사회 규범이 매우 많지만 부모가 배우고 견뎌야 할 것들이 더 많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아이를 키우면서(育兒) 동시에 나 자신도 키우고(育我 )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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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코로나와 2020년, 아이들은 어떻게 기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