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된 갑질과 폭력 속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비원, 여행 가방에 갇힌 채 세상을 떠나야만 했던 아이, 학대당하던 집에서 살기 위해 탈출한 아이…등등. 최근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만든 이 사건들 속에는 가해자들이 존재한다. 꼭 강력사건에만 이런 가해자들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글을 쓰는 지금 이 시각 가장 많은 사람들이 본 뉴스는 잘 키우겠다며 입양한 진돗개를 2시간도 안 돼 도살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아니, 대체 왜? 사람이 어떻게?
도저히 같은 사람이라고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상대방의 입장을 아주 잠깐이라도 신경 썼다면, 양심이 있다면 할 수 없는 일들을 그들은 태연히 벌였다. 이는 그들에게 공감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선천적으로 공감능력을 지니지 못한 이들이 있다. 또한 공감능력의 씨앗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학대와 방임 같은 양육환경 속에서 싹을 틔우지 못한, 더 안타까운 경우들도 많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결국 인격의 기본 틀이 완성된 만 18세가 지났음에도 타인에게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 이들을 정신의학에서는 '반사회성 인격'을 지녔다고 말한다. 이 반사회적 성향이 아주 강해 사회생활에 심각한 지장이 있는 경우 인격장애를 진단할 수 있으며, 흔히들 말하는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가 이에 속한다. 이들은 법률적, 사회적 규범을 따르지 않으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속이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느끼고 합리화하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에 얼마나 있는 걸까? 이런 이들과 한 번도 엮이지 않은 축복 받은 삶을 산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수많은 갑질과 폭력을 일상으로 견뎌내며 지내시는 분들도 있다. 이는 반사회성 성격을 가진 이들이 주로 자신보다 약한 위치에 처한 이들을 공격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인 노동자로서의 삶이 얼마나 고달픈지 경험담을 옮겨낸 <임계장 이야기>라는 책에는 아파트 주민 김갑두 씨가 등장한다 (임계장은 '임시 계약직 노인장'이라는 말의 준말이며, 김갑두는 갑질의 두목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별명이다). 경비원의 업무 중 하나로 음식물 쓰레기통을 씻고 있던 임계장에게 김갑두는 수돗물을 낭비했다며 한 시간이 넘도록 훈계하고, 이후 위로한답시고 상한 사과 한 알을 먹으라며 건넨다. 그런 김갑두 같은 인물을 얼마나 자주 볼 수 있었는지,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물론 아파트 주민들이 모두 김갑두는 아니다. 주민들은 좋은 사람 소수와 무관심한 다수, 그리고 극소수의 나쁜 사람, 이렇게 세 가지 유형이 있었다. 사실 고마운 사람들도 많았다. 경비원 초소에 붕어빵 하나를 살그머니 두고 가는 살가운 분들도 있었고, 늘 깍듯이 머리를 숙이며 인사하는 기특한 학생들도 많았다. 반면에 경비원을 괴롭히는 재미로 살아가는 소수가 있었다. 김갑두 같은 사람이다. 그들이 보기에 경비원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경비원은 제 마음대로 켰다 껐다 할 수 있는 스위치 같았다. 내가 관리하는 350세대 가운데 이런 이들은 5퍼센트 정도였던 것 같다. 소수라 해도 이들의 괴롭힘은 진한 후유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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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퍼센트? 우리나라에서만 200만 명이 넘는다고? 너무 많은데? 혹시 을의 위치에서 일한 사람의 왜곡된 시각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 그의 경험을 통해 나온 수치는 꽤 정확하다. 다양한 정신질환에 대한 연구와 통계 작업이 가장 확실하게 진행되어 있는 미국의 자료들에 의하면 많게는 인구의 3% 정도가 반사회성 인격장애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인격장애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런 성향을 강하게 띈 사람들을 포함하면 대략 5% 남짓이지 않을까.
세상엔 공감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상상 이상으로 많다는 사실을 우리는 매.일. 느낄 수 있다.
다행히 오프라인에서 좋은 사람들만 만난 날에도, 온라인에서는 그럴 수 없다. 하루는 <임계장 이야기> 책을 소개하는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보았다. 그 댓글 창을 통해, 책을 읽으며 받았던 것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다.
'4년 일하면서 4번 이직이라니, 힘든 게 아니라 이 사람이 문제인 것 같은데?'
'일부러 책 쓰려고 일해본 것 같다.'
악착같이 일했음에도 갑질로 인해 해고되고, 살기 위해 또 도전하다 질병을 얻어 죽음의 위기까지 다녀온 작가 분의 삶을 조금이라도 공감한다면 할 수 없을 말들을 여러 사람들이 내뱉어 놓았다. 그 삶을, 책의 내용을 모르더라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말들이다. 공감능력이 없기에 할 수 있는 말들이다. 우리는 이렇게 공감능력 제로의 가해자가 벌인 사건사고의 기사들, 공감 못하는 것이 부끄러운지도 모르는 이들의 무수한 댓글들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괜찮을까? 나쁜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며, 우리들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부정적으로 변해가고 있지는 않을까? 이는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분명 세상엔 좋은 사람들이 더 많은데 말이다.
결국, 우리가 듣는 이야기의 결말이 중요하다. 이런 가해자들의 이야기 끝에 강력한 처벌이라는 결말이 등장해야 우리는 이 사회를 안전하게 느낄 수 있다. 5%의 사람들을 찾아내어 차별하자는 뜻이 아니다. 강력한 처벌은 95%와 5%, 양측 모두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반사회성 인격장애는 현대 정신의학의 한계를 드러내는 부분이다. 아직 치료법이 없다. 정신의학 교과서조차 치료법으로 '감옥'을 언급할 정도이니 말이다. 치료법이 없는 상태에서 솜방망이 처벌까지 함께 한다면, 그들의 범죄 욕구를 부채질해주는 꼴일 테다.
잘못된 행동엔 강력한 처벌이 따른다는 간단한 진실, 그 진실이 당연하게 통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것만이 반사회적 성격을 띤 사람들이 범죄자가 되는 확률을 줄여줄 치료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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