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식 안 통하는 로스쿨, 판결은 상식적일까
코로나 19로 인해 대다수 교육기관들이 온라인 수업과 대면 수업을 병행하고 있다. 수업은 그렇다 하더라도 평가만큼은 온라인이 아닌 대면 방식으로 진행해야 공정한 평가가 가능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최근 한 교육기관이 다음과 같은 평가 방식을 공지해 논란이 되었다.
'수업의 기말고사를 대면으로 진행하되 발열 등 사유로 시험을 치르지 못할 경우 최하위 학점을 부여한다'
'아프면 쉬기'라는 방역수칙을 지킬 경우 결국 최하위 학점을 받아야 한다는 뜻으로 학생들 입장에서는 '이번 학기는 감기만 걸려도 끝장이다'라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게 당연하다. 이 공지를 낸 곳은 바로 사법연수원이다. 사법시험 폐지 후 로스쿨제도가 정착하면서 사법연수원은, 법조인 양성 기능은 로스쿨에 넘겨주었지만 재판실무 등 일부 과목의 전담 교육을 맡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 소식을 듣고 필자가 20년 전 사법연수원을 다닐 때 일어난 안타까운 일이 떠올랐다. 당시 2년의 연수과정 중 마지막 시험을 치르던 한 연수생이 화장실에서 쓰러져 숨지는 사고가 벌어졌다. 점심시간도 없이 8시간 동안 소송기록을 보고 판결문을 작성하는 실무형 기록 시험이 결국 연수생 한 명의 목숨까지 빼앗은 셈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시험은 치러야한다'라는 철칙이, 20년이 지난 지금 '코로나19 시대'에서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어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런 궁금증이 생긴다.
'아프면 쉬기'라는 상식을 누릴 수 있는 곳과 '어떤 일이 있어도 시험은 치러야 한다'라는 철칙이 지배하는 곳 중 어느 곳에서 양성되는 법조인이 우리 사회에 더 적합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다. 다만 시민들의 선택이 있을 뿐이다. 시민의 대표인 국회는,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이라는 과정을 통해 그런 철칙을 준수한 사람만 법조인이 되는 제도를 용도 폐기했다. 그리고 2009년부터 건전한 상식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을 법조인으로 양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로스쿨제도를 시작했다. 그 뒤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로스쿨은 당시 시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을까? 건전한 상식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법조인으로 양성되기를 시민들은 기대했지만, 서울 소재 로스쿨은 이른바 SKY 대학 출신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또 하나의 캐슬이 되었다. 다양한 경험을 한 뒤 법조인이 되려고 진학하는 30-40대는 20대와 비교하면 변호사시험 합격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로스쿨 입학단계부터 문전박대 당하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로스쿨 교원은 아니지만 필자 역시 실무수습과 리걸클리닉 수업 등을 통해 매년 1명 이상의 로스쿨 학생을 만나고 있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들의 얼굴빛이 어두워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제1회의 87%에서 계속 떨어져 5회부터 합격률이 50%대로 추락했고, 올해 가까스로 50%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2명 중에 1명은 떨어지는 시험을 준비하는 상황에서 시험과 '상관없는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학부 시절 로스쿨 입시를 준비할 때는 누구나 공익, 인권 같은 가치를 고민한다. 하지만 정작 로스쿨에 들어오면 그런 데 관심을 둘 틈조차 낼 수 없는 게 현실"이라는 한 로스쿨생의 언론 인터뷰, 현재 로스쿨의 상황을 잘 대변한다.
게다가 변호사시험 합격이 어려울 것 같은 학생은 로스쿨에서 아예 졸업을 시키지 않는 방법으로 시험을 응시하지 못하게 하여 해당 로스쿨의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관리한다는 주장도 있다. 주장이 사실이라면 로스쿨은 학교이기를 포기하고 학원으로 전락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법연수원마저 '발열 등 사유로 시험을 치르지 않으면 최하위 학점을 주겠다'라는 공지를 버젓이 한 것이다. 이미 로스쿨은, '아프면 쉬기'와 같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이 된 듯하다.
변호사시험을 주관하는 법무부, 로스쿨을 관리하는 교육부는 로스쿨이 원래 취지와 다르게 변질되었음을 잘 알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법무부는 변호사시험이라는 자격시험이 사법고시와 같은 선발시험으로 이미 변질된 상황에서 합격률 50%대만 유지시키는 것 이외 특별한 개입을 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교육부 또한 로스쿨에 설치된 여러 과목들이 제대로 운영되는지에 대한 철저한 감독 없이 대학의 재량에만 맡겨두고 있는 실정이다.
'아프면 쉬기'라는 기본상식조차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로스쿨, 그곳을 거친 법조인의 판결과 처분. 이것들이 상식에 부합하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상식과 어긋나는 '희한한' 판결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의 몫이다. 변호사시험을 주관하는 법무부, 로스쿨을 관리하는 교육부가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느긋한 태도를 보인다고 해서 우리가 느긋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이제라도 로스쿨이 법조인 양성기관으로서 본연의 역할을 다하도록 우리는 더 깊은 관심을 쏟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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