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제 눈길을 끈 장면은 따로 있었습니다. 이날 출석한 증인 3명 중 상대적으로 덜 주목을 받은 가톨릭 의대 정 모 교수(대한병리학회 영문 학술지 편집위원장)의 증인 신문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검찰의 주신문과 변호인의 반대신문이 끝난 뒤 재판부는 정 교수를 상대로 검찰과 변호인이 언급하지 않았던 점을 갑작스럽게 묻기 시작했습니다. 이날 이뤄진 증인 신문 내용의 본류와는 동떨어진 질문이어서 많은 언론이 주목하지는 않았지만, 저는 재판의 핵심 쟁점 중 하나에 대한 재판부의 접근법을 드러낸 중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재판부와 정 모 교수 사이에 어떤 문답이 오갔는지 소개한 뒤에, 이 장면의 의미에 대해 분석해보겠습니다.
재판장은 왜 '입시 업무 경험'을 확인했나
재판부가 신문을 시작한 것은 점심시간을 앞둔 오전 11시 30분쯤이었습니다. 재판장인 임정엽 부장판사가 질문했습니다.
○ 임정엽 부장판사:
증인은 의대생 선발하는 심사 업무를 담당한 적이 있나요?
재판장의 질문은 그때까지 이어졌던 증인신문 내용과는 동떨어진 것이었습니다. 가톨릭 의대 정 모 교수가 출석한 것은 조민 씨가 제1저자로 등재된 의학 논문이 실렸던 대한병리학회 영문 학술지의 편집위원장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날 증인신문의 주된 내용도 조민 씨가 의학 논문의 제1저자로서의 자격이 있다고 볼 수 있는지, 단국대 의대 교수가 작성한 체험활동확인서에 적혀 있는 실험 참여 등을 사실로 볼 수 있는지 등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그런데 검찰과 변호인의 신문이 마무리되자 갑자기 재판장이 증인에게 대학에서 입시 업무를 해본 적이 있냐고 질문한 것입니다.
● 증인 (가톨릭 의대 정 모 교수):
네, 입시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재판장은 증인의 입시 업무 참여 경험에 대한 질문을 이어갔습니다.
○ 임정엽 부장판사:
학부 대학생 선발이었나요, 의학전문대학원 학생 선발이었나요?
● 증인 (가톨릭 의대 정 모 교수):
둘 다 해봤습니다.
○ 임정엽 부장판사:
얼마나 했나요?
● 증인 (가톨릭 의대 정 모 교수):
2년 동안 했고, 주로 면접을 담당했습니다.
증인이 학생 선발 업무를 담당한 적이 있다고 증언하자 재판장은 드디어 조민 씨의 체험활동확인서와 관련된 본론으로 들어갔습니다.
○ 임정엽 부장판사:
(조민 씨의) 체험활동확인서를 (스크린에) 띄워주세요. (조민 씨의) 인턴십확인서를 (증인에게) 제시하고요. 증인은 그럼 의과생 뽑고 의전원생 뽑을 때 인턴십 확인서를 심사한 적 있나요?
● 증인 (가톨릭 의대 정 모 교수):
없습니다. 저는 주로 인성 면접을 담당했고, 서류 심사는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 임정엽 부장판사:
이런 (인턴십) 확인서 보고 지원자가 어떤 실력 있는지 평가한 적 없나요?
● 증인 (가톨릭 의대 정 모 교수):
음… 이와 같은 자료를 보고 평가한 적 없습니다.
○ 임정엽 부장판사:
증인이 담당했던 건 전문지식 있는지 질문하는 영역은 아니었나요?
● 증인 (가톨릭 의대 정 모 교수):
그건 적성 평가인데, 저는 주로 인성 쪽으로…
재판장의 의도는 명확해 보였습니다. 의학전문대학원생 선발 업무에 참여한 적이 있는 의대 교수인 증인에게 '만약 당신이 조민 씨의 선발을 담당한 의대 교수였다면 이 같은 체험활동확인서 내용을 보고 어떻게 판단했겠는가'를 확인하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정 교수가 주로 인성 면접을 담당했기 때문에 인턴십 확인서 등을 검토해 전공 관련 경험을 평가한 적이 없다고 말하자, 재판장은 추가로 질문을 이어가지 않고 신문을 마무리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의대생을 능가할 정도라고 생각했을 거란 말인가요?"
○ 임정엽 부장판사:
그렇군요. 증인이 혹시 (오늘) 말하고 싶었는데 말씀하지 못한 사항 있으면 말씀하세요.
○ 김선희 부장판사:
잠시만요. 증인, 이 같은 인턴십 확인서를 보면 고등학생이 어느 정도 참석을 했구나라고 평가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보이나요, 아니면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연구에서도 숙련된 기술 가지고 있고 연구에 공이 있는 것처럼 읽히는 건가요?
재판장인 임정엽 부장판사가 증인신문을 마치려고 하자 김선희 부장판사가 끼어들어 다시 질문을 시작한 것입니다. (정경심 교수의 재판은 '대등재판부'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부장판사 3명이 재판부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증인은 김선희 부장판사의 질문에 답했습니다.
● 증인 (가톨릭 의대 정 모 교수):
이런 인턴십을 보통은 (고등학생이) 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 학생이) 했다고 하면 성실하다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논문으로 사용됐다는 건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 내용은 PCR이라는 건데… 의대생도 하기 힘든 수준입니다. (이런 내용이 인턴십 확인서에 적혀 있다면) 상당히 열심히 잘 한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 김선희 부장판사:
(이런 인턴십 확인서를 제출한 학생이) 우수한 학생이고 의과대학생을 능가할 정도라고 생각했을 것이란 말인가요?
● 증인 (가톨릭 의대 정 모 교수):
이 자료를 보면 그런 느낌이 들 것 같습니다.
이 질문을 통해 임정엽 부장판사와 김선희 부장판사가 확인하고자 했던 것은 '조민 씨가 부산대 의전원 입시 과정에서 제출한 인턴십 확인서 등을 의과대학 교수가 봤을 때, 특히 학생 선발에 참여한 적이 있는 의과대학 교수가 봤을 때, 학생의 자질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가'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두 판사는 왜 이 대목을 확인하려 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정경심 교수 등이 제출한 조민 씨의 체험활동확인서와 인턴십 확인서 내용이 반영된 자료 때문에 의학전문대학원 입시 업무 담당자가 조민 씨의 자질에 대해 착각하거나 오인했는지'가 재판의 핵심 쟁점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허위사실 기재는 속임수" vs "일부 과장일 뿐 허위 아냐"
정경심 교수의 입시비리 혐의와 관련해 검찰이 적용한 죄명은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입니다. 일반적으로 공무집행방해라고 하면 술에 취한 사람이 경찰관을 폭행하는 것 같은 물리적 행위를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 경우 "공무"는 공공기관인 국립대학교(서울대-부산대)의 업무, 특히 학생 선발 업무를 뜻합니다. 검찰은 정경심 교수가 국립대학교의 입시 업무를 방해했다고 보고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검찰은 정경심 교수가 '속임수'를 쓰는 방식으로, 즉, "위계에 의해" 공무집행을 방해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검찰이 말하는 속임수(위계)는 무엇일까요? 정경심 교수 측이 부산대에서 학생 선발을 담당하는 담당자에게 허위 내용이 포함된 자료를 제출해, 평가 담당자가 자료에 기재된 허위 내용을 사실로 믿고 평가하도록 속임수(위계)를 썼다는 뜻입니다. 즉, 조민 씨가 입시과정에서 제출한 자료에 포함된 내용이 허위이기 때문에 정경심 교수가 속임수(위계)를 써서 공공기관인 국립대의 입시 업무를 방해한 것이라고 검찰은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피고인 정경심 교수 측은 검찰의 주장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경심 교수 측은 조민 씨의 체험활동 확인서나 인턴십 확인서에 포함된 내용에 약간의 과장은 있을 수 있지만 허위사실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국제 조류학회에서 조민 씨가 포스터논문을 발표하고 조민 씨가 발표한 포스터가 발표논문집에 수록됐다는 체험활동확인서 내용 등은 허위사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논란이 됐던 의학 논문 제1저자 등재와 관련해서도, 의학 논문의 제1저자로 등재됐다는 사실은 부산대 의전원 등에 제출한 자료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와 관련이 없고, 단국대 연구진의 일원으로 참여했다거나 함께 실험을 했다는 체험활동확인서 내용은 허위가 아니라고 정경심 교수 측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된 내용은 무엇인가
그러나 체험활동확인서 내용과 관련해 많은 대목에서 검찰과 변호인이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민 씨의 체험활동확인서에 기재된 내용 중 적어도 일부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은 공판과정을 통해 이미 확인됐습니다. 특히 4월 22일 공판에서 판사는 증인을 신문하는 과정을 통해 몇 가지 구체적 내용에 대해선 "사실과 다르다"라고 사실상 결론을 냈습니다.
## 4월 22일 오후 공판 중 ##
: 조민 씨의 체험활동확인서를 작성한 공주대 김 모 교수에 대한 증인신문
○ 판사
증인(공주대 교수)이 조민에게 하라고 했던 게 (2008년 8월 조민이 증인에게 쓴 메일에 나와있는 걸 보면) 독후감 쓰기, (집에서) 식물 기르기, (집에서) 물고기 기르기 3가지였잖아요. 그런데 2007년 7월부터 2008년 2월까지의 (조민의) 체험활동확인서를 보면 "홍조식물 배양실습" 이렇게 돼 있고 "2주간 교육을 성실히 이수했으며 이후 월 1회 이상 주말을 이용하여 홍조식물을 성공적으로 배양하고 있음"이라고 돼 있어요. 이거는 분명히 사실과 다른 거네요?
● 증인(공주대 김 모 교수)
네, 과장이 심합니다.
○ 판사
(조민의 2008년 3월부터 2009년 2월까지의 체험활동확인서에 나온 내용 중) 2008년 3월 방학 중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도 사실이 아닌 거 맞는 거죠?
● 증인(공주대 김 모 교수)
네
○ 판사
2009년 3월 체험활동확인서에서 "홍조식물 배양 및 성분화 관련 유전자의 분자생물학적 탐지실습, 학회자료의 작성 및 수정 보조"라고 돼있는데요, 여기서 "적극적 활동"이란 건 뭔가요?
● 증인(공주대 김 모 교수)
성실하게 참여했다는 것입니다.
## 4월 22일 오전 공판 중 ##
: 조민 씨가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린 논문초록(포스터와 동일)의 제1저자인 2009년 당시 공주대 대학원생에 대한 신문
○ 판사
(조민이) 물갈이를 할 때는 그럼 어떤 설명을 해줬나요?
● 증인(해당 논문초록 제1저자)
하는 방법을 간단하게 이야기해줬습니다.
○ 판사
실험과 관련해서 설명은 안 해준 건가요?
● 증인(해당 논문초록 제1저자)
세세한 실험내용이나 방법들에 대해선 안 알려줬던 것 같습니다.
○ 판사
증인이 보고 있을 때 증인의 지시 하에 (조민이) 물갈이를 했다고 했잖아요. 증인이 옆에서 있어야 (물갈이를) 하는 거죠? 조민이 혼자 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 증인(해당 논문초록 제1저자)
제가 (물갈이를 하라고) 주고 잠깐 자리를 비울 수는 있지만 (조민)학생이 와서 스스로 (물갈이를) 판단하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변호인 "체험활동확인서, 사회적으로 허용돼 왔던 정도"
하지만, 정경심 교수 측은 설령 체험활동확인서 내용 일부가 과장돼 있다고 하더라도, 의학전문대학원 입시 업무 담당자에게 착각이나 오인을 일으킬 정도의 속임수(위계)라거나, 조민 씨의 자질에 대한 판단에 영향을 미칠 만큼 중대한 "과장"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정경심 교수의 변호인인 김칠준 변호사가 기자들 상대 브리핑에서 특히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는 점입니다.
○ 김칠준 변호사 (정경심 교수 변호인)
/ 공주대 체험활동확인서가 쟁점이 된 4월 22일 공판 후 기자 상대 브리핑
"(체험활동 확인서에) 시기상 없었던 일을 주장하고 그런 건 아니고 다만 있었던 일을 표현함에 있어서 이게 어느 정도까지 허용될 수 있는 표현이냐는 그런 문제는 있겠지만, 적어도 고등학생의 체험활동 확인서이기 때문에 그 (고등학생의 체험활동) 확인서라는 관점에 포커스를 맞추면 사회적으로 그동안 이뤄져 왔고 허용돼 왔었던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김칠준 변호사 (정경심 교수 변호인)
/ 단국대 체험활동확인서가 쟁점이 된 4월 29일 공판 후 기자 상대 브리핑
"변호인은 여전히 고3으로서, 아니 고등학생으로서 인턴 활동을 하고 체험학습 활동을 하고, 그 내용을 기재한 인턴 증명서, 체험 활동 확인서, 이런 것들이 과연 법적으로 처벌 받을 만큼의 허위 사실이냐에 관한 것이 가장 핵심이라고 (공판 과정에서 명백히 이야기를 했습니다.)"
쟁점: "과장된 표현" 또는 "허위"가 포함된 체험활동확인서는 '속임수(위계)'인가?
따라서 쟁점은 고등학생이었던 조민 씨의 체험활동확인서에 담겨 있는 "일부 과장된 표현"(정경심 교수 측 주장) 또는 "허위사실"(검찰 측 주장)을 국립대 의학전문대학원 입시 업무 담당자에게 학생의 자질에 대한 오인을 일으켜 잘못된 판단을 하게 만들 만큼의 속임수로 볼 수 있는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입시 과정에서 학생 측이 제출한 서류에 어느 정도의 "과장" 또는 "허위"가 있어야 '위계(속임수)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된다고 볼 수 있을까요?
물론 이에 대한 판단은 재판부의 몫입니다. 그럼에도 검토해 볼만한 자료는 있습니다.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에 대한 대법원 판례입니다. 대법원은 위계(속임수)의 요건을 상대적으로 엄격하게 해석해 문제의 행위가 공무집행과 관련해 실제로 "그릇된 행위나 처분"을 초래했을 때만 범죄가 성립될 수 있고, 만약 "구체적인 공무집행을 저지하거나 현실적으록 곤란하게 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아니"하였다면 범죄가 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에 있어서의 위계란 행위자의 행위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상대방에게 오인, 착각, 부지를 일으키게 하여 그 오인, 착각, 부지를 이용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에 따라 상대방이 그릇된 행위나 처분을 하여야만 성립하는 것이고, 만약 범죄행위가 구체적인 공무집행을 저지하거나 현실적으로 곤란하게 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아니하고 미수에 그친 경우에는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할 수 없다." [대법원 2003. 02. 11. 선고 2002도4293 판결]
이 판례에 따르자면 정경심 교수의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정경심 교수 측이 부산대 의전원 등에 제출한 체험활동확인서(또는 이 내용을 반영한 생활기록부)에 1) 과장된 표현 또는 허위사실이 있어야 하고 2) 과장된 표현 또는 허위사실이 학생 선발 담당자가 조민 씨의 자질에 대해 "오인, 착각, 부지"를 일으켜, 학생에 대해 실제 능력보다 높은 평가를 하는 등의 "그릇된 행위나 처분"을 하게 만든 요인이 된 것으로 판단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같은 점에 비춰볼 때 5월 7일 공판에서 임정엽-김선희 부장판사가 증인으로 나온 가톨릭 의대 교수를 상대로 질문한 것은 앞서 말했듯이 체험활동확인서 등에 포함된 내용이 조민 씨의 자질에 대한 "오인, 착각, 부지"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김 부장판사의 질문에도 드러나 있듯이 조민 씨의 체험활동확인서에 기재된 내용들("실지로 환자의 검체를 이용해 효소중합 반응검사 실습 시행" 등)을 읽은 의과대학 교수가 학생의 자질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하게 될지를 확인하려고 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판사는 "(이 같은 인턴십 확인서를 제출한 고등학생이) 우수한 학생이고 의과대학생을 능가할 정도라고 생각했을 것이란 말인가요?"라고 증인에게 물었고, 가톨릭 의대 교수인 증인은 "이 자료를 보면 그런 느낌이 들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해당 문답만 봐서는 증인으로 나온 가톨릭 의대 교수가 조민 씨의 평가를 담당한 학생 선발 담당자였을 경우 "오인, 착각, 부지"를 일으켰을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의전원 입시 업무 담당자들의 출석이 필요한 이유
하지만, 두 부장판사의 질문을 받은 가톨릭 의대 병리학과 교수는 서울대나 부산대 의전원에서 조민 씨가 제출한 자료를 실제로 평가한 담당자가 아닙니다. 재판부의 질문에 대한 가톨릭 의대 교수의 답변은 "과장된 표현" 또는 "허위사실"이 포함된 자료를 제출한 정경심 교수 등의 행동이 속임수(위계)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 참고할 수 있는 의견 정도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실제로 조민 씨의 자질을 평가했던 서울대와 부산대 의전원의 학생 선발 담당자들이 체험활동확인서 내용이 반영된 자료들을 보고 "오인, 착각, 부지"를 일으켰다고 볼 수 있는지, 그리하여 조민 씨의 능력을 실제보다 높게 평가하는 "그릇된 행위나 처분"을 하게 됐다고 판단할 수 있는지입니다.
이를 위해 재판부는 조민 씨가 지원했을 당시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에서 입시 업무를 담당했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서 관련된 교수들에게 증인 출석을 요구했습니다. 출석을 요구받은 교수 2명이 부산에서 재판이 열리는 서울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될 가능성이 있다며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지만, 재판부는 두 사람이 반드시 법정에 나와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재판부는 "불출석이 반복되면 구인영장을 (강제로) 집행할 수 있다."라는 입장까지 밝혔습니다. 재판부가 잡아놓은 날짜인 5월 21일과 28일에 해당 교수들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뤄질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재판부의 의지가 확고한 만큼 늦게라도 증인신문은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해당 교수들의 증언이 조민 씨의 체험활동확인서가 속임수(위계)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유일한 판단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설사 체험활동확인서 내용이 조민 씨에 대한 평가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해당 교수들이 증언하더라도, 입시 과정에서 학교에 제출하는 서류에는 진실만을 기재하도록 모집요강에 명시돼 있고 따라서 서류의 내용이 허위가 포함돼 있을 경우 이를 진실이라고 믿은 평가관이 오판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상식에 부합한다고 판단해, 재판부가 해당 교수들의 증언을 배척하고 체험활동확인서 제출이 위계에 해당한다고 규정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해당 교수들이 체험활동확인서 내용 때문에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고 증언하더라도, 체험활동확인서에 포함된 과장된 표현의 정도가 착각이나 오인을 일으킬 정도로 중대하지 않다고 재판부가 판단한다면 해당 혐의에 대해서 무죄를 선고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결국 판단은 재판부의 재량에 속하는 일입니다. 공판 과정만 보고 결과를 쉽게 예상할 수 있다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자들은 사기꾼에 가깝습니다.
귀까지 막아야 하는 '정의의 여신'을 위해서
지금까지 분석한 쟁점, 즉, '과장된 표현 또는 허위사실이 포함된 고등학생의 입시 관련 서류 제출을 속임수로 볼 수 있는지'는 정경심 교수 재판과 관련된 여러 혐의와 쟁점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검찰과 피고인 측이 이미 여러 쟁점을 제기한 상태이고, 더욱 많은 쟁점이 논란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다 보니 복잡한 쟁점과 사실관계를 쉽게 전달하기 어렵다는 점을 악용해 사실관계를 아무렇게나 왜곡하고, 이치에 닿지 않는 말로 관심을 끌어보려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앞으로는 지나치게 많은 허위 주장과 엉터리 분석이 난무하는 이 재판과 관련해 차분하게 쟁점을 정리하는 취재파일을 써볼 생각입니다.
법을 상징하는 '정의의 여신'은 흔히 눈을 가리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사랑해요 정경심"과 "정경심을 처벌하라"는 구호가 법원을 둘러싸고 함께 울려 퍼지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 시대의 '정의의 여신'은 귀까지 틀어막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너무나 커져버린 소음 속에서도 최선의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