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내는 캘리포니아에 Stay-at-Home 명령이 내려진 지 한 달이 되어간다. 병원이나 식료품점같이 필수 업종이 아닌 업장들은 재택으로 전환되었고, 식당은 포장과 배달만 가능하다. 미국 내에서는 직장을 잃거나 긴 고립 생활에 지친 이들이 "안전을 위해 자유를 포기할 수 없다"며 곳곳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때 '자유'는 사실 '경제'의 다른 이름이다. 코로나19는 단순한 질병을 넘어 한 나라의 행정력과 의료 체계를 보여주는 시험대가 되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코로나19 이전과 이후의 국가 경쟁력에 대한 평가는 달라져야 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정부의 행정력이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현재 상황을 보면서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시리즈 <게이브리얼의 죽음: 누구의 책임인가?>(이하 <게이브리얼>)이 떠올랐다. 한 시간가량 되는 다큐 6편으로 이루어진 이 시리즈를 재택근무를 하면서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지막 편을 다 보기까지 거의 3주 넘게 걸렸다. 비슷한 분량의 <킹덤> 시즌 2를 1박 2일 만에 끝냈던 것에 비하면 터무니없는 감상 속도였다.
<게이브리얼>은 한 소년이 엄마와 그 남자친구에게 잔혹하게 고문당하다가 죽은 사건을 다루고 있다. 한국 신문에서도 종종 올라오는 끔찍한 아동 학대에 관한 이야기다. 이 다큐의 탁월성은 사이코패스 같은 보호자의 일탈적 행위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연출가는 어떻게 이 사회가 이 소년을 방치했는지, 즉 아동복지 시스템이 어떻게 실패했는지에 더 초점을 맞춘다.
8살 소년 게이브리얼은 감금되어 있지 않았다. 학교를 다녔고, 공용 주택 마당에서 뛰어놀았다. 무엇보다도 그의 가족은 이미 사회복지사의 관리 대상이었다. 아이의 온몸은 아동학대의 증거였다. 그의 온몸에 난 상처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목격했고, 아이는 담임 선생님에게 직접적으로 고통을 호소했다.
담임은 아동복지국에 신고했고, 복지사는 가정을 방문했다. 하지만 교장은 담임에게 신고 이상으로 관여하지 말 것을 명령했고, 복지사는 엄마에게 아이의 심리상태를 확인하고 마무리했다. 교사가 신고할 때마다 이뤄졌던 복지사의 방문은 오히려 엄마와 남자친구가 게이브리엘에게 보복성 학대를 할 빌미가 되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담임은 신고를 계속해야 할지 망설이게 됐다.
복지 시스템은 있었지만, 관리자들은 의욕도 시간도 없었다. 게이브리엘은 자신같이 학대받는 아동들을 위해 마련된 24시간 의료 점검 서비스 혜택도 받지 못했다. 게이브리엘이 살던 도시 복지국 직원들은 눈앞에서 피멍이 든 게이브리엘을 보고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자기에게 배당되지 않은 일(게이브리엘 사건)을 조사하려면, 직장을 그만둘 각오를 하라는 상사의 명령 때문이었다. 그 뒤에는 복지국 외주직원들의 초과수당을 절대 지급하지 말라는 노동 규약이 있었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이
게이브리엘을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게이브리엘' 사건을 담당한 검사는 가해자인 게이브리엘 엄마의 남자친구를 고의적인 살인으로 간주해 1급 살인으로 기소했다. 배심원들은 최고 사형을 구형할 수 있는 1급 살인에 동의했다. 그리고 사형이 선고되었다. 엄마는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이런 강력한 처벌이 동일 범죄를 예방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몇 달 후 같은 지역에서 아동 학대 사망이 다시 발생하면서 무너졌다.
다큐멘터리 <게이브리엘>을 보고 있으면,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게이브리엘의 마을에는 아이를 보호할 제도적 장치들이 있었지만 경제 논리와 관료주의의 타성에 가려져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아이가 살아남으려면 마을이 그저 제대로 존재하는 것을 넘어 올바른 가치관을 지향해야 한다. 그것이 시스템에 숨을 불어넣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의 시대, 우리는 현재 살고 있는 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를 이전보다 적나라하게 보고 있다. <게이브리엘>은 아무리 좋은 제도가 있어도 그것을 꾸려나가는 공동체의 가치가 그것을 뒷받침하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코로나19는 숨 가쁘게 달려온 인류가 예기치 못한 제동장치가 되었다. 고도성장과 효율성만을 바라보며 달려갔던 전 세계의 가치는 이제 더 이상 유용해 보이지 않는다.
말 그대로,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가치관이 절실한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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