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국무총리
"우리는 오늘 국민의 삶과 국가 안위를 위해서 쓰여야 될 국가의 재정이,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온 피 같은 세금이 특정 정치세력의 정치적 뒷거래의 떡고물처럼 이리저리 나눠지고 그것으로 예산이 확정되는 장면을 지켜봤습니다... 우리 국회가 이렇게 20대 국회를 마감하는 것이 치욕스럽습니다."
-김재원 의원(예산결산특별위원장)
2019년 12월 10일, 국회 본 회의장. 2020년 예산안 수정안이 161명 투표, 156명 찬성, 3명 반대, 2명 기권으로 가결됐다.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는 감사인사를 했고 이 전 총리가 거명까지 했던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인 김재원 의원 등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회의록에 기록된 것만 '날치기' 27회, '세금 도둑' 6회 등을 외치며 항의했다. 20대 마지막 예산국회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가. 또 이번이 새삼스러웠을까, 아니었을까.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은 2018년부터 국회의 예산안 심사를 분석해 왔다. 이번에도 여느 해처럼, 또는 더 소란스럽게, 혹은 더 외면받으면서 새해 예산이 확정됐다. [마부작침]은 국회 예산회의록 4,795페이지와 각 상임위-예결위 심사보고서를 근거로 예산 심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분석했다. 그리고 질문을 던졌다. 의원님, 마지막 예산 심사 제대로 하셨습니까?
● 512.3조 원 '슈퍼 예산'... 10년 새 두 번 바뀐 앞자리
● 국회 예산 심사, 이렇게 진행했다
새해 예산을 정하는 절차는 대략 이렇다. 정부가 예산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하면 이를 국회가 심사해 확정한다. 2020년 예산이 확정되는 과정은 아래와 같았다.
● 국회발 신규사업, 역대 최대 규모
[마부작침]은 이번에도 '국회발 신규사업'에 주목했다. 국회발 신규사업은,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에는 없지만 국회에서 필요하다며 추가한 사업이다. 2020년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국회가 추가한 신규 사업은 487건, 예산액은 합쳐서 8조 557억 9,500만 원이었다. 정부 동의를 받지 못했거나 국회 심사 과정에서 제외된 것을 감안하면 국회의원들이 이보다 더 많은 신규사업을 요구했을 것으로 보인다.
국회발 신규사업 가운데 특정 지역과 관련이 있는 지역성 사업은 329개 사업, 67.6%가 해당했다. 지역성 사업이 모두 문제 있는 사업은 아니다. 다만 지역구 의원들, 혹은 차기에 노리는 지역구가 있는 의원들이 지역 사업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무리하게 노력했을 가능성이 있어 따로 분류했다.
● 마부작침의 기준 '4불 심사', 이번에는?
[마부작침]은 국회의 예산심사가 적절하게 이뤄졌는지를 판단하기 위한 기준으로 '4불'을 정했다. '네 가지 아닌 것'(불 不)으로 첫째는 '불법', 즉 관련 법령이나 예산 편성 지침 등을 어기고 예산을 편성한 사업이다. 둘째는 '불용', 즉 과거 예산을 편성해도 쓰지 못한 이력이 있거나 새해에도 사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큰 사업을 이른다. 셋째 '불심사', 비슷한 내역의 사업이라고 해서 뭉텅이로 심사하며 세부 사업은 심사 없이 넘어간 것을 뜻한다. 넷째 '불논의', 예산회의록 어디에도 논의한 흔적이 없는 사업을 가리킨다.
2018년 서울시 하수처리장 확충사업 예산 836억 원, 2019년 서울시 노후 하수관로 정비사업 예산 391억 원. 공통점은 하수 관련 사업, 서울시 사업, 또 국회발 신규사업, 민주당 한정애 의원이 요구한 사업, 그리고 보조금관리법 시행령을 위반한 예산 편성이라는 점이었다. 보조금관리법 시행령에는 재정자립도가 높은 서울시는 국비 보조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데 국회에서 이를 위반하고 사업 예산을 요구했고 이를 관철시켰던 것이다.
2020년 예산심사에서는 다행히 서울시 하수 관련 사업 예산을 '불법'으로 편성하진 않았지만 또 다른 '불법' 사업을 찾을 수 있었다. 물론 불용, 불심사, 불논의 예산도 어김없이 발견됐다.
2018년 국회 예산심사 분석 당시 [마부작침]이 던진 질문은 "의원님, 예산심사 왜 그렇게 하셨어요?", 2019년엔 "의원님, 예산심사 왜 또 그렇게 하셨어요?"였다. 2019년 10월 말 [마부작침]은 아예 2020년 예산안 심사를 시작할 무렵에 물었다. "의원님, 이번 예산 심사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큰 기대는 없었지만 그래도 20대 국회의 마지막 예산 심사는 조금은 달라지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국회는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나빠진 면들이 눈에 띄었다. 다른 쟁점 법안들에 치여 예산 심사를 뒷전으로 하는 모습, 예산안과 쟁점 법안 통과를 연계하는 협상이 잘 진행되지 않자 아예 특정 야당을 배제하고 강행 처리하는 모습도 등장했다. 다음 편에서는 먼저 '4불 심사'의 실상을 낱낱이 정리해 공개하겠다.
취재: 심영구, 정혜경 데이터 분석: 안혜민 디자인: 안준석, 김민아 인턴: 이승우, 이유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