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동안 펼쳐진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꿈. 우리는 마침내 그곳에 도착했습니다.
[배성재 아나운서 / SBS 축구 중계 캐스터 : "경기 끝났습니다! 대한민국! 아시안게임 또 한 번의 금메달을 목에 걸겠습니다!"]
선수들의 도전과 환희 그리고 눈물이 담긴 또 한 번의 드라마가 이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우리는 왜 그토록 축구에 열광하는 걸까요? 대한민국 축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 '김학범호' 출범…월드컵의 부담 안고 시작한 인도네시아 여정
수만 개의 섬으로 이뤄진 열정의 나라 인도네시아.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축구 대표팀은 큰 부담을 안고 출발했습니다. 올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월드컵의 기억이 여전히 선명했기 때문입니다.
실망스러웠던 스웨덴전. 아쉬웠던 멕시코전. 그리고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은 독일전. 사람들은 단 3경기로 축구가 줄 수 있는 희노애락을 모두 경험했습니다.
독일전의 영웅 손흥민과 조현우가 합류하면서 월드컵의 감동을 다시 느끼려는 기대감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습니다. '아시아의 맹주' '디펜딩 챔피언' 잠들어 있던 관심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고 대표팀은 피해갈 수 없는 부담과 마주쳤습니다.
■ '인맥 축구'로까지 불거진 와일드카드 논란…흔들리는 지휘봉
대회를 다섯 달 남겨 놓고 취임한 김학범 감독은 처음에는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김학범 / 아시안게임 축구대표팀 감독 : "준우승은 큰 의미를 못 두거든요. 우승을 해야 만이 그 목표를 이루는 것 아니냐."]
그러나 와일드카드 논란이 첫 암초가 됐습니다.
도마에 오른 선수는 손흥민과 조현우에 이어 3번째로 이름을 올린 황의조. 일본 무대에서 14골을 폭발하며 리그 득점 5위를 달리던 황의조는 해외파 공격수 가운데 가장 먼저 대표팀에 합류하며 출전 의지를 불태웠지만 여론은 싸늘했습니다.
김학범 감독은 완강했습니다.
[김학범 / 아시안게임 축구대표팀 감독 : "모든 책임은 감독인 제가 질 것이고 모든 것을 제가 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온 국민이 축구 감독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는 한국에서 '인맥 축구'라는 비판은 감독의 지휘봉을 흔들기에 충분했습니다.
■ "행운의 조 편성?"…말레이시아전 패배가 불러온 거센 비난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이룬 무실점 전승 우승의 기록은 김학범호에는 큰 부담이었습니다. 다행히 조 추첨 운이 따르는 듯했습니다.
약체로 평가된 바레인, 말레이시아, 키르기스스탄과 E조에 함께 편성됐습니다. 16강행 티켓을 무난히 따낼 '행운의 조'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개막한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황의조의 해트트릭으로 첫 경기 바레인전을 승리로 장식했지만 문제는 말레시이아와 2차전이었습니다.
피파랭킹 기준으로 114계단 아래의 팀에 패한 '반둥 쇼크'. 44년 만의 말레이시아전 패배에 국내 여론은 들끓었고 감독과 선수들은 거친 비난에 직면했습니다.
[손흥민 / 축구대표팀 주장 : "다시 한번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 무거웠던 태극 마크의 무게…'난적' 이란전부터 확 달라진 대표팀
대표팀에 쏠린 손가락질들. 하지만 태극마크의 무게를 견뎌내야 하는 것도 역시 선수들이었습니다.
키르기스스탄과 3차전에서 간신히 승리한 대표팀. 16강 상대는 중동의 강호 이란이었습니다. 역대 아시안게임에서 우리와 똑같이 4차례 우승한 가장 까다로운 상대.
대표팀은 그러나 이란전에서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였습니다. 단단해진 조직력과 자신감을 찾은 선수들. 대표팀은 황의조와 이승우의 연속골로 이란을 격파했습니다.
그리고 강력한 우승 후보 우즈베키스탄과 맞닥뜨린 8강전에서 대표팀은 혈투를 벌였습니다. 120분 난타전 끝에 얻어낸 값진 승리.
손흥민과 절묘한 호흡을 맞춘 황의조는 홀로 세 골을 몰아친 뒤 페널티킥까지 얻어내며 '인맥 축구' 논란을 종식시켰고 마지막 페널티킥을 차마 쳐다보지 못하던 손흥민은 경기가 끝난 뒤 포효했습니다.
다리가 풀린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주저앉았고 마음고생이 심했던 김학범 감독은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김학범 / 아시안게임 축구대표팀 감독 : "너무 힘들게 온 거 같아서…(인터뷰) 그만합시다."]
■ '박항서 매직'의 베트남 격파…사상 첫 한일전 결승 성사
난적을 잇따라 격파한 대표팀의 준결승 상대는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이었습니다. 전현직 아시안게임 대표팀 감독 '학범슨'과 '쌀딩크'의 만남.
김학범 감독의 말대로 매 경기 5%씩 완성도를 높인 대표팀의 전력은 완성형에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경기 조율부터 수비까지 가담한 '캡틴 손흥민'과 식을 줄 모르는 골 감각을 자랑한 황의조.
[최용수 전 감독 / SBS 축구 해설위원 : "왜 저런 선수가 러시아 월드컵에 안 갔는지 모르겠어요 진짜."]
그리고 기량이 만개한 이승우까지. 숱한 논란의 중심인 황희찬도 마치 황소처럼 뛰며 대표팀을 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결승전. 가장 원하던 무대에 오른 대표팀은 결국 꿈을 이뤘습니다.
■ 한국 축구 마침내 금메달…우리에게 축구란 어떤 의미일까
우리나라는 금메달에 걸린 병역 혜택이 선수들에게 강력한 동기를 부여하지만 사실 아시안게임은 월드컵이나 올림픽과 달리 모든 나라가 온 힘을 쏟는 대회는 아닙니다. 손흥민의 아시안게임 출전에 세계 언론이 관심을 보인 이유기도 합니다.
하지만 병역 혜택에 대한 관심을 고려하더라도 축구 대표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어느 종목보다 뜨겁습니다.
우리에게 축구는 어떤 의미일까요?
중국을 압도하고 일본을 제압하는 한국 축구. 중동과 맞붙어 싸우며 아시아의 맹주로 불리는 한국이라는 나라.
2002년 여름의 붉은 함성이 우리의 가슴에 불을 질러놓았기 때문일까요? 우리 선수들이 세계 무대에서 정상급 선수들과 대등하게 대결하는 모습.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보고 잊혀졌던 단어를 떠올리기도 합니다.
열정, 도전, 자신감 그리고 동료. 지친 일상 속에서 가끔은 사그라들지 몰라도 사라지지는 않는 불꽃 같은 말들.
한국 축구의 힘은 바로 여기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요?
그래서 우리가 한국 축구를 사랑하는 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