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벌어진 장미란 씨 실종 허위 종결 사건과 관련해 '암장'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암장'은 몰래 파묻는다는 뜻이다. 혐의나 의혹이 뚜렷한 사건을 더 이상 수사하지 않고 종결하는 것을 말한다. 형사사법 관련 업무 종사자들 사이에서 쓰이던 개념이지만, 장미란 씨 사건을 계기로 전 국민이 익숙하게 느끼는 용어가 됐다.
장미란 씨 사건을 '보완수사 폐지'와 연결 짓는 이유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장미란 씨 사건을 '보완수사 폐지'나 '수사지휘 폐지'와 연결 짓는다. 불신 때문이다. 사람 목숨과 직결된 사건조차 이렇게 처리하는 경찰 조직이 보완수사라는 통제장치에서 벗어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걱정되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사회적 약자일 경우 사건이 '암장'될 가능성이 특히 높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국가가 피해자인 사건들의 '암장' 가능성이 더 문제
피해자가 사회적 약자인 경우 암장 가능성이 높아지는 이유에 대해 먼저 살펴보자. 지금까지는 국가가 고용한 법률가인 검사가 피해자를 대신해 수사 과정에서 법률적 전문성이 요구되는 업무를 수행했다. 오는 10월부터는 검사가 수사에서 '분리'된다. 그렇다고 법률적 전문성에 대한 피해자의 수요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들은 검사의 공백을 조금이라도 메우기 위해서 직접 법률가를 선임해 대응해야 한다. (물론 그렇게 해도 검사의 공백을 완전히 메울 수는 없다.)
이는 피해자의 '대응력'에 따라 수사 결과가 달라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적 약자는 '대응력'이 약한 사람들이다. 좋은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고, 아동이나 발달장애인 같이 수사 과정에서 자신의 의사를 개진할 능력 자체가 부족한 경우도 있다. '대응력'이 떨어지는 만큼 사건들이 '암장'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하지만 '대응력'의 관점에서 더 문제가 되는 것은 피해자가 아예 없는 사건들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피해자가 국가 또는 사회라서 특정되지 않는 사건들이다. 사회적 약자 사건에서는 어쨌든 '대응력'을 가진 피해자가 존재한다. 피해자 측이 언론에 고발이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이나 뇌물 사건에서는 그런 일이 불가능하다. 피해자가 국가 또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검사가 바로 국가나 사회를 대리하는 법률가인데, 이들은 이제 수사 과정에 직접 관여할 수 없다. 대응할 피해자가 없으니 사건이 암장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암장'을 기쁘게 받아들일 사람들
더 무서운 것은 이로 인한 피해가 드러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환경 오염과 비슷하다. 강물에 폐수를 방류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법률이 폐지됐다고 가정해 보자. 공장들이 폐수를 강으로 흘려보내겠지만 당장 문제가 드러나지는 않는다. 강물 색깔이 거무튀튀해지거나 강에서 악취가 날 수는 있겠지만 누군가의 개인적 이익이 침해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류가 시작된 지 5-10년 정도 흐르면 상황이 달라진다. 병에 걸리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심지어 목숨을 잃는 경우도 생긴다. 그 지경이 되어도 문제의 근본 원인이 '폐수 방류 금지법 폐지'라는 결론에 이르기까지는 세월이 더 필요할 것이다. 마침내 폐수 방류를 다시 단속하기 시작해도 강물이 다시 깨끗해지는 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영영 회복하지 못할 수도 있다.
피해가 드러나기까지 많은 시간 필요…회복할 수 있을까?
그러나 시간이 흘러 부패가 만연하게 되고, 비공식적 영향력이나 뇌물 없이는 공적 업무를 처리하기가 어려워지는 상황에 이르면 비로소 무언가 잘못됐다는 점을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그때가 되어도 문제의 원인이 잘못된 '검찰 개혁'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제도를 복원하거나 개선하기까지는 더 오래 걸릴 것이다. 복원이나 개선이 가능한 상황이라면 말이다.
사회적 약자 사건에 대한 암장 우려는 타당하다. 그러나 진짜로 아무도 모르게 암장될 가능성이 높은 것은 공적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국가와 사회를 상대로 저지르는 범죄들이다. 이런 '암장'은 당분간은 눈에 띄지조차 않을 것이다. 상당한 시간이 흘러 임계점을 넘어선 후에야 심각성을 느끼게 될 것이다. 너무 늦기 전에 되돌릴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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