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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전두환, 무기징역 받고 2년 만에 출소…왜 제대로 심판하지 못했나

꼬꼬무 찐리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2일 방송된 '전두환, 심판의 날'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가수 겸 배우 김정민, 댄서 가비, 방송인 김지영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특별한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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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96년 3월 1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이야. 국내에서 일어나는 규모가 큰 사건들은 대부분 여기서 재판을 해. 이제 임관 5년 차인 황상현 판사가 재판을 위해 출근하고 있어. 근데 오늘따라 법원이 평소와는 달라. 법원 로비에 사람들이 가득해. 그 이유는 바로, 황판사가 오늘 맡은 재판 때문이야. 황판사는 이 재판 때문에 전날 밤잠까지 설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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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에는 5년 차의 아주 경력이 일천한 판사였지만, 중요한 사건이라고 판단이 됐기 때문에 굉장히 저도 긴장하고. 과연 재판이 잘 진행될지에 대해서 걱정을 했던 그런 기억이 납니다."
-황상현, 재판 당시 배석판사

황 판사는 선배 판사들과 함께 재판에 들어갈 준비를 해. 세 명의 판사들 모두 초긴장 상태야. 선배 판사 두 명이 먼저 입장하고, 황 판사가 그 뒤를 따라. 그때, 재판장을 맡은 선배 판사가 마지막으로 들어오는 황 판사한테 "들어올 때 문 잠그고 들어와"라고 말했어.

"문을 안에서, 법정 안에서 잠그질 않습니다. 그런데 그 사건의 경우에는 문을 잠그라고 하셨던 기억이 나요. 제가 그때 그 이유를 여쭤봤더니, 혹시라도 이상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재판 진행 도중에 법대로 올라와서 소란을 피운다던가 그런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그런 지시를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황상현, 재판 당시 배석판사

당시엔 기자들의 법정 출입을 허용하지 않을 때야. 근데 이 재판엔, 방송사 기자들까지 출입해 있었어. 촬영도 진행된다는 거야. 또 법원 소송의 경위들도 엄청 많이 배정됐어.

"그 당시에 통상 법정 하나에 법정경위 한 분이 제복을 입고 질서유지를 하는 게 일반적인데, 서울중앙지방법원 내 법정경위 분들이 총동원 돼서 한 30명은 넘었던 거 같아요."
-황상현, 재판 당시 배석판사

이 사건, 심상치 않아 보이지? 잠시 후, 피고인들이 법정에 들어와. 피고인만 무려 16명이야. 그중에 가장 먼저 들어온 피고인한테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어. 조용했던 법정이 술렁이기 시작해. 어떤 사람들은 그 피고인을 향해 응원의 박수를 보내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며 욕을 하기도 해. 이 피고인은 죄가 무려 9개야. 그중 첫 번째 죄목이 '반란수괴'. 국가를 전복할 목적으로 반란을 일으킨 집단의 우두머리라는 거야. 이 피고인의 정체, 누구일 거 같아? 바로 이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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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고, 무고한 광주 시민들을 무력으로 짓밟은 사람. 체육관 선거로 대통령이 된 후에, 노동, 종교, 언론 등 사회 전 계층을 탄압했어. 그리고 불법 비자금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어. 1996년 12.12 군사 반란을 일으킨 지 17년 만에, 전직 대통령 전두환이 법정에 섰어. 국내뿐 아니라 해외 언론까지 주목했던 그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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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시청자들 사이에서 전두환의 별칭이 있어. '꼬꼬무 남주', 즉 '꼬꼬무'의 남자주인공이라는 이야기야. 그만큼 많이 등장했다는 말이지. 그동안 '꼬꼬무'는 12.12 군사반란, 하나회 등 전두환의 행적을 집중 조명해 왔어. 오늘은, '꼬꼬무 남주' 전두환을 보내주는 날이야. '전두환 3부작'의 마지막 편, 이름하여 '전두환 심판의 날'이야.

▲ 첫 번째 심판의 기회

사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퇴임한 직후부터 심판할 기회는 여러 번 있었어. 전두환에 이어 대통령이 된, 전두환의 절친이자 조력자 노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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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간접선거로 대통령이 된 친구와는 달리, 노태우 전 대통령은 직선제로 당선됐어. 전 정권보다는 상대적으로 당당했겠지. 하지만 노태우 정부는 초반부터 큰 난관에 봉착해. 헌정사상 처음으로 여소야대 정국이었거든. 13대 국회의원의 선거 결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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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대통령이 속한 민주정의당보다, 야당의 의석수가 더 많아. 야당이 힘을 합치면 정국을 주도할 수 있는 상황이야. 노태우 전 대통령은 야당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김영삼과 김대중을 필두로 한 야당은, 전 정권의 비리와 5.18에 대한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 전두환에 대한 심판의 칼을 꺼내든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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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장, 특별위원회가 설치되고 청문회가 열렸어. 이게 바로 '제5공화국 청문회'야. 지금은 국회 청문회가 자주 열리지만, 이 5공 청문회가 헌정사상 최초의 청문회였어. 전국민적 관심 속에 TV 생중계도 했어. 5공 청문회의 시청률은 무려 81%. 사실상 전 국민이 다 본 셈이야. 등장인물이, 장난 아니야. 장세동 전 안기부장에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까지 소환됐어.

그리고 전두환 전 대통령도 직접 증인석에 출석했어. 전두환 전 대통령은 5.18에 대한 사과 없이, 발포 명령은 정당한 자위권 행사였다고 주장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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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1980년) 5월 22일 자위권 발동도 가능하다는 계엄사령부의 작전 지침이 지휘계통을 통해 하달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위급한 상황에 처한 현지 지휘관들이 자위권 행사의 불가피성을 강조했으나…"
-전두환

전두환의 증언에 야당 의원들은 거세게 항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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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포 책임자도 밝혀! 살인마 전두환!"
"사람 죽여놓고 자위권 발동이 뭐야!"

장내가 아수라장이 됐지만, 전두환은 질의응답 없이 미리 작성한 발표문만 낭독하고는 황급히 자리를 피했어.

청문회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형, 사촌동생 등 일가친척들과 측근들이 구속됐어. 하지만 정작 전두환 본인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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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면목이 없는 일입니다. 진심으로 사죄를 드리며 머리를 숙여서 용서를 빕니다."
-1988년 11월 23일, 전두환 대국민 사과 中

불법 비자금에 대해 사과하고 사회환원을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지. 사상 최초의 청문회는 그렇게 흐지부지 되고 말아.

▲ 두 번째 심판의 기회

시간은 흘러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섰어.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32년간 이어진 군부 출신이 아닌, 민간인 출신이 대통령이 된 거야. 바로, 대한민국 14대 대통령 김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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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대통령은 박정희 정권 때부터 군부독재에 강하게 반발한 인물이야. 그래서 전두환과 사이가 아주 안 좋았어. 전두환은 대통령 시절 정적인 김영삼을 굉장히 탄압했어. 툭하면 가택연금 조치를 시키고, 수시로 정계은퇴하라고 협박하며 김영삼 측근들을 안기부로 끌고 가서 고문했어. 이렇게 모진 세월을 겪은 김영삼이 대통령이 된 거야. 두 번째 심판의 기회가 찾아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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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된 김영삼은 가장 먼저 뭘 했을까? 바로 '하나회' 숙청. 하나회는 전두환이 이끈 사조직으로, 12,12 군사 반란을 주도한 세력이야. 김영삼 정부 때까지 온갖 요직을 장악하고 있었어. 김영삼 대통령이 인사권을 발동해서 군 수뇌부를 대거 교체하기 시작해. 하나회 해체 작업을 단행한 거지. 취임 후 한 달도 채 안된 시점이었어. 김영삼 대통령의 이런 행보에, 국민들은 절대적인 지지를 보냈어. 김영삼 대통령은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며 인기를 구사했어.

그리고 취임식 석 달 후인 1993년 5월 13일. 김영삼 대통령은 5.18 관련 담화문을 발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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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분명히 말하거니와 오늘의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서 있는 민주정부입니다."
"저는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상규명과 그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주장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 특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고 듣고 있습니다."
-5.18 관련 담화문 내용 中

하나회 해체를 넘어, 5.18 가해자들도 단죄하려는 움직임일까? 국민들은 기대감에 찼어. 그런데, 담화문 뒷내용을 들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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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진상규명은 역사를 올바르게 바로잡고 정당한 평가를 받자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결코 암울했던 시절의 치욕을 다시 들추어내어 누구를 벌하자는 것은 아닐 겁니다. 이는 훗날의 역사에 맡기는 것이 도리라고 믿습니다."
-5.18 관련 담화문 내용 中

지금 당장은 단죄하지 않겠다는 말로 들리지? 김영삼 대통령은 왜 이런 결정을 한 걸까? 과거에 했던 약속 하나가, 김영삼 대통령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야. 그 답을 알기 위해, 김영삼이 대통령이 되기 전으로 시간을 돌려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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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13대 국회의원선거 결과가 '여소야대'로, 노태우 대통령에게 불리한 상황이었지? 하지만, 통일민주당을 이끌던 김영삼도 깊은 고민에 빠졌어. 같은 야당이지만, 김대중의 평화민주당보다 의석수가 적었거든.

이대로라면, 다음 대통령 선거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인 거지. 그래서 김영삼은 고민 끝에 파격적인 결단을 내렸어. 당시 여당이었던 민정당과 손을 잡기로 한 거야. 노태우 당시 대통령과의 연합이야. 김종필 총재가 이끄는 신민주공화당도 여기에 합세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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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이제 여야 정당이 합당하여 새로운 국민 정당이 탄생됩니다."

이게 바로 '3당 합당'이야. 이 과정에서 김영삼은 문제의 그 '약속'을 하게 돼. 바로, '5공 군부에 대한 처벌 감형'. 노태우가 이끄는 민정당 의원 대부분이 5공 관련 인사들이었어. 이제 그들과 같은 당이 됐으니, 뭔가 약속을 해야 했겠지.

또 김영삼 대통령이 전두환을 직접 처단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어. 대통령에겐 사법권이 없어. 하나회 척결은 대통령에게 군 인사권이 있기에 가능했어. 하지만 누군가를 처벌하는 일은, 헌법상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검찰의 기소와 법원의 판결이 필요한 일이야. 그럼 검찰의 입장은 어땠을까?

검찰은, 전두환에 대한 수사를 개시하긴 했어. 왜냐하면 누군가 전두환 전 대통령을 고소했거든. 바로 이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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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군사반란 당시 신군부에 저항했던,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 장군. 영화 '서울의 봄'에서 정우성이 연기한 이태신 캐릭터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야. 12.12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정승화 장군과 함께 반란 및 내란목적살인죄로 전두환을 검찰에 직접 고소했어. 전두환 전 대통령, 검찰에 출두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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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월 10일, 전두환은 출두하긴 했어. 그런데 검찰로 출두한 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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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최규화 전두환 노태우 전직 대통령과 만나 국정 현황을 설명하면서 국정 운영에 대한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1994년 1월 13일 대한뉴스

전두환 고소 건에 대해 검찰에서 수사 중이었던 상황인데도, 김영삼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과의 만찬에 전두환을 초대한 거야. 청와대에서 만찬을 마치고 귀가한 전두환은 이런 말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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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칼국수 맛있게 잘 먹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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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 문제에 대해서 각별히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고, 조언을 해드렸다면 조언이라고 그럴까. 김 대통령께서도 잘 알고 계시더라고."

대통령이 이런 식으로 나오니까, 검찰은 어땠겠어. 1994년 10월, 검찰은 정승화-장태완 장군의 고소건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려. 전두환의 죄는 인정하나 기소는 미루겠다는 거야. 당시 검찰의 입장을 이랬대.

"위 피해자 등을 기소하는 경우 불필요하게 국력을 소모할 우려가 있고, 국가 발전에도 지장을 초래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음. 이 사건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는 후세에 맡기고,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이번 검찰의 결정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것."

이번에도 평가는 후세에 맡기겠다는 결론이야. 김영삼 대통령이 발표했던 5.18 담화문과 기조가 같아. 검찰과 정부의 소극적인 모습에 국민들은 실망을 많이 했어. 이때부터 전국민적으로 비판 여론이 들끓기 시작해. 이런 여론을 반영하듯, 5.18을 다룬 드라마까지 등장했어. 바로 배우 최민수, 고현정 주연의 SBS 드라마 '모래시계'야. "나 떨고 있니?"라는 유명한 대사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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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는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최초의 드라마야. 드라마에 5.18 민주화운동 실제 영상을 삽입하며 당시의 참상을 생생하게 전달했어. SBS의 올타임 레전드 드라마야. 평균 시청률이 46%였고, 최종회는 무려 64.5%였어. 드라마를 보려고 다들 집에 빨리 귀가한다고 해서 '귀가시계'라는 애칭도 있었어.

이렇게 과거청산에 대한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이 상황을 반전시킬만한 사건이 또 발생했어. 장태완-정승화 장군에 이어 5.18 피해자와 유가족들도 전두환과 노태우를 고소했거든.

혹시,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말 들어본 적 있어? 당시 이 사건을 맡았던 담당 검사가 했던 말이야. 장태완-정승화 장군의 고소건은 '기소유예' 처분이 나왔지. 그런데, 5.18 관련 고소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결론이 났어. '기소유예'는 기소를 할 수 있지만 미루는 것이고, '공소권 없음'은 기소 자체를 안 하겠다는 거야. 그동안 미온적 태도를 보였던 김영삼 대통령도 이번만큼은 격분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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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발표한 검사를 내가 혼을 내줬습니다. 뭐 독일에 그런 이야기가 있다 그래요. 나는 그거는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성공하든 실패하든 쿠데타는 쿠데타죠. 어디서 지식을 알아도 말이야 그런 거 못된 거 배워 가지고 말이야."
-김영삼

사실 김영삼 대통령이 태세를 전환해야 했던 이유가 있어. 당시 정부에 대한 민심이 최악이었거든. 국정지지율이 28%까지 떨어졌어. 하나회를 해체하고 금융실명제를 실시했던 국정 초기에는 지지율이 80%가 넘었었어. 2년 만에 민심이 급격하게 돌아선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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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 사고, 그리고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이런 대형 참사가 연달아 터졌어. 그러니까 정부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찍고, 민심이 급속도로 악화된 거지. 김영삼 정부는 국민들의 지지를 회복해야 했어. 그래서 고심 끝에 칼을 빼들었어. '역사바로세우기' 운동으로 과거사 청산을 단행하기로 한 거지.

하지만, 문제가 있었어. 검찰이 이미 불기소 처분을 내린 사건이라, 또다시 수사할 수가 없다는 거야. 김영삼 대통령은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법을 새로 만들었어. 대통령이자 여당의 총재였던 김영삼 대통령은 국회에 5.18 특별법 제정을 지시했고, 일사천리로 통과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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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민주화운동이 역사적인 재평가를 받을 수 있게 됐고 쿠데타를 주도한 신군부 세력에 대해 단죄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습니다."

▲ 특별한 인연

칼자루는 다시 검찰로 넘어갔어. 하지만 지금 검찰 내부 사정이 복잡해. 그간 검찰의 처분은 '기소유예', '공소권 없음'이었는데, 이 기조를 뒤집어야 하는 상황이야. 조금 곤란했겠지. 하지만 이 분의 생각은 달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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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환 검사장. 5.18 특별법이 통과되기 두 달 전에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됐어. 서울중앙지검은 전국 검찰청 중 핵심이야. 정치 경제적으로 중요한 사건들 대부분을 서울중앙지검에서 담당해. 아주 중요한 시기, 중요한 곳에 최환 검사장이 임명됐어. 최환 검사장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던 기존의 검찰 기조와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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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쿠데타도 쿠데타이기 때문에 (수사를) 밀어붙인다 이거예요. 어찌 됐건 쿠데타를 한 사람인데 그 당시 군 형법상으로는 다른 요지가 없었기 때문에 그대로 밀고 가야지. 거기서 검사장이 우왕좌왕하거나 주저주저했으면 안 따라오죠. 책임은 내가 진다 도장 찍고… 지금 생각하면 그런 용기 있는 결단은 검사장이 안 하고는 안 돼요."
-최환, 당시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

놀랍게도, 최환 검사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이 있어. 그 이야기가 영화 소재가 되기도 했어. 바로 영화 '1987'이야.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으로 시작되는 영화지. 1987년 당시 서울대 학생이었던 박종철 군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던 중 모진 고문으로 사망한 사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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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경찰은 이 사건을 덮으려 했어. 그런데 그에 맞서서 진실을 밝히려던 검사가 한 명 있었어. 영화에서 배우 하정우가 연기했던 그 검사. 사건 은폐를 위해 급하게 시신을 화장하려는 경찰에 맞서, 부검을 통해 진실을 밝히려던 검사 캐릭터. 그 실존인물이 바로, 최환 검사장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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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서 수사를 하다가 수사하던 피의자가 사망을 했다. 너무 어처구니없게 나한테 와서 설명을 자기들 딴에는 때리거나 고문한 것도 없이 그냥 소리 한 번 크게 질렀더니 억하고 죽었다 이런 식이에요. 그걸 누가 믿을 수가 있나요?"
-최환, 당시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

최환 검사는 이 사건을 철저하게 조사하기 시작했어. 그런데, 누군가에게 전화가 걸려와.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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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으로서 명령하는 건데 그건 이제 전화로 '경찰에서 열심히 하면서 고생해서 조사하다가 그거 참 이 일이 벌어진 거 같다 그거 그냥 덮어라' 그랬어요. 그 점에 대해서는 검사가 대통령이 '덮어라' 한다고 해서 덮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그냥 적당히 할 처지가 못 된다 해서 대통령께 '안됩니다' 얘기를 했어요. 대통령이 덮어버리라고 하는 사건을 끝까지 우겨가면서.."
-최환, 당시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

당시 최환 검사는 전두환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했대.

"각하, 이 사건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해야 합니다. 이제 곧 올림픽이 열립니다. 이 뻔한 사실을 이렇게 숨기면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웃음거리가 될 겁니다."

1년 뒤에 열릴 88 서울올림픽을 언급한 거야. 이 말을 들은 전두환은, 묵묵부답이었다고 해. 최환 검사는 그렇게 어마어마한 외압을 이겨내고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데 성공했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은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고, 그렇게 전두환 정권은 끝이 났어.

그리고 8년 뒤, 최환 검사는 서울중앙지검장이 되어 전두환 수사에 의지를 불태우고 있어.

▲ 전직 대통령 체포작전

1995년 11월 30일, 최환 검사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부로 12.12사태와 5.18에 대한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고 두 사건에 대한 수사를 재개합니다"라고 발표했어. 검찰의 묵직한 첫 공격이야. 특별수사본부에는 날고 기는 에이스 검사들이 차출됐어.

이틀 뒤인 1995년 12월 2일 아침, 연희동 전두환 자택 앞. 전두환은 이런 발표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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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이 자리가 우리나라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고 또 어디로 가고자 하는지에 대한 믿음을 상실한 채, 침통한 마음으로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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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한민국의 전임 대통령 자격으로 김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해서 격려를 아끼지 않았고, 조언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취임 후 3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 와서 김 대통령은 갑자기 저를 내란의 수괴라 지목하며 과거 역사를 전면 부정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의 진상 규명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다분히 현 정국의 정치적 필요에 따른 것이라고 보아 저는 검찰의 소환요구 및 여타의 어떤 조치에도 협조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반격이야. 이날은 검찰이 출두 명령을 내린 날이었어. 이에 반발한 전두환이 자신의 자택 앞에 기자들을 모아놓고 '골목성명'을 발표한 거야. 이건 정치보복이라며, 자신은 출두에 응할 수 없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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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이 그 당시에 보면 '너무 당당하다' 그때 온 국민의 관심사 속에서 겸손한 모습이라던지 그런 모습을 기대했었는데 오히려 진짜 보무도 당당하게 걸어 나와서 '나는 당당하다, 죄지은 거 없다' '다 끝난 얘기 가지고 인제 와서 또…' 이런 식으로 하니까. 너무 어이없고 오히려 이게 또 황당한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김균종 SBS기자, 당시 영상취재

전두환은 골목성명 발표 후 고향인 합천으로 향했어. 특별수사본부는 긴급회의를 열어. 내일이 조모 제사라서 합천에 간다는 전두환 측의 설명을 믿지 않았어. 그걸 핑계로 도주하려는 거 아니냐며, 긴급 체포를 결정했어.

사상 초유의 전직 대통령 체포작전. 검찰은 체포조를 꾸려 합천으로 향했어. 합천경찰서에 모여서, 어떻게 체포할지 밤새 작전회의를 했대. 다음날 새벽 6시, 전두환 체포를 위해 출동했어. 목적지는 전두환이 머물고 있는 5촌 조카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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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를 위해 출동한 수사관들. 그들을 막아서는 마을 청년들. 양측의 첨예한 대립. 이 모습을 취재하려는 기자들까지, 모두가 한데 뒤엉켰어. 그야말로 아수라장. 30여 분의 실랑이 끝에 수사관들이 집 진입에 성공했어. 전두환은 그때 뭘 하고 있었을까? 놀랍게도, 자고 있었대. 밖에서 그 난리인데.

잠에서 깬 전두환은 아주 여유로웠어. 조금만 기다리라며, 옷을 갈아입고 세수를 하며 20분가량 지체했어. 잠시 후, 대문 밖으로 전두환이 모습을 보였어. 수사관들이 으레 하듯 양쪽에서 팔짱을 끼니까, 신경질적으로 뿌리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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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의 연행을 본 친척들과 측근들은 "각하! 안됩니다!" 하면서 울부짖었대. 근데 전두환의 반응은 손을 흔들어주기도 하며 여전히 너무나 여유로웠어.

어쨌든 압송은 시작됐어. 목적지는 안양교도소. 합천에서 안양으로 가려면, 고령군에서 88고속도로에 진입해서 구마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를 거쳐 가야 해. 전두환 압송 차량은 총 7대로 편성됐는데, 전두환은 그중 3번째 차량이었어. 그 뒤로 100여 대의 취재진 차량이 따라붙었어. 국내는 물론 외신 기자들도 따라붙었대. 전대미문의 전직 대통령 압송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창문을 열고 몸을 밖으로 내밀기까지 하면서 사활을 걸었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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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이 탄 차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압송 차량이 추풍령 부근을 지날 무렵, 금강휴게소에 들르기로 했어. 전두환이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했거든. 근데 이때, 또 하나의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해. 맨 앞에 있던 순찰차가 금강휴게소를 그냥 지나쳐버린 거야. 압송 차량은 다 같이 움직여야 해. 어쩔 수 없이 나머지 차들도 그렇게 휴게소를 그냥 지나쳤어. 그래서 수사관들은 다음 휴게소에 가기로 해. 이번엔 모든 차량이 휴게소에 제대로 진입했지만, 화장실에 갈 수가 없어. 전두환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취재진이 벌떼같이 몰려든 거야.

"내려서 화장실을 가려고 하는데 취재진들이 뺑 둘러싸서 가로막고 이러니까 실랑이가 있었어요. 검찰 수사관들하고 '왜 용변을 보러 가는데 그러느냐?' 하니까 '취재할 기회를 줘야 될 거 아니냐' 그래서 거기서 실랑이를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거기서도 용변을 못 봤어요. 전두환 씨가 가자고 그랬어요. 그냥 올라가자고."
-유병태, 당시 압송 담당 경찰

결국 전두환은 화장실을 포기하고 다시 차에 탔어. 이후에도 휴게소에 못 들를 가능성이 크지. 또 기자들이 몰릴 테니까. 수사관들은 고민 끝에 한 가지 결정을 내려. 전두환에게 깡통 하나를 건네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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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어떻게 여기에 소변을 볼 수 있겠는가?"

전두환은 여유롭게 거절했대. 어쨌든 이런 우여곡절 끝에, 안양교도소에 도착했어. 이 때도 수많은 취재진과 시민들, 경찰들이 뒤섞여서 북새통을 이뤘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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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소절차를 마치고 수용실로 이동한 전두환. 교도소 측에서 점심식사를 제공해. 전직 대통령에게 내놓은 교도소의 첫 식사. 당시의 식단을 그대로 재현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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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미역국, 김, 김치. 특별대우 없이 교도소 식단 그대로였어. 전두환은 먹지 않았대. 일종의 시위 같은 거였대. 측근들과 가족들은 물론, 교도소장까지 나서 만류했지만, 보름이 넘도록 단식투쟁이 이어졌어. 수감 전에 74kg이었던 몸무게가 64kg까지 빠졌어. 결국 건강악화로 실신까지 하게 된 전두환은 병원으로 이송됐어.

▲ 세기의 재판

전두환이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한 이후에 법정에 서게 돼. 그게 바로 아까 황상현 판사의 그날이야. 당시 모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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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옆에 선 노태우 전 대통령. 절친답게 두 사람은 법정에서 손을 꼭 잡고 있는 모습이야. 노태우는 왜 전두환과 같이 법정에 섰을까? 노태우 전 대통령은 사실, 친구보다 보름 먼저 구속 수감됐어. 전두환이 체포되기 한 달 반 전으로 돌아가볼게.

1995년 10월 19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이날은 국회 본회의가 있는 날이야. 본회의장 단상에 선 민주당 박계동 의원은 뜻밖의 얘기를 꺼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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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전 대통령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금액의 비자금이 존재합니다."

그러면서 주장한 비자금은 무려 4천억 원. 정말 어마어마한 금액이지. 국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어. 노태우 전 대통령은 처음에는 자신과 무관한 일이라며, 법적 대응하겠다고 발뺌했어. 하지만 진실은 곧 밝혀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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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총재가 자신도 대선 당시 노태우로부터 20억 원을 받았다고 고백한 거야.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은 결국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비자금의 존재를 인정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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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 노태우 외람되게 국민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상처받은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 드릴 수만 있다면, 또 그것이 속죄의 길이라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습니다."
-1995년 10월 27일 노태우 기자회견.

조사 결과, 무려 2,300억 원이 넘는 뇌물수수혐의가 밝혀졌고, 11월 16일에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됐어. 전두환보다 보름 먼저 구속된 거야. 헌정 사상 최초로 구치소에 들어간 대통령이 됐지. 국내는 물론 외신까지 당시 상황을 주목했어. 그리고 보름 뒤, 전두환 전 대통령도 구속된 거지. 이렇게 전직 대통령 둘이 나란히 법정에 서게 된 거야.

두 사람은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나눴을까. 전두환이 먼저 친구에게 말을 걸었는데, 첫마디는 이거였대. "자네 구치소에는 계란프라이 나오나?"라고. 그러자 노태우는 "아니 안 나와"라고 말했고, 전두환은 다시 "우리도 안 나와"라고 했다고 해.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고 수많은 사람을 죽게 한 죄로 재판을 받는데, 두 사람의 대화는 너무 평온하지. 이런 태도는 재판 내내 이어졌대. 심지어, 팔짱을 끼고 앉아 이따금 다리를 흔들거나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기도 했어.

이 재판에는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됐어. 오죽했으면, 이런 일도 있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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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만 해도 요즘과 달리 방청권을 추첨한다는 그런 시스템이 확립되어 있지 않을 때라서, 선착순으로 방청권을 배포했는데요. 법원 입구에서 배포했는데, 처음에는 월요일 오전 재판이다 그러면 한 토요일 오후부터 줄을 섰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심부름센터를 고용해서 거기에 거액의 보수를 주고 방청권을 받아서 방청할 정도로 굉장히 방청 열기가 뜨거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황상현, 재판 당시 배석판사

이 세기의 재판은, 1심에서만 무려 28차까지 진행됐어. 27차 공판이 있던 1996년 8월 5일은, 전두환의 최후 진술이 있던 날이야. 그 내용 중 일부야.

"본인은 전직 대통령으로서 이 법정에 서게 된 것을 본인 부도덕의 소치로 생각하며, 이 재판을 이끌어 온 재판부에 대해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나 현실의 권력이 제아무리 막강하다 하여도 역사를 자의로 정의하고 재단할 수 없는 것이라고 본인은 생각합니다. 또한 국가의 계속성과 올바른 발전을 위해서도 정권이 바뀌었다고 하여 과거 정권의 정통성을 시비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전두환

일말의 반성 없이 정치적 희생양이라는 주장뿐이야. 이런 최후 진술이 끝나자 방청석 일부에선 박수세례가 터져 나왔어. 재판을 참관했던 전두환의 지지자들이었어. 반면, 이걸 지켜본 5.18 유가족 분들의 속에선 천불이 났어. 욕설과 고함으로 재판정은 난리가 났어. 그렇게 한차례 소란이 마무리되고 재판이 거의 끝나갈 무렵, 한 여자가 손을 번쩍 들어 "전두환에게 한마디 물어보고 싶다!"고 외쳤어. 재판장은 소란을 막기 위해 해당 여성에게 퇴정 명령을 내렸어. 여성은 강제 퇴정을 당하면서도 이렇게 외쳤어.

"한열이 왜 죽였냐! 한열이 왜 죽였냐!!!"

바로 이한열 열사. 1987년 6월 전두환 정권에 항거하다가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에 피격당해 사망한 학생운동가. 법정에서 강제 퇴정 당한 그분은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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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8월 26일, 최종 선고날. 전두환 측 변호인의 입장은 한결같았어. 죄가 없다는 거야. 쟁점이 되는 몇 가지를 보면, 먼저 12.12 군사반란은 공소시효가 만료됐대. 1979년 12월에 있었던 사건이니 15년 후인 1994년 12월에는 시효가 끝났다는 거야. 5.18에 대해 전두환 측은, 내란을 목적으로 살해 행위를 한 게 아니라,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해. 또 자위권을 지시했을 뿐, 시민들을 향한 발포명령은 없었다고 주장했어. 이런 전두환 측의 주장, 받아들여졌을까?

1심 판결문은 무려 125페이지 분량이었는데, 이런 판결이 나왔어.

"피고인 전두환을 사형에, 피고인 노태우를 징역 22년 6개월에 각 처한다."

변호인 측이 12.12 군사반란의 공소시효를 말했는데, 법원은 공소시효가 아직 남았다고 판단했어. 헌법 제84조에 따르면,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않아.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재임한 7년 6개월 동안은 공소시효가 정지된다는 거야. 그럼 아직 공소시효가 5년이나 남은 게 되는 거지.

그리고 5.18 당시 자위권 발동만을 지시했다는 전두환 측 주장에 대해 법원은 이렇게 판단했어.

"당시에 시위상황이 계엄군과 시위대 모두 극도로 감정이 악화되어 있고 시위대가 일부 무장을 시작하여 계엄군들에게 자위권 발동을 지시할 경우에는 상호 간에 교전이 벌어질 수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위권 발동 지시를 함으로써 위 피고인들의 위 자위권 발동 지시는 실질적으로 발포명령이었다고 볼 것이어서 위 피고인들의 이 부분 주장 역시 이유 없다."

발포명령을 한 것과 다름없다고 판단한 거야. 황상현 판사는 당시 피고 전두환의 모습을 이렇게 기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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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가 나오면 사형이고 '무'자가 나오면 무기징역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사' 자라는 단어가 재판장님 입에서 나오는 순간, 전두환 피고인의 표정이 상당히 일그러지는 그런 것을 보면서, 아 이게 대한민국에서 8년 동안 대통령을 한 사람도 사람인 이상 본인을 사형에 처한다는 그런 형량을 재판부에서 선고를 하니, 역시 그 표정이 저렇게 안 좋아지는구나, 하는 그런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황상현, 재판 당시 배석판사

그런데 이어진 2심에서는 감형됐어. 전두환은 무기징역에 추징금 2,205억 원. 노태우는 징역 17년에 추징금 2,628억 원으로. 해당 판결은 대법원에서도 확정됐어.

이렇게 두 대통령의 수감 생활이 시작됐어. 다들 교도소 안에서 나름 특별대우를 받으며 지내지 않겠나, 온갖 억측이 나왔어.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고 해. 두 전직 대통령들은 다른 수용자들과 똑같은 생활을 하고, 똑같은 메뉴의 식사를 했대. 다른 재소자들과의 마찰을 막기 위해, 안전상의 문제로 다른 수용자들과 격리된 독립 사동에서 생활했다고 해. 수용실 구조는 일반 수감자들과 다르지 않았어. TV나 에어컨이 없는, 3.5평짜리 공간이야. 대신 혼자 생활하다 보니 다른 수용자들보단 조금 더 넓게 생활할 수가 있고, 운동이나 목욕도 혼자 할 수 있었다고 해.

그럼, 두 사람의 수감생활 태도는 어땠을까? 의외로 두 사람은 잘 지냈대. 아무래도 군인 출신이라 그런지, 규칙적인 생활이나 공동취사 등 교도소 생활에 잘 적응했다고 해. 전두환 전 대통령은 그렇게 책을 많이 읽었대. 정치, 사상, 고전문학 등 다양한 장르의 서적을 두루 섭렵했대. 그중에 의외의 장르가 있었는데, 바로 동화책.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책을 많이 읽었대. 출소하면 손자들에게 들려주려고 그랬다고 해. 그런데 그 손자가 나중에 커서 할아버지를 어떻게 평가했는지, 어떤 폭로를 했는지 우리가 잘 알고 있지.

교도소 생활에서 가장 힘든 건 뭘까? 현직 교도관이 주저 없이 꼽는 하나는, 바로 '더위'래. 지금도 교도소에는 여름에 사건사고가 많이 터진다고 해. 더우면 예민해지고 짜증 나고, 그게 싸움으로 번지니까. '꼬꼬무'가 어렵게 구한 자료가 있어. 노태우 전 대통령이 옥중에서 직접 자필로 쓴 수감생활 노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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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8월 19일.
말복이 지난 지도 3일이나 되었는데 왜 이렇게 더운지. 어제와 오늘은 찜통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몸이 천 근이나 된 것 같이 무겁다.
-1997년 8월 20일.
어젯밤은 수면제를 먹고 잤는데도 별 효과가 없었다. 여러 번 깼고 소변도 두 번이나 보았다. 날씨가 무덥고 또 불쾌지수가 높으니 몸의 컨디션이 극히 좋지 않다. 아침에 일어나니 온몸이 우리하게 아프다.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의 권력자였다 해도, 더위 앞에선 어쩔 수 없었나 봐. 그렇게 시간은 흘러 여름이 가고, 겨울이 찾아왔어. 1997년 12월 22일. 이날 전 국민이 깜짝 놀랄 일이 벌어져.

▲ 반성 없는 가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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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생활이라는 게 여러분들은 교도소 가지 마시오. 그것만 내가 얘기하고 싶습니다."

전두환이 구속 750일 만에 출소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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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는 구속 767일 만에 출소했어.

전두환은 무기징역, 노태우는 징역 17년이었는데. 두 사람은 불과 2년 만에 출소했어. 거기엔, 정치적인 이유가 있어.

1997년 겨울, 15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어. 그런데 당시 대선에 나섰던 모든 후보들이, 전두환과 노태우의 사면을 공약으로 걸었어. 명분은 '국민 대화합'. 실상은, 보수층의 표를 얻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그로 인해, 두 사람은 모두 교도소에서 나오게 돼.

출소 뒤 전두환의 행적은? 알다시피 아주 잘 지냈어. 대통령 취임식 전직 대통령 만찬에도 꼬박꼬박 참석했어. 그 모습을 영 마땅치 않게 본 한 사람이 있었어. 바로, 김영삼 전 대통령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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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이는 와 불렀노? 저거 대통령도 아니데이. 죽어도 국립묘지에는 못 간다."

2010년 이명박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들을 초대한 자리. 그때 김영삼이 전두환을 보자마자 이렇게 한마디 했대.

이어진 식사자리에서 전두환이 와인을 찾자, 또 한마디 했대.

"니는 청와대에 술 쳐무러 왔나?"

이후에도 전두환은 반성의 기미는커녕, 5.18을 '폭동'이라 표현하기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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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는 총기를 들어 일어난 하나의 폭동이야."

추징금 미납문제로 법원에 출석해서 희대의 '29만 1천 원' 발언도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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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가 조사를 해서 (돈이) 없으니까 못 가져간 거 아냐."
"마당에 숨겨놓은 게 있으면 마당 가서 파보면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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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엔 2천 페이지에 달하는 회고록을 출간하기도 했어. 그리고 그 회고록에서 5.18 진상규명에 힘쓴 故조비오 신부를 '가면 쓴 사탄이다,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다'라고 비난했지. 조비오 신부의 유족들은 사자명예훼손으로 전두환을 고소했어. 1심에선 전두환에게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했어. 그런데 항소심 결심 공판을 6일 앞둔, 2021년 11월 23일. 전두환은 자택 화장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고, 결국 사망했어. 마지막 심판은 영원히 받지 못하게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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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어. 전두환 사망 당일, 전남 강진의 한 저수지에서 변사체가 발견됐어. 바로 이 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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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이광영. 광영 씨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피해자였어. 승려 생활을 하던 광영 씨는 1980년 5월 광주에 있었어. 부처님오신날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거든. 광주에서 계엄군의 만행을 목격한 광영 씨는 부상자 이송, 의약품 모으기 등 적극적인 구호 활동에 나섰어. 그러다 계엄군이 쏜 흉탄이 광영 씨의 척추에 박혀.

그렇게 하반신 불구로 살게 됐고, 한평생 5.18 진상규명 활동에 앞장섰어. 하지만 척추에 박힌 파편 때문에 통증이 너무 심해서 매일 진통제 주사를 맞으며 생활해야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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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통증이 하도 심해서 날이면 날마다 그걸 이겨내는 게 가장 힘들어요. 이렇게 고통받고 처절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저 혼자뿐만이 아니겠죠. 그 많은 사람들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소외받고 그리고 관심 밖에서 이렇게 살고 있거든요."

그렇게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광영 씨. 천수를 누리다 병으로 사망한 가해자와, 평생을 고통 속에 살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피해자. 5.18의 가해자와 피해자 두 사람이 같은 날 사망한 거야.

'과거를 잊어버리는 자는 그것을 또다시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지. 법적 처벌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지만, 우리는 이 사건을 가슴 한 편에 무겁게 새기고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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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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