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로마 신화를 설명하는 강남길
"대한민국 최고 탤런트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배우로서가 아니라 그리스·로마 신화 안내자, 가이드로서 여기 섰습니다."
지난 8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배우 강남길이 무대 위에 등장하자 관객석에서 큰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반소매 셔츠에 조끼를 입은 그는 두툼한 강연 원고를 든 채 "사진만 1천 장 준비했다"고 자신했습니다.
1968년 영화 '수학여행'으로 데뷔해 100여 편의 작품에 출연한 베테랑 배우인 강남길이 '신화 가이드'가 된 건 '강남길의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 공연을 위해서입니다.
약 14년간 그리스·로마 신화 관련 유적지와 박물관을 찾아다니며 발품 팔았던 그는 지난해 '강남길의 명화와 함께 후루룩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 책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강남길은 자양강장변질제로 분류된 '박카스', 화장품 브랜드 '헤라' 등의 이름이 신화에서 비롯됐다며 "우리 삶 속에서 그리스·로마 신화는 쉽게 만날 수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워낙 많은 신들이 나오다 보니 어렵다고 느끼는 분들도 많으시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천지창조, 인간의 탄생 등의 내용은 솔직히 재미없기도 합니다. 그냥 보시고 즐겨주세요."
다양한 신화 이야기를 건네던 강남길은 주제에 맞는 음악도 소개했습니다.
올림포스의 12신을 이야기할 때는 무대 위 서울오케스트라가 영화 '어벤져스'의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을 연주했고, '최고의 신' 제우스를 설명한 뒤에는 모차르트의 교향곡 '주피터'(Jupiter·제우스의 영어식 표현)가 울려 퍼졌습니다.
공연이 끝난 뒤 취재진과 만난 강남길은 "보다 쉽게, 또 재밌게 그리스·로마 신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 고민하다 보니 밤을 새웠다"고 털어놨습니다.
실제로 관객들에게 보여준 사진과 영상 모두 그가 직접 촬영한 자료입니다.
영국박물관, 루브르박물관 등에 있는 다양한 작품을 보여주고 싶어서 사진 1장당 2∼3초씩 편집했다고 합니다.
자료를 다 보여주느라 공연은 예정된 시간보다 30분이 지나서야 끝났습니다.
약 2시간 공연을 마친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며 '재미있으셨냐'고 인사를 건넸습니다.
강남길은 "그리스·로마 신화는 신과 영웅, 인간이 어우러진 이야기"라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방대한 이야기지만 않은 만큼 보이고, 또 즐기고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지휘한 김희준 숭실사이버대 음악학과 교수는 "음악과 강연으로 그리스·로마 신화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싶어서 곡 선정부터 머리를 맞대며 준비했다"고 전했습니다.
강남길은 "신화 속 이야기가 다양하고 풍부하다는 점을 꼭 알려주고 싶었다"며 "몇 차례 리허설하면서 동영상 시간을 맞췄는데도 아직 보여주지 못한 사진·영상이 많다"며 아쉬워하기도 했습니다.
총 3권의 책을 펴내며 신화 공부를 '일단락'한 그는 최근 '도자기 그림'에 푹 빠져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크고 작은 도기에 그림을 남겼는데, 이를 통해 당대 문화와 신화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스 신화가 담긴 '그림책'인 셈입니다.
강남길은 "한 박물관에서 도자기 그림만 한창 쳐다보고 있으니 박물관 직원이 '저 그림이 더 좋다', '이 그림도 살펴봐라' 권해줬다. 최근에는 취미 삼아 계속 보고 있다"고 말하며 웃었습니다.
추후 책으로 낼 생각도 있냐고 하자 그는 "책 내는 게 정말 힘들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습니다.
강남길에게 그리스·로마 신화는 어떤 의미일까? "어떤 존재가 아니라 내 마지막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시간을 쏟아부었지만 그만큼 배웠습니다. 지금까지 건강하게 있는 것도 신들의 축복 아닐까요?"
(사진=국립박물관문화재단 제공,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