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神)들의 이야기, 신비롭고 신성한 불(火)의 이야기, 그 성스러운 의식을 소개합니다. 먼저 "모든 체육활동은 근원적으로 제례의식이었다"는 칼 디엠의 주장을 기억해두시죠.
● 개회식 (opening of the ceremony)
고대 그리스인들이 '지구의 어머니' 가이아 여신의 성전으로 믿었던 자리에 오륜기가 게양되고, 올림픽 찬가가 합창됩니다. 제우스의 제단(祭壇)에 하늘의 불빛을 내려주기 위한 첫 의식입니다.
"고대의 불멸하는 정신이여
진리와 아름다움과 선의 아버지여
내려와서 드러내네, 당신의 빛을 우리 위에 뿌려
이 지상에, 이 하늘 아래를 빛나게 하도다…."
그리스 작가 코스티스 팔라마스가 쓴 시를 스피로스 사마라스가 만든 장엄한 선율에 맞춰 라브레오티키와 마르코폴로의 소년소녀 합창단이 노래합니다.
이제 약 30년 만에 이 신전에 태극기가 다시 오르고 애국가가 울리 퍼질 차례입니다. 그 뒤 엄격한 의식을 주관한 그리스의 국가가 연주되고 나면 타키스 도사스의 시 '올림피아의 빛'이 낭송됩니다.
"여기 올림피아의 신성한 요람에서, 변하지도 않고 더럽혀지지도 않고
영원히 사라지지도 않을, 불이 다시 태어난다."
"제우스의 성체를 지나, 올림피아와 그리스 너머, 모든 땅과 모든 바다에,
사랑과 고통과 미움과 전쟁이 있는 모든 곳에, 올림피아의 신탁을 전한다."
그리스 배우, 야니스 스탄코글루의 힘찬 음성이 메아리치면 의식은 절정을 향합니다.
● 채화식 (lighting ceremony of the Olympic flame)
"태양의 신이자 빛의 신이신 아폴로 신이시여, 당신의 빛으로 이 성화를 밝혀 평창으로 보내주소서.
그리고 제우스 신이시여, 이 땅의 모든 이들에게 평화를 주소서."
● 성화 봉송의 시작 (opening of the Olympic torch relay)
근대 올림픽 창시자, 올림픽을 통해 고대와 현대를 이으려던 쿠베르탱 남작 묘소를 참배한 뒤 두 번째 주자, 대한민국의 박지성에게 불을 건넵니다.
성화는 오는 31일까지 8일간 그리스 전역을 돈 뒤 근대 올림픽 경기가 처음 열렸던 그곳, 파나티나이코 스타디움에 도착해 대한민국으로 이동을 준비합니다. 올림픽을 꼭 100일 앞둔 11월 1일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성화는 전국 2018km를 돌아 내년 2월 9일, 성화대에 점화돼 17일 동안 불을 밝히게 됩니다. 인류 최대의 축제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빌면서 말이죠.
●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채화식의 인물들
1. 칼 디엠
고대 올림픽에서 그리스인들이 이와 같은 채화식을 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물론 만물의 근원인 태양과 그것을 상징하는 불은 그 자체로 신앙의 대상이었고, 프로메테우스가 신들의 전유물인 불을 훔쳐 인류에게 문명을 전한 것을 기념하는 횃불 경주가 벌어진 흔적은 곳곳에 남아있죠. 디엠은 여기에 착안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를 설득했습니다.
성화 봉송도 이때부터 이어진 전통인데, 일각에선 독일 나치군이 군국주의적 파시즘을 홍보하기 위해 벌인 '쇼'로 보기도 합니다. 당시 올림피아에서 채화된 성화는 불가리아, 유고슬라비아, 헝가리,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를 거쳐 베를린에 도달했는데,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이 이 코스의 역순으로 점령을 확대해나갔기 때문입니다.
2. 카타리나 레후
대사제 역할을 맡기 위해선 미모와 어학실력, 지성이 겸비돼야 합니다. 연기력과 무도 능력은 물론이고요. 레후는 2016년 리우 올림픽 성화 채화식에서도 대사제 역할을 맡아 훌륭히 소화한 바 있습니다. 29년 전 서울 올림픽 때는 국립극단 출신 카테리나 디다스칼루가 대사제를 연기했습니다.
3. 아포스톨로스 앙겔리스와 박지성
앙겔리스에게 성화를 건네받는 두 번째 주자는 개최국, 대한민국의 박지성입니다. 축구 영웅이자 평창올림픽 홍보대사이기도 하죠. 박지성 선수 역시 올림피언입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참가해 활약했습니다. 2승을 거두고도 골득실에 밀려 조별예선을 통과하지 못한 게 아쉬웠죠. 채화 장소 그리스와 인연도 있습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그리스와 조별리그 1차전, 승부에 쐐기를 박는 멋진 골을 터뜨려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에 발판을 놓았습니다.
● 비가 온다면?
불을 얻는 의식은 여전히 신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행사입니다. 비가 오면 태양광에서 채화가 어렵기 때문이죠. 일기예보에 따르면 오늘 올림피아의 강수확률은 80%. 신들이 허락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과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채화 때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행사를 주관하는 그리스 올림픽 위원회는 어제 '예비 불씨'를 받아놓았습니다. 비가 많이 내리면 헤라신전이 아닌 '올림픽 아카데미'에서 실내 행사로 진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