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6월 서현지구대를 찾아온 영국 할아버지(오른쪽)와 상담하는 백승호 경사.
/사진=서현지구대 제공
지난해 6월 15일 정오가 가까워질 무렵, 모자를 눌러쓴 외국인 할아버지가 경기 분당경찰서 서현지구대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사진=서현지구대 제공
불안한 기색이 역력한 할아버지를 일단 진정시킨 경찰관은 가족에 대한 정보를 물었습니다.
영국 국적의 81세 할아버지는 자신의 이름과 한국인 아내의 이름만 기억할 뿐 다른 질문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서현지구대 백승호(31) 경사는 할아버지가 알츠하이머(노인성 치매)를 앓고 있는 것으로 짐작하고 실종자 프로그램을 조회해 2014년 9월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실종했던 기록과 거주지를 확인했습니다.
할머니 행적을 찾고자 할아버지 아파트를 방문한 백 경사는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아내에게 쓴 한 통의 영문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나는 ○○ 없이 살 수 없다.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아내였다. 천국에 있는 그녀를 만나러 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확인 결과 할머니는 20여일 전 이미 숨졌고 분당의 한 병원에서 장례식까지 치렀습니다.
주민자치센터를 통해 국내 가족이 없다는 사실을 추가로 확인하고 주한영국대사관과 국내외 방송국에도 연고자를 찾아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영국 내 연고가 확인돼 지난해 10월 출국할 때까지 넉 달 간 백 경사는 거의 매일 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알츠하이머를 앓는 상태에서 한국 음식을 가리는 할아버지를 위해 빵과 우유, 피자 등 그나마 입맛에 맞을 것 같은 음식을 사 들고 아파트를 찾아 끼니를 챙겼습니다.
성남시는 오늘 지역 발전을 위해 애써 온 시민에게 주는 올해의 모범시민상 수상자 6명 가운데 한 명으로 백 경사를 선정했습니다.
2014년 10월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 때는 112타격대원과 함께 사고 최일선 현장에 출동해 구호활동을 벌이기도 했던 백 경사는 수상 소식에 "더 어려운 일을 하는 분들도 많은데 뜻하지 않는 상을 받게 돼 쑥쓰럽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