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곳곳에 부서진 지붕과 담이 늘어져 있지만, 손을 댈 엄두도 못 내고 있는데 비까지 내리기 시작해 답답한 심정입니다."
규모 5.8 지진피해가 집중된 경북 경주시 내남면 용장1리 이용걸 이장(56)은 지진 발생 5일째인 오늘(16일) 제16호 태풍 '말라카스' 북상 소식에 한숨부터 내 쉬었습니다.
추석 연휴로 지진피해 복구가 더딘 가운데 비 소식까지 더해지면서 경주 일대 주민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내남면 용장 1리와 4리, 이조 1리 지역은 이번 지진 여파로 기와집 50여 채가 피해를 봤습니다.
특히 지붕 피해가 컸습니다.
이 이장은 "추석 연휴를 맞아 고향 집을 찾은 가족들이 힘을 모아 복구를 돕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 가구의 경우 전혀 손을 못 대는 집도 있어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는 "경주시와 면사무소 지원을 받아 임시로 천막을 덮는 등 조치에 나섰지만, 완전 복구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인근 마을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두 차례 강진의 진앙과 가까운 내남면 부지리도 복구가 시작됐지만 궂은 날씨 탓에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부지 2리 박종헌(61) 이장은 "면사무소에서 긴급 지진피해 복구회의가 있어 가는 길"이라며 "당국에서 일손을 도와준다고 하지만 본격적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응급복구를 하더라도 빗물을 새는 집이 속속 나올 것"이라고 걱정했습니다.
그는 "사람이 사는 집은 그나마 먼저 응급복구를 하겠지만, 헛간이나 축사, 주변 시설 등은 복구를 생각도 못 하고 있다"고 하소연했습니다.
공식 집계되지 않은 피해들도 확인되고 있습니다.
박 이장은 "연세가 많은 어르신이 그냥 지나친 부분이지만 자녀들이 고향 집을 찾아 자세히 확인한 결과, 금이 간 가옥들이 추가로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부지 2리는 지난 12일 첫 지진(규모 5.1)의 진앙인 내남초등학교와 가까운 곳으로 45가구, 60여 명이 살고 있습니다.
이 마을 주민 대부분이 70∼80대 노인들입니다.
300차례 이상 여진이 이어지면서 주민들은 지진 발생 닷새를 맞았지만, 여전히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박 이장은 "주민이 조금씩 심리적으로 안정은 되고 있지만, 언제 지진이 다시 날까 불안해하는 상황"이라고 전했습니다.
진앙 부근뿐만 아니라 다른 경주지역 주민도 '지진 충격'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주시 선도동에 사는 이모(75) 씨는 "지진으로 담벼락과 헛간이 금이 갔다"며 "손써보기도 전에 태풍이 와 비바람 때문에 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을지 걱정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안강읍에 사는 70대 주민은 "지진 때문에 계속 마음을 졸여 추석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겠다"며 "태풍에 벼나 수확철 다른 농작물 피해가 없어야 할 텐데..."라며 염려했습니다.
기상청은 내일부터 북상 중인 제16호 태풍 말라카스의 간접 영향권에 들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기상 당국은 "내일과 모레에는 시간당 30㎜ 이상 많은 비가 오는 곳이 있겠으니 비 피해가 없도록 대비하기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경상북도와 경주시, 군 당국은 오늘 1천380명의 인력을 동원해 경주 내남면, 황남·월성동, 외동읍 일대에서 응급 복구작업에 나섰습니다.
경북지역에서는 이번 지진으로 건물 균열 1천81건, 지붕파손 2천83건, 담 파손 708건 등의 피해가 났습니다.
문화재 당국과 경주시는 지진피해를 본 사적지 등 20여 곳에 대한 응급복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