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약물을 복용한 선수에게 징계 만료 이후에도 '이중 처벌'을 부과하는 것은 이미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가 지난 2011년 <올림픽 헌장>과 <세계 반도핑 규약> 위반으로 무효라고 판결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대한체육회 정관은 반드시 <올림픽 헌장>을 준수하도록 명시하고 있습니다. <제2조3항>은 "대한체육회 정관과 올림픽 헌장이 상이한 경우, 즉 서로 다를 경우에는 올림픽 헌장이 우선한다"고 돼 있습니다.
그리고 <제2조5항>에는 "체육회는 올림픽 헌장에 따른 세계 반도핑 규약(World Anti-Doping Code)을 준수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대한체육회 정관의 영문 번역본에는 "Must adopt, implement and comply"로 돼 있습니다. '반드시 세계 반도핑 규약을 준수해야 한다'는 뜻입니다.(5월24일 취재파일 '박태환 관련 규정은 올림픽 헌장 위반' 참조)
만약 대한체육회가 16일 이사회에서 국가대표 선발규정 <제5조6항>을 바꾸지 않겠다고 결정하면 이는 <올림픽 헌장>과 <세계 반도핑 규약>을 지키지 않겠다는 것을 국제 스포츠계에 공언하는 것은 물론 자신들이 스스로 만든 정관도 준수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다를 게 없습니다.
박태환이 승소할 경우 대한체육회는 3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첫째: CAS의 결정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둘째: CAS의 결정에 승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셋째: 여러 이유를 핑계로 시간을 계속 끌며 리우올림픽 출전 명단 마감 시한인 7월18일을 넘겨버리는 것입니다.
대한체육회가 CAS의 결정을 수용할 경우 이는 곧 패소를 의미합니다. 이렇게 되면 대한체육회가 박태환 측의 소송 비용까지 모두 국민 세금으로 부담해야 합니다. 그 비용은 약 1억 원이 넘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예상입니다. 또 현 국가대표 선발 규정이 <올림픽 헌장>과 <세계 반도핑 규약>을 위반했다는 점이 만천하에 알려집니다.
CAS의 결정에 승복하지 않으면 문제는 더 커집니다. 국내 스포츠계는 그동안 여러 차례 우리 선수들이 억울한 일을 당할 때마다 CAS에 항소했습니다. 만약 이번에 CAS의 결정에 불복하면 이는 CAS는 물론 사실상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권위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한국 선수가 불이익을 받을 때 CAS에 항소할 명분이 없어집니다.
대한체육회가 취할 수 있는 세 번째 선택은 CAS의 결정을 수용도 하지 않고 거부도 하지 않은 가운데 각종 핑계로 시간을 끌면서 결국 박태환의 리우올림픽 출전을 좌절시키는 것입니다. 하지만 처사는 치졸한 '꼼수'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연간 4천억 원의 예산을 쓰는 공공 기관이 해서는 안 되는 행태라 생각됩니다.
태릉선수촌장을 역임했던 이에리사 전 새누리당 의원은 "대한체육회가 박태환 선수의 리우올림픽 출전을 막을 그 어떠한 명분도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16일은 통합 대한체육회의 운명이 걸린 날입니다. 가장 현명한 결단은 국가대표 선발 규정 <제5조6항>을 바로 이날 폐지하는 것입니다. 도핑으로 징계를 받은 선수에게 '이중 처벌'을 가하는 국가는 전 세계에서 사실상 대한민국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