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의 주요 간선도로는 심야나 새벽 시간을 빼고는 거의 항상 막힙니다. 그런데 유별나게 꼼짝도 못할 때가 있습니다. 십중팔구 교통사고로 인한 여파 때문입니다. 가까스로 지나가면서 보면 교통사고가 크건 적건 간에 차를 사고 난 상태 그대로 두고 있습니다. 우리 같으면 서로 잘잘못을 따져본 뒤 큰 이견이 없으면 차를 갓길로 빼겠죠. 그런데 중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보통은 교통경찰이 올 때까지 가만히 놔둡니다. 심지어 길바닥에 다친 사람이 그대로 누워있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옮길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교통경찰이 오기만 기다립니다.
우리나라에서라면 지나가는 차들이 경적을 울리고, 창문을 내리고 험한 말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길이 막혀 짜증이 머리끝까지 났을 텐데도 묵묵히 차선을 바꿔 지나갑니다. 차를 갓길로 뺄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자신도 같은 상황에 처하면 똑같이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외국인들만 씩씩 거리며 분을 삭여야 합니다.
중국인들이 왜 이렇게 행동할까요? 다음 사례를 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고 차량 운전자인 왕모 씨가 급히 내려 이 모습을 보고 즉시 저우 씨 위에 쓰러진 전동차를 끌어 옆으로 치웠습니다. 그리고 저우 씨를 자신의 차에 싣고 가까운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저우 씨는 쇄골이 거의 산산조각이 날 만큼 심한 골절상을 입어 2개월 가까이 입원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영구 장애 10급 판정을 받았습니다.
교통사고를 내면 당사자들은 교통경찰이 와서 조사할 때까지 현장을 완벽하게 보존해야 합니다. 어느 쪽에서든 현장을 훼손한 것으로 확인되면 사고의 모든 책임을 지게 돼있습니다.
법원은 왕 씨가 위급한 상황에 처한 저우 씨를 구하기 위해 급하게 전동차를 움직인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현장 보존을 하지 않은 책임을 물었던 것입니다. 왕 씨는 적어도 현장 사진을 먼저 찍어두거나 페인트로 각 차량의 위치를 표시했어야 한다는 것이 법원의 설명입니다. 다시 말해 왕 씨는 저우 씨 위로 덮친 전동차와 자신의 차가 어떤 상황으로 부딪혔는지 사진을 찍어둔 뒤에 저우 씨 구조에 나섰어야 했습니다.
우리나라 법률 전문가에 문의했더니 다행히 우리나라 법에는 그런 조항이 없다는 군요. 부상자를 반드시 구호해야 하는 의무만 있다고 합니다. 교통사고의 책임을 따지고 조사하는 것은 담당 경찰관이나 보험사 전문 직원의 역할이라고 합니다. 다만 사고 당사자가 의도적으로 사고 현장을 조작한 사실이 밝혀질 경우 '죄질'을 따져 더 큰 책임을 물을 수는 있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중국 언론들도 해당 법규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습니다. 현장 보존을 하느라 위급한 부상자를 구호하는데 등한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합니다.
중국 당국이 시급히 개선안을 찾아내 더 이상 길 위에 사람이 쓰러진 채 교통경찰이 오기까지 방치되는 장면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