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진 국방장관이 그날 오전 참모 회의에서 SBS가 민감한 사안을 취재한다며 보도되는건지 알아보라고 부하들에게 명령을 한 모양입니다. 김 장관이 지목한 민감한 사안이란 장성들이 군 골프장에서 골프 친 뒤에 캐디들과 함께 식사하면서 술을 거나하게 마신 의혹입니다. 이런 의혹이 사실로 확인돼서 기사화되면 국방부 입장에서는 큰 망신이지요. 그러니 장관이 직접 나서서 상황을 파악하라고 지시했었나 봅니다.
시계를 다시 5월 중순 이후로 돌려보겠습니다. 보름 전부터 군의 특급, 1급 시설의 도면과 기본 설계안, 방호시설 설계도 등 군 기밀들이 민간인 손에 있다는 보도가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군이 북한의 EMP(전자기파)탄 공격에 대비한 방호시설을 만들기 위해 민간인 정 모씨에게 설계를 의뢰해서 결과물만 받고 정씨를 팽해 버린 바람에 생긴 일입니다. 정씨는 돈 대신 군의 모함만 잔뜩 받아서 그나마 있던 일감마저 떨어져 살던 집도 내놨습니다. 현재는 정당한 대가를 받기 위해 EMP탄 방호시설 설계할 때 군으로부터 받았뒀던 각종 기밀 자료들만 꼭 보듬고 있습니다. 기자 역시 국방부를 담당하던 2012년부터 3년째 쫓던 사안이라 이 취재파일 코너를 통해 몇 번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누가 봐도 중차대한 일입니다. 국가의 마지막 보루인 군이 민간인을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였습니다. 그 결과 적을 몹시 이롭게 할 수 있는 자료들이 길바닥에 나뒹굴고 있습니다. 누가 군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군은 조용합니다. 아직까지 장관이 이 문제에 대해 궁금해 한다는 국방부 측의 전화 한통 없습니다. 군과 그 민간 기술자 양측을 오랫동안 취재했던 기자한테 어찌 된 일이냐고 물어볼 만도 한데 말이죠. 장성들의 캐디 동반 술자리 의혹에 대해서는 그렇게 몸 달았던 분들이 적에게 특급 기밀이 흘러갈 수도 있는 지금 상황에는 무덤덤한가 봅니다. 남의 일인가요? 딴 나라 군대 일입니까?
그럴 여유 있다면 기밀을 민간인에 넘겨 방치한 사건에 관심을 기울여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민간인이 못 받은 설계 용역비는 어디로 증발했는지, 민간인이 갖고 있는 특급 기밀을 그동안 군은 왜 회수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는지, 군 검찰이 조사를 한다고 하는데 잘 하고는 있는지, 최근에 설치한 그리고 현재 설치하고 있는 EMP탄 방호시설의 방호 성능은 정말 잘 나오는지 등등 확인해야 할 과제들이 많습니다. 기자도 취재해보겠습니다만 장관께서도 나서 주십시오. 군 내부의 보고는 ‘팩트’보다는 ‘주장’들이 많으니 눈과 귀를 활짝 열어두셔야 할 것입니다. 여차하다가는 기밀도 영원히 회수 못하고 EMP탄 방호시설도 허술해질 수 있습니다. 적만 이롭게 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