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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축구와 혁명의 함수관계?

[취재파일] 축구와 혁명의 함수관계?
시민혁명 발발 2주년을 맞은 이집트 정국의 혼란이 갈수록 더해지고 있습니다. 나흘째 계속되는 반정부 시위와 충돌로 전국 곳곳에서 유혈사태가 빚어지고 있습니다. 돌과 화염병을 던지는 시위대에 경찰은 최루탄은 물론 총까지 동원해서 맞서면서 지난 주말 동안에만 50여 명 넘게 숨졌고, 부상자는 천 명도 넘습니다.정부는 상황이 험악한 도시 세 곳에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야간 통행을 전면 금지시켰습니다. 포트 사이드와 수에즈, 이스마일랴 등 세 곳입니다. 정부는 더 나아가 군에 민간인 범법자에 대한 체포권을 부여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아수라장입니다.

그런데 지난 주말동안 쏟아져 나온 이집트 관련 외신 기사를 읽다보면 한가지 의문이 듭니다. '비상사태'가 선포된 도시 세 곳 가운데 한 곳인 포트 사이드 관련 기사마다 꼭 나오는 구절 탓입니다: "축구장 난동 관련 판결에 항의하는 시민 수천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경찰과 충돌했다." 대체, 축구장 난동에 대한 판결이 반정부 시위와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요?

내막은 이렇습니다. 지난해 2월 이 도시에서 열렸던 축구경기에서 최악의 경기장 폭동이 발생했습니다. 홈팀과 원정팀 팬들이 충돌해서 74명이 숨졌고 천여 명이 다쳤습니다. 특히, 사망자 가운데 72명이 카이로에 연고를 둔 원정팀의 팬클럽 울트라즈(Ultraz) 회원들이었습니다.

카이로 법원은 엊그제 이 난동을 주도한 21명에게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모두 홈팀인 포트 사이드 팬들입니다. 판결이 내려지자 카이로 시민들은 환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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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포트 사이드 시민들은 판결에 반발해서 거리로 뛰쳐나가 격렬히 항의했습니다. 이를 막는 경찰과 충돌하면서 수십명이 죽고 수백명이 부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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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두 도시의 열성 축구팬들이 대립한 사건 아니냐고요? 여전히, 그게 대체 '반정부 시위'와 무슨 관련이 있냐고요?

'혁명'과는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이 축구장 폭동 사건이 '반정부 시위'의 연장선에서 다뤄지는 이유는 무려 72명의 희생자를 낸 Ultraz라는 단체의 독특한 이력 때문입니다. Ultraz는 지난해 경기 당시 원정팀이었던 알아흐리의 팬클럽으로 아주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단쳅니다. 회원도 많고 응원도 열광적이기로 유명하죠. 그런데 이 단체가 유명한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Ultraz는 2년 전 이집트 시민혁명 당시 대규모 집회가 있을 때마다 깃발을 펄럭이며 최선봉에 서곤 했습니다. 이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축구단 팬클럽'이라는 원래 성격과 무관하게 '반정부 단체'라는 이미지를 얻게 됐던 겁니다. 마치 몇년 전 우리나라에서 이른바 '유모차 부대'가 미국산 쇠고기 반대 시위에 앞장서면서 주부들의 인터넷 까페들이 매우 정치적인 단체로 '규정' 됐던 것과 비슷한 거죠.

그러다보니 사건 발생 직후 갖가지 음모론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경찰이 뒤에서 폭동을 조종했다거나, 최소한 방조했다는 내용들입니다. 눈엣가시 같던 Ultraz에 보복을 하기 위해서 말이죠. 이런 음모론이 확산되면서 이 사건은 더이상 단순한 경기장 폭동이 아닌 매우 '정치적인 사건'으로 '규정'돼 버렸습니다. 그리고 하필이면 시민혁명 2주년을 맞아 반정부 시위가 잇따르고 있는 민감한 시점에 관련 판결이 나오면서 혼란한 이집트 정국에 변수로 부상하게 된 거죠.

저는 사실, 그 '음모론'의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전혀 모릅니다. 다소 지나쳐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개연성이 있는 추측 같기도 하고 반반입니다. 이곳 서울에서 밝힐 방법도 없고요. 그런데도 이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어떤 소문이 있을 때, 때로는 그 소문의 진위보다 그런 소문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훨씬 더 큰 의미를 갖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오죽하면 국민들이, 천명 넘는 사상자를 낸 참사를 놓고 경찰이 정치적인 보복을 위해 국민들끼리 서로 치고 받아서 죽고 죽이는 걸 보고만 있었다고 의심을 할까요? 그런 음모론이 흉흉하게 나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현재의 이집트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시지 않습니까?

우리나라도 가끔 굵직한 사건들이 터질 때면 종종 '음모론'이 등장하곤 하죠. 물론, 저 정도 '최악'의 음모론은 아니어도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생각하는 '좋은 나라'의 정의 가운데 하나는 '음모론이 발붙일 수 없는 나라'입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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