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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형 기자의 씨네멘터리

[씨네멘터리] 이창동과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같은 마음

이주형 기자의 씨네멘터리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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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 이튿날 아침. 사실상 영화제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첫날. 부산 영화의 전당 기자회견장에 일찌감치 도착했다. 이날 첫 번째 기자회견의 주인공은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영화 '룩백'의 배우들이었다.

아직 기자들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 두 번째 열에 자리를 잡고 노트북을 펴고 있는데 갑자기 감독과 배우들만 출입하는 가벽 뒤에서 한 낯익은 아저씨가 슬금슬금, 기웃기웃, 어슬렁어슬렁, 기자회견장으로 나오는게 아닌가. 게다가 그의 뒤로 어린 아가씨들이 머뭇머뭇 따라나왔다. 어, 저기는 일반인들이 출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닌데...?

앗,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 고레에다 감독이 대기실을 무단으로(?) 벗어나 기자회견장 뒤쪽에 차려놓은 취재진용 커피 머신을 쓰기 위해 나온 것이었다. 30년 전 데뷔작을 들고 1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이래 열 번 넘게 부국제를 방문한 친한파 감독답게, 마치 부산이 안방이나 다름없다는 듯이. 여배우들을 대동한 그 모습이 마치 아빠곰 같아서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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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감독이 칸 황금종려상을 받은 세계적인 거장으로 성장하는 동안 부산국제영화제도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크게 성장했다. 이런 것이야말로 '동반 성장'이라 부를만하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가장 눈에 확 띄는 광고판은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이다. 영화의 전당 맞은편 건물에 꽤 큰 크기로 도배(래핑)됐다. 넷플릭스가 이 광고판에만 수천만 원을 썼다고 들었다. 이창동의 감독의 '가능한 사랑'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룩백'은 지난달 베니스영화제 경쟁 부문에 나란히 초청받았다. 수상은 '가능한 사랑'이 했는데, '룩백'이 솔직히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수상을 노렸던 영화는 아닐 것이다. ('룩백'이 '가능한 사랑'보다 못하다는 뜻은 아니다)

  이창동 감독과 마주 앉은 것은 이 감독이 베니스로 출발하기 전이었다. 과작(寡作)의 감독이라 인터뷰 한번 하려면 거의 10년은 기다려야 한다. 신중하고 사려 깊은 분이었다. 그의 영화처럼. 결국 모든 영화는 감독 그 자신이다. 영화뿐만 아니라 그 누군가의 모든 표현은. 플랫폼이 스크린이든 인스타그램이든 X든 유튜브든 쇼츠든 릴스든 국정감사장이든 기자회견장이든.

노동(자) 이슈를 다룬 '가능한 사랑'의 감독에게, 8년 간격으로 영화를 내놓다니 '생산성'이 너무 낮은 거 아니냐고 가볍게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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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제 생산성에 대해서는 항상 자책하고 있는데요(웃음) 단순한 저 자신의 게으름이라기보다는 이상하게 나이가 들수록 영화라는 것에 대해서, 또는 영화와 제가 사는 이 세상, 내 삶의 관계에 대해서 고민이 자꾸 깊어지는 것 같아요."

그 고민 때문에 '가능한 사랑'은 개봉까지 10년 안팎의 시간이 걸렸다. 이 감독이 하도 썼다 접었다를 반복하니까 출연 제안을 받은 전도연 배우가 시나리오를 보기 전까지는 영화가 제작될지 못 믿겠더라고 할 정도로.

이 감독의 머뭇거림과 고민은 '창작의 고통', 좀 더 구체적으로는 '창작자의 윤리적 고통'이었다.

"타인의 삶을 그리는 저 같은 창작자에게는 언제나 본질적인 고민이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얼마나 그들로서 할 수 있을까'입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그저 영화를 만들기 위한 재료로 사용하지 않고 그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느냐는 것은 제가 평생해온 질문입니다."

(언론 시사 기자 간담회)

'가능한 사랑'은 대기업의 집단 해고에 맞서는 과정에서 몸보다 마음에 더 큰 상처를 입은 해고 노동자 이야기를 다룬다. 이 감독은 해고 노동자의 삶을 정직하게 다루는 다큐멘터리도 있는데 굳이 자신이 그걸 영화로 만들어야 할 이유가 있는지 확신이 없어서 이 영화를 내놓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고 말했다.

"영화를 하기 전에 항상 저는 '이 영화를 내가 꼭 해야 되나' 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데. 저 자신에게, 또 관객에게, 그리고 영화 그 자체로 할 만한 의미가 있겠다는 확신이 들지 못하면 영화를 끝까지 추진하지 못하는 일종의 뭐랄까요. 일종의 괴벽이라고 할까요? 그런 게 있는 편입니다."

(제작보고회)

  '룩백'은 2년 전 별 기대없이 극장에 들어갔다가 가슴이 뛰며 나왔던 애니메이션 영화였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실사화가 안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는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한다고 하니 안심과 기대와 우려가 섞인 마음이 되긴 했다.

'룩백'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만화 창작에 열심인 귀여운 초등생 꼬마들이 나온다. 그들이 창작에 임하는 진지한 태도와 자세는 성인 저리 가라 할 정도다. 아니, 그들은 '진심'에 '초심'까지 있다 보니 성인보다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협업하고 경쟁하고 노력하며 성인 만화가로 성장한다. 서점에 갔다가 우연히 이 만화를 보게 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영화를 만들지 않고 그냥 넘어가기 힘들었으리라 짐작한다. 고레에다 감독은 부국제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집에 가져 와 그날 밤 읽었을 때 받았던 충격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때 '왜 사람들은 이야기를 쓰는가, 왜 사람들은 창작을 하는 것일까'를 고민하게 됐습니다. 저에게 대입한다면 '나는 왜 영화를 만드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 질문들을 늘 머리 속에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만들어나갔습니다."

노장들의 마음은 같았다. 결국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이런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 아닐까. 이런 질문이 노장들의 여유 있는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왜 이런 것까지 봐야하는지 모를 '콘텐츠'들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받아내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다.

※ 이 글의 인터뷰 내용은 필자가 직접 참여한 이창동 감독과의 지상파TV 인터뷰와 국내 언론 시사 기자간담회, 제작보고회 기자간담회를 종합하고 편집했습니다만 이창동 감독 발언의 전체 맥락은 최대한 살려 쓰여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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