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단은 미국과 캐나다 사이의 관세 갈등이었습니다. 북미자유무역협정 체제 개편과 관세 재조정을 두고 미국과 캐나다는 협상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끝내 결렬되자 트럼프 정부는 강경 조치에 나섰습니다. 캐나다산 목재, 낙농품, 시멘트 등 약 200억 달러 규모의 주요 수입품에 50% 보복 관세를 부과했습니다. 자동차와 철강 부문에 추가 적용하겠다는 압박도 가했습니다. 그런데 캐나다, 고개 숙이지 않았습니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미국의 일방적 위협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미국산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기존 25%에서 50%로 인상했습니다. 농기구·전자기기·가전 등 200억 달러의 미국산 품목에 최대 50% 관세를 매긴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에는 이', 1:1 맞대응 관세로 맞섰습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이 꺼낸 카드가 캐나다와 국경인 오대호 중 하나 '온타리오호'의 개명이었습니다. '아메리카호'로 바꾸겠다고요. 처음에는 으름장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현지 시간으로 지난 8월 27일 오후 백악관 집무실에서 '레이크 아메리카'로 즉시 변경하는 행정명령에 정식 서명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멀쩡한 지명을 고친 게 처음은 아닙니다. 정권 출범 초 '멕시코만'을 '아메리카만'으로 개명한 바 있습니다. 역시 멕시코와 국경 통제 강화, 마약 밀수 억제, 무역 불균형 해소 등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멕시코만' 지명을 고수한 AP통신사의 백악관 취재를 거부할 만큼 강경한 태도였습니다. 미국과 국경을 맞댄 유이한 두 나라 모두와 지명을 놓고 마찰을 빚은 셈입니다.
관세 전쟁으로 촉발된 자존심 싸움이지만 양국 모두 진심입니다. 미국은 호수 명칭 변경 행정명령을 즉각 발효했습니다. 당장 구글맵의 미국판에는 이미 '온타리오호'가 '아메리카호'로 변경됐습니다. 미국 연방정부 기관의 지도와 공식 문서, 지리정보시스템 등에 '레이크 아메리카'라는 이름이 사용됩니다.
이에 맞서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호숫가에 초대형 표지판을 설치했습니다. 꼭대기가 2층 건물 높이에 달하는 간판에 '온타리오호. 지금도, 언제나'라는 문구를 영어와 불어로 나란히 썼습니다. 카니 총리도 온타리오호 명칭이 캐나다 연방 건국과 미국 독립선언보다도 오래됐다며 "과거에도, 현재에도, 앞으로도 온타리오호"라고 반박했습니다. 온타리오라는 이름이 이 지역 원주민 웬다트어로 '아름다운 호수', '큰 호수'라는 뜻에서 유래돼 400년 이상 사용된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온타리오호 수면의 52%는 캐나다 관할이고 나머지는 미국 뉴욕주에 속합니다. 이미 양국 사이 국경은 정리가 끝난 상황입니다. 지명이 국경 분쟁에서의 법적· 실질적인 유불리에 영향을 미치지도 않습니다. 공해, 공유 수역 등의 지명은 일방 국가의 행정명령만으로 법적 지위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미국 법무부나 연방지명위원회의 명칭 변경은 미국 내 행정기관이나 자국 지적도 표기에만 영향을 미칩니다. 국제적으로 이 명칭을 따라야 할 법적 의무도 전혀 없습니다. 명분을 지렛대로 실리를 챙기고 최대한 상호 이익으로 환원하는 것이 일반적·통상적인 외교 문법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명분은 없고 챙길 실리도 없으면서 이웃 국가의 자존심만 건드리는 지명 변경은 명백히 '손해 보는 장사'입니다. 하지만 트럼프식 '장사꾼 외교', '국내 정치 중심적 외교' 프레임에서는 계산법이 다릅니다.
우선 '상징적 위협'을 통한 협상용 레버리지 확보 전술입니다. 관세, 무역 협상, 국경 문제 등 실질적 파급력이 큰 사안에서 상대국의 기를 꺾기 위한 심리전이자 주도권 선점 카드입니다. 지명 변경 자체는 실질적으로 얻는 게 없지만 상대국 정부에 "상식적·외교적 선을 넘어서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는 예측 불가능성의 메시지를 투사합니다. 일종의 '미친 놈 전술'로 압박감을 느끼게 만드는 수단입니다.
국내 정치용 '결집 마케팅'이기도 합니다. 외교 행위를 지지층 결집을 위한 '정치적 쇼맨십'으로 활용합니다. 미국의 우월성과 애국심을 극대화하는 '아메리카 퍼스트' 브랜딩을 시각적으로 증명합니다. 이로써 지지자들에게 "기존 관료들이 감히 못 하던 미국의 주권 행사와 위상 회복을 해냈다"는 강한 만족감을 줍니다.
비대칭적 비용 유발로 상대국의 국력 낭비를 유도한다는 목적도 읽힙니다. 미국 에는 한 번의 행정명령일 뿐이지만, 이를 방어하는 멕시코나 캐나다는 엄청난 외교적·행정적·여론의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캐나다나 멕시코의 정치권과 언론이 지명 논란에 휩싸여 분개하고 대응 자원을 낭비하는 동안 미국은 관세나 규제 조정 등 실질적인 통상 협상에서 더 유리한 고지를 노립니다.
마지막으로 이슈를 덮어 언론의 프레임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속셈도 있습니다. 국내외의 불리한 정치적 이슈나 정책 실패 논란에서 자극적인 주권 관련 뉴스로 미디어의 관심을 돌리는 것입니다. 극렬한 대립을 불러일으키는 주제를 투척함으로써 각종 논란을 덮고, 어젠다 세팅 주도권을 계속 쥐겠다는 의지입니다.
정통 외교관들은 "상대국 반발로 인한 외교적 고립과 세계적 반미 감정만 심화해 실이 더 크다"고 입을 모읍니다. 반면 트럼프와 그의 참모진은 "상대국 국민의 감정이나 외교 신뢰는 측정하기 어렵고 영향도 장기적이다. 반면 지지층의 환호와 상대국 정부에 가해지는 압박은 즉각적이고 명확하다"고 판단합니다. 외교를 '상호 협력의 장'이 아닌 '국내 정치를 위한 확장된 무대'이자 '제로섬 게임의 격투장'으로 정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입니다. 하지만 예측 불가능성을 앞세운 '미친 놈 전략'은 돌발성과 압박감이 요체입니다. 한두 번은 통하지만 반복되면 효과가 반감된다는 얘기입니다. 결국 패턴을 읽고 대비책을 마련합니다.
더 큰 문제는 최우방국이던 캐나다, 멕시코, EU 등이 더 이상 미국을 신뢰할 만한 협력국으로 보지 않게 된다는 점입니다. 자체적인 공급망 구축이나 다자간 협력을 강화하며 미국 의존도를 낮추는 각자도생 전략을 취하게 됩니다. 동맹국과의 결속력 약화는 적대국에 대한 대응력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장기적으로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 급증할 가능성이 큽니다.
국내 정치적 효과도 부정적으로 돌아서게 됩니다. 보복 관세와 무역 마찰이 장기화되면 미국 역시 농가, 제조업, 소비자를 중심으로 실질적인 경제적 타격이 누적됩니다. 잠깐이야 국가적 자존심을 세웠다며 여론이 환호하지만 생활이 피폐해지면 계속 '국뽕'에 취해 있기 어렵습니다. 결국 '국제적 고립을 자초해 얻은 실속이 무엇인가'라는 비판에 직면합니다.
트럼프의 이런 외교 전략은 '패권 국가'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거꾸로 장기적으로는 '패권 국가'의 지위를 위협하는 최악의 '惡手'이기도 합니다. 평생 장사꾼인 트럼프가 놓치고 있는 가장 큰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