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국경 근처 네팔의 히말라야 산악지대에서 발생한 대홍수로 인명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습니다. 발생 이틀만에 사망자는 400명에 다가가고 실종자는 900명을 훌쩍 넘었습니다. 구조와 수색 작업이 진행되면서 시신이 속속 발견되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 수력발전소를 건설하던 한국남동발전과 두산에너빌리티 소속 한국인 9명도 연락이 끊긴 상태입니다. 현지에서 고립됐던 두산에너빌리티 소속의 또 다른 한국인 10명 가운데 9명은 안전한 지역으로 옮겨졌습니다. 나머지 1명은 두산에너빌리티 공사 현장소장으로 사태 수습을 위해 남았습니다.
공개되는 사고 당시 영상은 충격적이라는 말로도 모자랍니다. 사람과 차량은 물론 다리와 건물을 통째로 집어 삼키는 압도적 규모에 조작된 화면 아닌가 의심마저 듭니다. 무엇보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비는 커녕 햇볕만 쏟아지는데 막대한 물과 토사가 덮치는 모습은 기괴하기까지 했습니다. 비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는데 도대체 저 많은 물은 어디서 왔을까?
GLOF(Glacial Lake Outburst Flood)라는 용어를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빙하호가 붕괴하면서 담고 있던 물과 토사가 한꺼번에 쓸고 내려오는 현상입니다. 빙하호는 빙하가 후퇴하면서 남긴 오목한 지형에 녹은 물이 고여 형성됩니다. 이 호수를 막고 있는 제방은 인간이 만든 콘크리트 댐이 아닙니다. '빙퇴석'이라 불리는 얼음, 자갈, 흙의 미결합 혼합물입니다. 빙퇴석 내부와 주변 사면은 영구동토층으로 덮여 있습니다. 영구동토 속 얼음이 토사와 자갈을 강하게 붙들어 두는 '시멘트' 역할을 하며 전단 강도를 유지합니다. 여기에 내부 얼음 코어가 지반 역할을 합니다. 제방 내부에는 여전히 다 녹지 않은 빙하 덩어리가 수m~수십m 두께로 묻힌 채 제방 형태를 유지해줍니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로 고산 지대의 기온이 올라가면 눈에 보이는 빙하만 녹지 않습니다. 지하에 숨어 있던 영구동토층과 제방 내부의 얼음 코어 역시 융해됩니다. 영구동토 속 얼음이 물로 변해 빠져나가면 자갈과 흙 사이를 채우던 시멘트가 사라지는 셈입니다. 지반에 미세한 빈틈이 생기면서 전단 강도가 급격히 떨어집니다. 빙하호 주변의 급경사 암벽을 지탱하던 영구동토가 녹으면, 단단히 고정돼 있던 암석층 전체가 지반에서 이탈하기 쉬운 상태가 됩니다. 여기에 기온 상승으로 빙하가 녹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호수 수위는 갈수록 상승합니다. 가뜩이나 약해진 제방이 견뎌내야 하는 수압은 점점 커지면서 한계에 다다릅니다.
끝내 파국이 닥쳤습니다. 대홍수 발생 당시 5.4 규모의 지진이 관측됐습니다. 그래서 애초에는 지진이 빙하호 붕괴를 부른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하지만 미국 지진조사국은 해당 지진파가 지각 변동으로 인한 지진이 아니라 수천만 톤의 토사와 빙하가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면서 발생한 '인공 지진파'로 분석했습니다. 지진 등의 외력이 원인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기온 상승으로 인해 암벽 내부의 영구동토가 녹아 지반 고정력을 잃었습니다. 한순간 수백만 톤 규모의 빙하와 암석 덩어리가 무너지면서 호수로 낙하했습니다. 이 거대한 충격이 진도 5.4 수준의 지진파로 측정됐다는 분석입니다. 낙하한 토사와 암석은 호수 수면을 강력하게 타격했고 거대한 파도를 만들었습니다. 이 파도가 약해진 빙퇴석 제방에 막대한 힘을 가합니다. 이미 내부 얼음이 녹아 사질화된 빙퇴석 제방은 파도의 충격과 수압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단 몇 분 만에 순식간에 붕괴했습니다. 제방이 터지면서 갇혀 있던 수억 리터의 물과 주변 토사, 바위, 파쇄된 얼음이 섞여 거대한 토석류를 형성하며 V자 모양의 좁은 계곡을 타고 하류를 휩쓸었습니다.
이번 재해 발생의 원인이 지진이 아니라는 점이 더 무섭습니다. 지진 등의 촉발력이 없어도 GLOF, 빙하호 붕괴 홍수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실증했기 때문입니다. 히말라야를 포함한 전 세계 고산 지대에는 이번 재해와 동일한 구조의 빙하호가 수만 개 이상 존재합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유사한 붕괴 사고의 발생 빈도와 위험성은 급격히 커질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실재 지난 2023년 영국 뉴캐슬대 카롤린 테일러 연구팀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실은 논문에서 전 세계적으로 1,500만 명이 빙하호 붕괴 홍수의 위험에 직접 노출돼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위험 인구의 절반 이상은 인도, 파키스탄, 중국, 네팔을 포함한 아시아 고산 지대에 집중됐다고 밝혔습니다. 남미 안데스 산맥의 페루 등도 히말라야 못지않게 위험도가 매우 높다고 지적했습니다. 2020년 발표된 글로벌 빙하호 변동 연구의 내용도 섬뜩합니다. 1990년부터 2018년 사이 전 세계 빙하호의 개수는 53% 증가했다고 합니다. 전체 수량도 약 48% 증가하여 약 156.5㎢에 달합니다. 빙하가 후퇴하면서 생성되는 빙하호는 단순히 수량만 늘어난 게 아닙니다. 경사가 가파르고 산사태 위험이 높은 고고도 지역으로 퍼져가면서 붕괴하면 그 파괴력이 훨씬 커지는 구조로 변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고산 지대의 하류 계곡을 따라 수력발전소, 도로, 관광 시설과 주거지는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동일한 규모의 붕괴가 일어나더라도 인명이나 경제적 피해 규모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 것입니다.
영구동토층의 융해는 비단 빙하호만 시한폭탄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각종 인프라와 도시 지반 침하를 유발합니다. 얼어붙어 있던 지하수가 녹아 빠져나가면 토양이 스펀지처럼 꺼지는 열카르스트(Thermokarst)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로 인해 시베리아나 알래스카 지역의 도로, 철도, 공항 활주로가 비틀리고 건물 균열이나 붕괴가 일어납니다. 러시아 고산·극지 도시의 경우 건물 지반의 40~80%가 위험에 노출된 것으로 평가됩니다. 또 대형 파이프라인 파손과 기름 유출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2020년 러시아 노릴스크의 2만 톤 넘는 대규모 디젤 유출 사고 역시 영구동토층 침하로 인한 연료 탱크 균열에서 비롯됐습니다.
대형 메탄 폭발 위협도 커집니다. 지하 깊은 곳에 갇혀 있던 메탄가스가 영구동토층 융해로 상부 압력이 약해지면서 지표면을 뚫고 강력하게 폭발합니다. 실재 시베리아 야말 반도 등지에서 깊이 수십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싱크홀 형태의 구덩이가 형성되면서 인근 가스전이나 인프라에 직접적인 위협을 준 바 있습니다. 게다가 전 세계 영구동토층에는 대기 중 탄소량의 2배에 달하는 약 1조 5천억 톤의 탄소가 갇혀 있습니다. 따라서 융해 시 메탄과 이산화탄소가 대량 방출돼 지구 온난화를 더 가속하는 악순환을 만듭니다.
10년 전 네팔에서 대지진의 참상을 취재한 바 있습니다. 피해는 처참했지만 불가항력적이라 대자연의 힘 앞에서 겸허해지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빙하호 붕괴 홍수는 인간 스스로가 키우고 부른 재해인 셈이라 더 끔찍하고 참담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