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1일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지 5년 5개월이 지났습니다. 쿠데타에 반대하는 거리 시위로 시작된 저항은 전국적인 무력 충돌로 확산했고, 지금도 군부와 NUG(National Unity Government, 민족통합정부) 산하 시민방위군(PDF), 소수민족 무장단체들 사이의 전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미얀마에서 1천600만 명 이상이 인도적 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약 380만 명이 국내에서 피란 중인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미얀마 정치범지원협회(AAPP)에 따르면 7월 20일 기준 쿠데타 이후 군부와 친군부 세력에 의해 숨진 것으로 확인된 사람은 8천186명입니다. 군부에 체포된 사람은 모두 3만 1천539명으로, 이 가운데 1만 4천581명이 현재 구금 중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런 가운데 미얀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아세안의 접근 방식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필리핀 마닐라에서는 어제(20일) 아세안의 미얀마 평화구상인 '5개항 합의' 이행 문제를 다루는 확대 비공식 협의가 열린 데 이어, 오늘(21일) 제59차 아세안 외교장관회의가 열렸습니다. 아세안과 대화상대국 간 외교장관회의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외교장관회의 등 관련 일정은 모레(23일)까지 이어집니다.
과연 아세안의 새로운 관여가 미얀마의 평화를 앞당길 대화의 시작일까요. 아니면 폭력 중단과 정치범 석방 등 아무런 양보를 하지 않은 군부에 다시 정당성을 부여하는 과정이 될까요.
미얀마 민족통합정부의 사이 카잉 묘 툰 외교차관은 SBS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5개항 합의 이행에서 어떠한 진전도 보지 못했다"며 "현시점에서 군부를 정상화하려는 시도는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사이 차관은 특히 "아세안은 군부가 설치한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며 민주세력의 목소리를 아세안 정책에 반영해 달라고 촉구했습니다.
쿠데타 이후 5년 넘게 계속된 전쟁…"전국에서 매일 전투"사이 차관은 현재 미얀마의 전황을 한쪽이 일방적으로 우세한 상황이라기보다는, 군부와 저항세력이 영토를 빼앗고 되찾기를 반복하는 일진일퇴의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이 카잉 묘 툰 NUG 외교차관 : 현재 전국에서 매일 전투 벌어지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군부가 우리가 통제하는 지역을 점령하려 하고, 어떤 경우에는 우리가 일부 지역을 점령합니다. 상황이 다소 오락가락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군부의 공습과 지상 공격이 이어지면서 민간인 피해도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이 카잉 묘 툰 NUG 외교차관 : 민간인들은 군부의 총격과 고문, 민간인 지역을 향한 공격으로 매우 큰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는 현지 국민을 지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군부는 이 국민들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사이 차관은 군부가 일부 국가들로부터 지원받고 있다는 점도 언급했습니다. 다만 어떤 국가인지는 공개적으로 밝히고 싶지 않다며 구체적인 답변은 피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가 군부의 권력 유지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묻자, 주변국들이 미얀마의 실제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지속 가능한 평화 구축을 도와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습니다.
[사이 카잉 묘 툰 NUG 외교차관 : 미얀마 국민은 이웃 국가들이 평화공존의 원칙을 지키는 데 도움을 주기를 바랍니다. 우리 역시 모든 국가의 주권을 존중하며 같은 존중을 기대합니다. 미얀마가 어려운 상황에 놓이면 주변 국가들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군부의 '민정 이양' 주장…"민간 정치에서 군부 역할을 굳히는 것"
미얀마 군부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총선을 실시했습니다. 주요 민주정당과 반대 세력이 배제된 선거에서 친군부 통합단결발전당(USDP)이 의회를 장악했고, 지난 4월 3일 친군부 의회는 2021년 쿠데타를 주도했던 민 아웅 흘라잉을 대통령으로 선출했습니다.
군부는 이를 '군정에서 민간정부로의 전환'이라고 선전하고 있지만, 국제사회에서는 군부 통치를 민간정부의 형태로 재포장하려는 시도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새 정부의 내각 역시 군 출신이나 친군부 인사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이 차관은 군부가 진정한 민정 이양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 정치에서 자신들의 지배력을 고착화시키려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이 카잉 묘 툰 NUG 외교차관 : 지금 군부가 하는 일은 민간 정치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굳히는 것입니다. 국민과 국가의 복지나 발전을 위해 양보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군부가 자신들의 정책을 따르지 않는 세력을 상대로 폭력과 탄압을 반복해 왔다며, 국제사회가 군부의 주장과 약속을 그대로 신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사이 카잉 묘 툰 NUG 외교차관 :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책에 따르지 않으면 군부는 무력을 사용합니다. 현지에서 이뤄지는 활동을 억압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합니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알지 못하고, 인권을 알지 못하며, 연방주의를 알지 못합니다.]
미얀마에서는 소수민족들이 70년 넘게 자치권과 동등한 권리, 문화적 정체성 보장을 요구해 왔습니다. 그러나 군부는 스스로를 국가 통합을 지키는 세력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소수민족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지 않았다는 게 사이 차관의 설명입니다.
[사이 카잉 묘 툰 NUG 외교차관 : 소수민족들은 70년 넘게 자치와 동등한 권리, 자신들의 문화를 보존할 권리를 요구해 왔지만 얻지 못했습니다. 2008년 헌법조차 소수민족이 고유한 정체성을 가질 권리를 보장하지 못했습니다.]쿠데타 이후 첫 외교장관 대면 접촉…해당 협의에서 배제된 NUG
아세안은 2021년 4월 미얀마 사태 해결을 위한 '5개항 합의'를 채택했습니다. 이 합의는 폭력의 즉각적인 중단과 모든 당사자 간 건설적 대화, 아세안 특사의 중재와 미얀마 방문, 인도적 지원 등이 핵심입니다. 하지만, 군부는 합의를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아세안도 그동안 군부의 정치 지도자들을 정상회의와 외교장관회의 등 고위급 회의에 초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변화가 감지됐습니다. 지난 12일 아세안 외교장관들이 미얀마 외교장관과 쿠데타 이후 처음으로 대면 회의를 한 데 이어, 13일에는 군부 측 협상위원회와 일부 소수민족 무장단체가 참석한 협의가 열린 것입니다. 하지만 NUG는 13일 열린 해당 협의에는 초청받지 못했습니다. 사이 차관은 NUG가 왜 이 협의에서 제외됐는지 아세안이나 필리핀 정부로부터 공식적으로 설명받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사이 카잉 묘 툰 NUG 외교차관 : 우리가 7월 13일 회의에 초청되지 않은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왜 초청되지 않았는지 아무도 공식적으로 말해주거나 확인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군부가 과거부터 상대 세력을 개별적으로 접촉해 민주진영과 소수민족 세력의 연대를 약화시키는 이른바 '분할통치' 전략을 사용해 왔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이 카잉 묘 툰 NUG 외교차관 : 과거 군부는 분할통치 전략을 사용하고, 일부 개인을 초청해 다른 이해관계자들의 연대를 분열시키려 했습니다. 우리는 그 함정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아세안 의장국인 필리핀은 아세안 특사가 특정 협의와 별도로 NUG를 포함한 미얀마의 여러 이해관계자들과 접촉하고 있다는 입장입니다. 아세안 특사인 마리아 테리사 라자로 필리핀 외교장관은 NUG와 소수민족 무장세력 등 모든 이해관계자들과의 관여를 계속할 것이며, 관련 협의 결과를 마닐라 아세안 외교장관회의에 보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5개항 합의 진전 없이 군부 초청해선 안 돼"사이 차관은 아세안이 군부와 접촉하는 것 자체를 무조건 반대한다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군부가 폭력을 멈추고 정치범을 석방하며 포괄적인 정치 대화에 나서는 등의 가시적인 조치를 취하기 전에 고위급 관여부터 확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사이 카잉 묘 툰 NUG 외교차관 : 5개항 합의의 이행에서 어떠한 개선도 확인되지 않는 상태에서 군부를 초청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폭력의 완화와 인도적 지원, 포괄적이고 건설적인 대화를 위한 기반이 마련돼야 합니다.]
사이 차관은 군부 지도부가 아세안 정상회의와 외교장관회의 등 고위급 회의에 복귀하기 위해서는 정치범 석방과 폭력 중단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특히 군부가 화해와 평화를 이야기하면서도, 아세안 5개항 합의의 실질적인 이행이나 정치적 대화를 위한 조건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사이 카잉 묘 툰 NUG 외교차관 : 군부는 역대 군부 통치자들이 사용해 온 것과 똑같은 오래된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조건을 제시하고 화해와 평화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5개항 합의의 이행이나 정치적 대화 전에 갖춰야 할 조건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군부가 내놓은 이른바 '100일 평화 구상'도 진정한 포괄적 대화가 아니라 군부 자체의 평화 절차를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 NUG의 우려입니다.
[사이 카잉 묘 툰 NUG 외교차관 : 그들은 민간인을 표적으로 삼고 매일 폭격하고 있습니다. 아세안은 군부가 설치한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민주세력의 목소리가 아세안의 정책으로 옮겨져야 합니다.]군부와 직접 협상하려면…"군부 통치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조건 필요"
NUG가 민 아웅 흘라잉이 이끄는 군부 주도 정부와 직접 협상할 준비가 돼 있는지를 묻자, 사이 차관은 군부 통치로 되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이 보장돼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미얀마가 연방민주연합으로 어떻게 전환할 것인지를 민주진영과 소수민족 등 여러 당사자가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도 강조했습니다.
[사이 카잉 묘 툰 NUG 외교차관 : 군부 통치로 되돌아가지 않는다는 조건이 필요합니다. 이 나라가 어떻게 연방민주연합으로 전환될 것인지를 동료들과 논의해야 합니다. (중략) 우리가 고려해야 할 다른 요소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정책, 하나의 전략과 집단적인 목소리를 가져야 합니다.]외부 접촉 차단된 아웅산 수치…"소재·건강 확인 못해"
사이 차관은 군부에 구금된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의 건강과 소재에 대해 NUG가 아무런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하다고 밝혔습니다.
[사이 카잉 묘 툰 NUG 외교차관 : 우리는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많이 노력했지만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아웅산 수치 고문이 살아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도 NUG 차원에서는 확인할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또 군부가 아웅산 수치 고문에게 외국 정부 관계자와의 접촉을 허용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들은 바 없다고 했습니다.
[사이 카잉 묘 툰 NUG 외교차관 : 군부를 제외하고 그녀가 외부의 누구와 접촉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그녀를 어떤 방식으로 대하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합니다.]한국 정부에 "군부 정당화하지 말고 민주세력과의 관여 확대해달라"
사이 차관은 한국 정부와 국민에게도 별도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한국이 그동안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지지해 온 데 대해 감사를 표시하면서, 미얀마 군부를 합법적인 정부로 인정하거나 정당화하지 말고 NUG를 비롯한 민주세력과의 관여를 확대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사이 카잉 묘 툰 NUG 외교차관 : 한국 정부와 국민들께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한 노력을 계속 지지해 주시기를 요청하고 싶습니다. 역대 한국 정부와 국민이 미얀마의 민주화운동과 함께해 온 것에 대해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한국 정부가 민주세력과 더 많이 관계를 맺어주시기를 요청합니다. 군부를 정당화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이 차관은 인도적 지원과 함께 교육과 보건 분야에 대한 한국의 지원도 필요하다고 호소했습니다.
[사이 카잉 묘 툰 NUG 외교차관 : 가능하다면 인도주의적 문제와 교육, 보건 분야에서 한국의 지원을 받고 싶습니다. 국제사회의 도움이 필요한 국민이 매우 많기 때문입니다.]평화를 위한 대화인가, 군부의 정상화인가
미얀마에서 폭력과 인도적 위기가 5년 넘게 이어진 가운데, 아세안의 기존 접근법이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군부를 포함한 당사자들과 직접 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군부와 만나지 않고서는 폭력 중단이나 인도적 지원 확대, 정치적 협상을 끌어내기 어렵다는 현실론입니다. 실제로 태국 정부는 최근 군부와 반군 양측 모두 대화에 열려 있다며, 향후 평화협상을 주선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NUG가 제기하는 문제는 대화 자체가 아닙니다. 폭력 완화와 정치범 석방, 포괄적인 정치대화를 위한 가시적인 조치 없이 군부와의 고위급 접촉부터 재개하는 순서와 방식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군부와 만나지 않는 것만으로 미얀마의 전쟁을 끝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민주진영과 소수민족, 폭력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시민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포함하지 않는 대화 역시 지속 가능한 평화로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아세안이 군부와의 접촉을 평화를 위한 압박 수단으로 활용할지, 아니면 군부가 국제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통로를 열어줄지는 이번 마닐라 회의가 답해야 할 질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