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9일 일요일 저녁,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에 가봤습니다. 6·3 지방선거 기준 47일 째 되는 날입니다. 요즘에는 누가 오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집회 참가자들은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주변에 모여 있습니다. 경기장 1-2 구역, 1-3 구역, 2-1 구역에 주로 있습니다.
참가자들은 1-3 구역에 가장 많았습니다. 1-2 구역 쪽은 유동성이 많은 곳입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매일 와서 앉아 있다가 가는 곳입니다. 장 대표가 왔을 때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운집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밖에 2-1 구역, 경기장 외곽, 버스 쉼터 등에도 참가자들이 분포해 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의 수 역시 꽤 됩니다. 정확히 다 셀 수는 없지만, 7월 19일 저녁 약 2시간 동안 직접 확인한 현장 인원은 못해도 5천 명 이상입니다. 동시간대 직접 확인하지 못한 인원까지 고려하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7월 19일이 일요일 저녁인 점은 감안해야 합니다. 다음 날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들의 참가는 저조했을 것입니다. 반대로 장 대표가 7월 17일 제헌절을 '올공데이'라 칭하고 참가를 독려했기에 참가자는 평소보다 많았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전에도 여러 집회 현장에 가봤습니다. 그런데 올림픽공원 집회는 다릅니다. 리더가 없습니다. 구호를 선창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다시 말해 '센터'가 없습니다. 무대가 설치돼 있지도 않고, 앞에 나와서 마이크를 들고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리더가 없는데, 구호가 일정합니다.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 수개표'입니다. 그러다 군중 속에서 누군가 애국가 1절을 부르면, 4절까지 모두가 따라 부릅니다. 그리고 다시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 수개표' 구호로 돌아갑니다. 일요일 저녁 두 시간 동안 있으면서 들었던 이밖에 구호는 딱 하나, '멸공'이었습니다. 이마저도 멸공을 누군가 외치지만, 머지않아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 수개표' 구호에 묻힙니다.
장동혁 대표도 이런 특성을 파악한 듯합니다. 이날도 집회 현장을 찾은 장 대표를 목격했습니다. 1-2 구역에만 줄곧 있다가 돌아갔습니다. 장 대표는 간혹 대형 태극기를 들고 흔들긴 하나, 참가자들과 똑같이 구호를 외쳤습니다. 구호를 '특검하자'로 바꿔볼 법 하지만, 집회 참가자들이 반응하지 않는 구호는 하지 않았습니다. 정치권에서 대통령 반말 호칭 논란을 빚은 장 대표의 이른바 '도화지 문구 정치'도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듯합니다. 장 대표는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은 도화지에 적어서 문구로만 보여줄 뿐 구호로 외치지 않습니다.
제1야당 대표의 계속되는 장외 집회 참석에 당 안팎에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지만, 장 대표는 본인이 집회를 주도적으로 이끄는 역할이 아니라 참석자 중의 1명이란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걸로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인지 집회에 나가기 시작했던 초기에는 당 대표 공개 일정에 집회 참석을 아예 포함 시키지 않았습니다. 쉽게 말해 당 대표로서의 행보가 아니라 개인의 비공식 일정이란 형식을 취했던 겁니다.
그런데 최근엔 송파 올림픽공원뿐 아니라 인천을 비롯한 다른 지역 집회에도 참석하기 시작했는데, 이 시기에 즈음해 집회 참석이 당 대표의 공식 일정 공지에 포함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개인의 비공식 일정이었지만 이제는 당 대표의 공식 행보로 변모한 셈입니다.
야당 대표의 장외 집회 참석, 그것도 유례를 찾기 힘든 장기간 연일 참석은 '의회 정치를 통해 우리 사회의 갈등과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도 대의 민주주의를 책임진 정당의 대표가 스스로 그 책임을 내버렸다'는 당 내외의 원칙적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럼에도 장 대표는 '올공'을 자신의 정치적 자산 중 하나로 삼는 행보에 적극적으로 나선 셈인데, 지금 '올공'에 있는 무엇이 장 대표를 이렇게 움직이게 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올림픽공원 집회를 '지도자 없는 집회'로 부르곤 합니다. 전문용어로 어나니머스 콜렉티브(The Anonymous Colletive)입니다. 단어 그대로 익명의 무리라는 뜻입니다. 가장 큰 특징은 무정형성입니다. 리더도 없고, 회비도 없고, 강령도 없습니다. 구성원이 특정되지 않습니다. 모두에게 열려 있는 것도 한 특징입니다. 반대로 원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나갈 수 있습니다. 단지 공통의 목적이나 혐오를 공유할 뿐입니다. '어나니머스 콜렉티브'의 이러한 특징은 올림픽공원 집회 현장에서 직접 확인한 모습과 일치합니다.
어나니머스 콜렉티브의 특징과 일치하지 않는 점도 있습니다. 지리적 위치입니다. 어나미머스 콜렉티브는 위치가 제한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올림픽공원 집회 현장은 핸드볼경기장 앞으로 한정돼 있습니다. 투표함이 있었던 곳인 만큼 상징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올림픽공원 집회 현장은 어나니머스 콜렉티브가 한국에서 독특하게 발현된 사례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지 40일 넘게 지났습니다. 일부에선 이들을 '극우'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이념적으로 극우성향 참가자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집회 참가자들을 일일이 인터뷰하거나, 집단 인터뷰를 하지 않는 이상, 이들 전체의 성향을 하나로 그룹화하는 것은 어려워 보였습니다. 리더가 없는 집회다 보니 더욱 그렇습니다. 극우에 대한 단어 정의도 저마다 다릅니다. 이들이 외치는 공통된 구호를 통해 이른바 '재선거를 통한 참정권 회복'이란 공통의 목표가 있다는 것 정도만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 확인한 것은 적어도 이들이 '내가 극우다', '내가 윤 어게인이다'라고 외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로지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 수개표'만 있을 뿐입니다. 참가자들이 마음속으로는 특정의 이념적 성향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를 공개 장소에서 여러 명이 동시에 발설하지 않는 이상 집단 전체를 극우라 결론 내릴 근거는 찾지 못했습니다.
참가자들의 구호 가운데 부정선거라는 단어가 주는 거부감도 존재합니다. 부정선거 주장은 근거 없는 음모론과 동일시 돼 왔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곳 현장에서 말하는 부정선거는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서 촉발된 부실 선거의 개념도 포함돼 쓰이고 있는 걸로 들렸습니다. 이들의 부정(不正)은 단어의 사전적 의미 그대로 올바르지 아니한 것입니다. 풀어 말해 '올바르지 않은 선거였으므로 재선거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이날 현장에서 봤을 때 2030이 많은 건 직접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이들은 집회 참가자이기도 했지만, 자원봉사를 하러 온 사람도 더러 볼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이날 저녁의 경우 2030의 수가 과반에 못 미쳐 보였습니다. 체감상 2030 현장 인원이 40% 정도 돼 보였습니다. 나머지는 6070 참가자가 주를 이뤘습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과거 국민의힘 당 대표 시절 말했던 세대결합론(혹은 세대포위론)도 떠올랐습니다.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는 2030 젊은 층과 국민의힘 전통 지지층인 노년층이 뭉쳐야 한다는 뜻으로 말했던 것인데, 과연 지금의 올림픽공원이 그러한 모습이 발현되는 현장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장 대표는 그런 모습이라고 본 것일까요.
장동혁의 올림픽공원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달 3일,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이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올림픽공원에 매일 가고 있습니다. 명분은 선관위 특검이었습니다. 장 대표는 선관위 특검 통과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며 2030이 투표용지 부족사태에 분노하는데, 야당 대표가 특검법안 하나 관철하지 못하면 창피하다는 논리를 펴왔습니다.
선관위 특검 법안은 국민의힘 의석 수가 한참 부족해 단독으로 처리할 수가 없습니다. 집권 여당인 민주당의 동의가 필수입니다. 민주당과 협상해야 합니다. 장 대표 측에서는 정점식 원내대표가 대여 협상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면, 2030의 분노 여론이 유지돼야 한다는 논리를 펴왔습니다. 이들이 목소리를 내고, 2030 민심이 들끓어야 민주당도 움직일 것이기 때문에, 장 대표가 올림픽공원에서 장외 정치한다는 당내외 비판을 감수하면서도 매일 가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장 대표가 7월 17일 제헌절에 국회에서 열린 경축식에 참석하지 않고 '올공데이'를 기획한 것도, 인천, 부산, 전남광주, 경기 남부에 이어 대구에서 열리는 참정권 수호 집회에도 참석할 예정인 것도 같은 차원으로 보입니다. 장 대표는 대구 집회를 마치면 제헌절 집회 때처럼 다시 '올공데이 시즌2'를 기획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당 의원들의 도움이 없어도 자기 힘으로 장외에서 이슈를 끌고 가보겠단 계산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어제(21일)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선관위 특검법안에 잠정 합의했습니다. 핵심은 '여야 합의'입니다. 특별검사 추천을 위한 국민추천위를 구성하고, 추천위가 추천받은 6인 가운데 2인을 여야가 합의해 추립니다. 그리고 대통령이 2인 가운데 1인을 임명하는 방식입니다. 여야 합의인 만큼 민주당과 국민의힘 양쪽이 동의한 사람만 2인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한쪽으로 치우친 인사가 2인 안에 포함될 가능성을 덜어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같은 방식은 민주당이 주장한 제3자 추천 방식과 국민의힘이 주장한 야당 추천 방식의 절충안인 셈입니다. 장 대표도 전부터 여야가 합의해서 특검을 추천하는 방식은 검토해 볼 수 있는 안이라고 주변에 말한 바 있습니다. 다만 장 대표는 이번 합의안에 대해 일부 아쉬움을 비공개 의원총회장에서 표현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수사 범위를 구체화하지 못한 점 등입니다.
일단 장 대표 측에선 선관위 특검법안에 여야가 합의 처리하기로 결론 내린 부분에 대해, 득 보는 부분은 자명하다고 봅니다. 특검 통과는 가시적인 성과고 그 공이 장 대표 몫으로 돌아올 수 있는 서사(Narrative)가 있다는 겁니다. '당 대표가 매일 집회 현장에 나간 덕분에 이슈가 묻히지 않았고, 특검이 통과될 수 있었다는 평가가 가능해진다'는 내적 논리가 작동하는 겁니다. 외부의 비판 목소리와는 별개로 '장동혁이 그래도 선관위 이슈를 선점해서 결과적으로 선전한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내부 판단 때문인지 장 대표는 선관위 특검법 처리에 여야가 합의를 했지만 그래도 당분간 올림픽공원 집회에는 계속 참석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반면 선관위 특검법의 여야 합의로, 장 대표의 '올공 정치'에 내걸렸던 중요한 명분이 사라졌습니다. 게다가 특검법안이 통과하면, 합의 내용에 대해 당원들과 지지자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일부 강성 당원들은 벌써 이번 합의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들의 반발이 계속되면 그동안 이들의 지지를 받아온 장 대표가 직접 책임져야 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앞으로 계속 장외 집회에 나가려 한다면 그 이유와 목표를 재설정하지 않고는 객관적 명분을 찾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올림픽공원 현장에서 외치는 구호 가운데 하나가 당일 투표인만큼 사전투표 폐지 등을 새 목표로 설정하고 계속 장외 정치를 할 거란 전망도 나옵니다. 반면 목표가 분명하지 못하면, 당 대표가 장외 돌아다니면서 뭐하고 있느냐는 핀잔과 비판은 오히려 더 거세질 수 있고 애써 잠재운 사퇴론도 언제든지 불거질 수 있습니다.
최근 장동혁 대표와 정점식 원내대표 사이 메시지 톤이 살짝 다를 때가 있습니다. 이를 두고 투 톱 사이 관계가 틀어진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지만, 장 대표 측은 신뢰가 금이 갈 정도가 아닐 뿐더러 21대 국회 법사위 때부터 맺어온 관계는 생각보다 견고하다고 말합니다. 선관위 특검법안 협상을 정 원내대표가 원내에서 지휘했다면, 장 대표는 장외에서 후방 지원을 한 셈이라는 주장입니다. 장 대표는 "점식이형이 원내에서 대여 협상 잘할 수 있도록 후방 지원하는 게 나의 일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김민전 의원은 최근 의원 단체 텔레그램방에다 이런 말을 남긴 바 있습니다. "장 대표는 1230(10·20·30대)과 행동주의 당원들을 견인하고 있고, 정 원내대표는 제도권과 제도권을 중시하는 지지층을 견인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다만 이런 해석에 대해선, 당내 노선 갈등에 따른 어쩔 수 없는 분열상을 가리기 위한 아전인수격 해석이라는 비판도 나옵니다.
장 대표는 당 대표가 되는 순간부터 늘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그럴 때마다 기존 여의도에서 볼 수 없는 방식으로 상황에 대처했는데, 여기에 대해선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아니다 오히려 타개했다"는 평가가 당 내에서도 극명하게 엇갈려 왔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 요구가 빗발칠 때도 최후의 순간까지 절연이랑 단어를 본인 입에 올리지 않고 버텼습니다. 사퇴론 등이 나올 때는 24시간 필리버스터로, 단식으로, 장외 정치로 맞불을 놓았습니다. 언론이 당 대표 행보를 비판하며 집중포화를 날릴 때는 보수 강성 유튜버들을 호위무사로 썼습니다. 중진들이 덧셈정치를 하자며 화합을 말할 때는 당의 기강 확립을 내세우며 해당행위자 징계 필요성으로 반격했습니다. 한동훈 무소속 의원의 복당 문제가 제기될 때는 오히려 절대불가라고 단언했습니다. 이번에는 또 '올공 정치'로 새로운 초식을 보여주고 있는데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보수당 대표의 모습이 불러온 '뉴 노멀'이 될까요? 국민의힘 내부의 대표 사퇴론이 다소 소강상태에 들어갔습니다. 여전히 내년 2월 경 사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장 대표는 사퇴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장 대표의 남은 공식 임기는 내년 8월까지입니다. 아직 1년 이상이 남았습니다.
<참고문헌>
윤민우·김은영, 『모든 전쟁』, 박영사, 2023, pp. 385-3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