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보완수사권 폐지'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김진주(가명) 씨가 어제 청바지를 들고 국회에 나왔습니다. 검찰 직접 수사권 폐지의 후속편으로 보완수사권 폐지가 논의된 지 1년 가까이 지났지만, 그동안 피해자가 어떻게 보호받을지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는 이유였습니다.
김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핵심 당사자인 범죄 피해자들을 열외하고 논의되는 이 명제는 애초에 참과 거짓으로 나뉠 수 없습니다." 보완수사권 논쟁은 그동안 민주당 주도로 검찰, 세부적으로는 검사의 권한을 어느 선까지 박탈할 것이냐의 문제로 다뤄졌습니다. 하지만 김 씨는 검찰이든 경찰이든 피해자가 억울할 때 누가 다시 들여다볼 것인가의 문제로 호소했습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 2022년 5월 부산 서면의 한 오피스텔 공동현관에서 벌어진 사건입니다. 한 남성이 귀가하던 여성을 뒤따라가 머리를 가격하고, 의식을 잃은 피해자를 CCTV 사각지대로 끌고 갔습니다. 폭행·상해로 출발한 사건은 경찰 단계에서 피해자가 장애 진단서를 제출한 뒤 중상해 취지로 다뤄졌습니다. 1심에서 가해자는 살인미수 혐의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러나 피해자는 처음부터 성범죄 가능성을 호소했습니다. 문제는 그 주장이 초동 수사 단계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사건의 실체가 바뀐 것은 항소심 과정에서였습니다. 검찰은 피해자의 옷, 특히 청바지 등 증거물을 다시 감정했고, DNA와 사건 당시 정황을 추가로 확인했습니다. 그 결과 성범죄 목적이 쟁점으로 떠올랐고, 죄명은 강간살인미수로 변경됐습니다. 항소심은 징역 20년을 선고했고, 대법원도 이를 확정했습니다."똑같은 증거였던 청바지"..피해자 보호 장치 필요성 호소
김 씨는 국회에 사건 당시 바로 그 청바지를 가져왔습니다. 김 씨는 이 청바지를 "사실 경찰 단계와 검찰 단계에서 똑같은 증거였다"면서 "그런데 누군가는 찾아내지 못했고, 누군가는 찾아냈다는 것만으로도 이 모든 보완수사권에 대한 논제에 방증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초기 수사가 놓친 피해자의 호소, 빠진 증거, 잘못 잡힌 죄명을 다시 확인하는 피해자 보호 장치로 보완수사권이 역할을 한다는 실제 사례입니다.
김 씨의 증언은 감정적 호소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형사사법체계가 왜 여러 기관의 견제와 검증으로 설계돼야 하는 지를 설명했습니다.
"사람은 모두 실수를 합니다. 경찰, 검찰, 법원 모두 실수를 합니다. 그렇기에 기관을 함부로 없앨 것이 아니라 독단적인 판단을 하지 않도록 견제하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피해자 억울하면 공론화하라?" 정치권의 무책임
같은 맥락에서 김 씨는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를 주장하는 범여권 강경파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앞서 최강욱 전 민주당 의원은 지난 8일 한 유튜브 방송에 나와 경찰이 부실 수사를 하다 못해 진상을 사실상 덮으려 한 장윤기 사건을 언급하면서 "보완수사권이 없어진 상황에서 내가 검사라면 언론에 알리겠다"고 말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습니다.
"정치 수사가 문제라면 그와 관련된 법안을 만드는 것으로도 충분한데, 나라의 기관을 없애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피해자가 억울하면, 검사가 억울하면 공론화를 하라는 것만큼 무책임한 말이 없습니다"
민주당 형사소송법 개정 TF는 이런 상황을 보완하기 위해 '경찰이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 시 지체 없이 이행하도록 하고, 이유 없이 이를 따르지 않는 경찰관에 대해선 직무배제와 징계, 교체를 요구'하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김 씨는 사건 처리에 허덕이는 경찰의 선의에 기대 스스로 보완수사를 하도록 한 정도로는 범죄 피해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단언합니다.
"사람이기에 자신이 틀렸다는 사고는 하기 어렵습니다. 같은 식구라면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필요하고 다른 기관이 필요한 것입니다. 저는 한 때 2차 가해자를 신고하러 갔을 때 한 경찰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런 거 신고 안 하면 안 되겠냐고. 저는 무안함도 느꼈지만 그 공무원에게 안쓰러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이미 너무나도 지쳐 있고 책임질 일만 만들지 말자는 마음으로 가득한 눈빛이 있는 걸 저는 직접 보았습니다"
김 씨는 지금과 같은 형사소송법 개정이라면 사적 제재가 더 호소력을 갖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저는 그 흉악한 CCTV는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법원에서 재판장 앞에서 범죄 피해자임을 수십 대의 카메라 앞에서 밝혀야 되는 그 카메라의 영상만큼은 아직도 제대로 보지를 못합니다. 그 영상은 저에게 아직도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가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피해자의 노력이 필요한 사법기관은 존재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렇다면 수사기관도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사법기관도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모두 사적 제재를 하는 것이 더 간편하니까요"
민주당 내에서도 보완수사권 폐지에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어제 의원총회에서는 "사회적 약자들도 이해할 수 있는 합의가 있어야 한다. 제한적 보완수사권이 필요하다"(시각장애인 서미화 의원) "최소한의 장치까지 없애면 앞으로 발생하는 수사 실패는 모두 민주당의 책임이 될 것이다"(변호사 출신 이소영 의원) 등 전면 폐지에 반대하는 소신 발언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홍기원 의원은 다른 의원 10명과 함께 별도의 개정안을 냈는데, 사회적 약자 대상 범죄와 민생 범죄는 검사가 지금처럼 보완수사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성폭력과 아동ᆞ노인학대 사건의 경우 경찰이 전건을 검찰에 송치하게 하는 조항이 담겼습니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는 남겨두는 걸 검토해보자고 했던 이재명 대통령도 국무회의에서 "목소리를 키우고 세게 이야기하고 삿대질을 한다고 잘 되겠느냐. 기분은 좋을지 몰라도 결과는 좋기 어렵다. 주사를 팍 찌르는 순간 겁이 나서 힘을 주면 주사기가 부러진다. 살살 놔야 한다. 개혁도 비슷하다"고 말했는데, 국회 차원의 숙의를 강조한 언급으로 해석됐습니다.
그럼에도 민주당 강경파들은 요지부동입니다. 정청래 전 대표는 페이스북에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 이것은 민주당 검찰개혁의 깃발이고 상징이다. 깃발을 더 높이 들겠다"고 올린 데 이어 '여당 의원 10여 명 의총서 보완수사권 완전 폐지 신중해야'라는 언론 보도 제목을 끌어와 "정말 심각합니다. 갑자기 왜 이런 분위기가 됐는지…우울합니다"라고 썼습니다. 김용민 의원은 "4년 전 검찰직접수사권 폐지를 할 때와 비슷한 흐름입니다. 모든 언론과 친검 전문가 등이 등장해 검찰개혁을 비난했고, 거기에 밀려 6대 범죄 중 2대 범죄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그 후과는 내란!"이라고 적었습니다.
김진주 씨는 증언을 마무리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검찰개혁으로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저는 돈도 없고 빽도 없고 힘도 없습니다. 저와 같은 사람이라면 지금의 상황은 무조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상황입니다. 우리가 가해자가 살기 좋은 세상이라고 단념하는 시대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보완수사권 논쟁이 어디서 출발해야 하는지 되돌아보자는 이야기로 들렸습니다. 권력 기관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앞서 범죄 피해로부터 국민을 어떻게 더 두텁게 보호할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개혁은 진정한 개혁이 아니라는 김 씨 증언에 정치권이 시간을 들여서라도 고뇌에 찬 답을 내놓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