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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재 내기 전날 투자…이해충돌 방지 '하는 척'? [이브닝 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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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의 뿌리 깊은 '이해상충' 역사

20세기 초반 미국 29대 대통령이었던 워런 하딩은 역대 대통령 인기 순위에서 항상 꼴찌를 다툽니다. 부패와 무능의 상징으로 평가 받습니다. 비록 본인이 직접 부정한 돈을 챙긴 정황은 없지만 자신의 측근, 특히 '오하이오 갱'으로 불리는 고향 친구들을 중용해 부패의 온상을 만들었습니다. 대표적 사건이 '티폿 돔 스캔들(Teapot Dome Scandal)'입니다. 내무부 장관이던 앨버트 폴이 해군 비축 유전(Teapot Dome)을 민간 정유업체에 불법 임대하고 막대한 뇌물을 받았습니다. 현직 장관이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고 미국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부패 사건으로 꼽힙니다. 하딩 대통령은 그 당시에도, 이후에도 사적 이익과 공적 책무를 분리하지 못한 이해충돌의 대표적 사례로 여겨집니다.

새로운 차원의 '이해충돌' 논란 일으킨 트럼프

하지만 21세기 미국에서 이를 뛰어넘는 대통령의 이해충돌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2025년 관세 유예 조치 직전 주식 무더기 매수' 논란입니다. 미국 정부윤리국에 제출한 927페이지 분량의 재산공개 보고서에서 스스로 밝힌 내용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투자 계좌에 이른바 '해방의 날' 관세 폭탄 예고로 증시가 폭락하던 2025년 4월 8일 애플·엔비디아·마이크로소프트 등 대형 기술주를 포함해 무려 327건, 1,280만 달러 규모의 주식을 집중 매수한 사실이 기록돼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인 9일 트럼프 대통령은 '90일 관세 유예'를 전격 발표하면서 S&P 500 지수가 하루 만에 9.52% 폭등하는 역사적인 급등장세를 불렀습니다. 단순히 정리하면 주식 시장에 호재가 되는 정책을 발표하기 하루 전 그 혜택을 누릴 게 분명한 주식들을 대량으로 사들인 셈입니다.

당연히 미국 사회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애덤 시프 상원의원 등 민주당에서는 "대통령이 본인의 말 한마디로 증시를 폭락시켰다가 바닥에서 주식을 쓸어 담은 뒤 다음 날 말 바꾸기로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고 공격했습니다. 시장 조작이자 공직 윤리의 완전한 파산이라며 맹비난을 쏟아냈습니다. 특히 45일 공시 의무를 어기고 1년 뒤에 공개한 것은 범죄 행위를 은폐하려 한 증거라며 백악관의 공식 해명과 청문회를 요구했습니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 측은 '마녀사냥'이라고 반격합니다. 차남인 에릭 트럼프는 SNS에서 "트럼프 대통령 일가와 가족 회사는 특정 투자 종목을 선택하거나 지시, 승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며 선을 그었습니다. "거래 내용을 사전에 알지 못하며 독립적인 제3자 자산운용사가 투자를 결정한다"고 밝혔습니다. 애나 켈리 백악관 대변인도 "트럼프 대통령 일가는 이해충돌 행위에 관여한 적도, 앞으로 관여할 일도 없다"며 "행정부의 모든 정책 결정은 미국 국민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공화당도 과거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 등 다른 정치인들의 주식 거래 의혹을 꺼내 들며 "트럼프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느냐"고 '맞불 작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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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신탁' 피하면서 이미 예정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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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등 고위 공직자의 이해 충돌 문제에 대해 미국은 이를 막기 위한 관례와 관행을 발전시켰습니다. '백지신탁(Blind Trust)' 입니다. 대통령이 취임할 때 자신의 주식, 부동산, 기업 지분 등 모든 자산을 금융기관 등 독립된 수탁기관에 전권을 위임해 처분하거나 관리하게 하는 제도입니다. 대통령은 재임 기간 동안 해당 자산이 어디에 투자되고 있는지, 기업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전혀 알 수 없어야 합니다. 1970년대 초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미국 대통령 등 고위층 윤리에 대한 신뢰가 땅끝까지 추락하자 미 의회는 급기야 초당적 법률안을 만듭니다. '1978년 정부윤리법(Ethics in Government Act of 1978)'입니다. 관례적 제도였던 '백지신탁'을 법제화해 공식제도로 안착시켰습니다. 이에 따라 린든 존슨에서 버락 오바마까지 현대의 거의 모든 대통령은 이해충돌 소지를 없애기 위해 전 재산을 백지신탁 하거나 금융자산을 인덱스 펀드, 국채 등 분산된 형태로 전환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전통과 관행을 깨부순 이가 바로 트럼프 대통령입니다.

1978년 정부윤리법상의 백지신탁을 설정하는 것 자체가 강제 조항이 아닌 점을 이용했습니다. 해당 법은 "고위 공직자가 이해충돌을 피하기 위해 백지신탁을 한다면 반드시 정부윤리국이 인증하는 엄격한 기준을 맞춰야만 법적인 효력을 인정해 준다"고 규정할 뿐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윤리국에 찾아가 "내 자산을 법적 백지신탁으로 인증해달라"고 요청한 적이 없습니다. 가입이 법적 의무가 아닌 만큼 제도를 아예 이용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대신 사적으로 일반 신탁을 만들어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넘겼습니다. 당연히 이는 윤리국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므로 법적인 '적격 백지신탁'이 아닙니다. 정부윤리국도 당시 "트럼프의 조치는 법적 백지신탁과 거리가 멀다"고 공식 발표한 바 있습니다. 법적 요건을 갖춘 백지신탁을 했다면 이번에 벌어진 논란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겠지만 '내 맘대로 신탁'을 한 상황에서는 언제든 비슷한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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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허점을 교묘하게 파고 든 트럼프

그러면 다른 고위 공직자들도 백지신탁을 하지 않고 트럼프처럼 사적 이익을 마음껏 추구하면 될 텐데 왜 그러지 않을까요? 형사 처벌 규정까지 있는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 때문입니다. 이 법은 미국 연방 공직자가 자신이나 가족의 재정적 이익에 영향을 미치는 정부 업무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따라서 장관이나 백악관 참모 등은 본인의 자산을 그대로 둔 채 관련 업무를 보다가는 해당법에 의해 감옥에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엄격한 '적격 백지신탁'에 가입해 자산을 완전히 분리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 법의 적용 대상에서 대통령과 부통령은 명시적으로 제외돼 있습니다.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의 통치 권한을 하위 법률로 제한할 수 없다는 논리 때문입니다. 사실상의 면책특권입니다.

2012년 제정된 '공직자 내부자거래 금지법'은 대통령에게도 적용됩니다. 이 법은 모든 고위 공직자가 직무상 알게 된 비공개 기밀 정보를 이용해 주식 거래를 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하지만 이 법을 적용하려면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정보를 이용해 거래를 지시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합니다. 앞서 밝혔듯 트럼프 대통령 측은 "제3의 금융기관이 독자적인 권한으로 운영하는 '전권 위탁 계좌'로 관리된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주식 거래에 대통령이 개입한 사실을 수사로 밝혀내야 하는데 현직 대통령을 상대로 난망입니다.

이번 사건에서 트럼프 대통령 측이 명백하게 연방법을 위반한 지점은 있습니다. 바로 '공시 의무 위반'입니다. 앞서 소개한 1978년 정부윤리법 등에 따라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 공직자는 1,000달러 넘는 주식 거래를 한 경우 45일 이내에 '수시 거래 보고서'를 제출해 대중에게 공개해야 합니다. 국민들이 대통령의 정책과 주식 거래 간의 연관성을 실시간 감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5년 4월에 발생한 이 대규모 거래를 법정 기한을 한참 넘긴 최근 연례 재산공개 보고서에 슬쩍 끼워 넣었습니다. 다만 이렇게 중대한 공시 의무를 위반한 데 대한 처벌은 건당 단돈 200달러의 과태료에 불과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윤리국에 소액의 과태료를 내면서 법적 책임을 때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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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책임은 모면했지만 정치적, 도덕적 책임은?

트럼프 대통령은 백지신탁을 강제하지 않는 윤리법 허점과 대통령 자신은 이해충돌 형사처벌법 적용의 예외라는 두 가지 틈새를 파고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누가 봐도 의심스러운 이해충돌 정황이 드러났지만 임기 중에는 어떤 수사도, 처벌도 받지 않을 전망입니다.

하지만 법적 책임만 피하면 그만일까요? 지난 40여 년간 미국 대통령들이 재산을 처분하거나 '백지신탁'을 했던 것은 "법이 강제해서"가 아니라 "대통령으로서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국민적 신뢰를 얻기 위한 자발적 관례"였습니다. 공적인 대통령 업무를 수행하면서 사적인 이익은 챙기지 않겠다는 일종의 선언이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도덕적 의무를 헌신짝처럼 내던졌습니다. 이번 '관세 유예 조치 직전 주식 무더기 매수' 사건 외에도 가족들의 가상자산 사업에서 2조원 가까이 번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카타르로부터 6,100억 원 상당의 보잉 747 여객기를 선물로 받기로 해 비난을 사고 있습니다. 미국 국민들이 업무를 수행하면서 동시에 재산도 불리는 대통령을 '뉴노멀'로 받아들일지, 끝내 분노를 폭발시키고 더 엄격한 방지 제도를 만들지 두고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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