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앞에 흔들리는 등불', 말 그대로 '풍전등화' 신세입니다. 한때 잘 나갔던 영화를 뒤로 하고, 거센 바람 앞에 섰습니다. 구조조정 태풍 한가운데 서 있는 '한진해운' 얘깁니다.
한진해운은 지난 22일 이사회를 열고 '자율협약'을 신청하겠다고 공시했습니다. 자율협약을 신청했다는 건, 그룹 경영을 채권단 공동관리 체제에 맡기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한진해운을 지배해 온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일가가 사실상 경영권을 포기한다는 뜻입니다.
기업을 경영하다 보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실히 노력해도, 천재지변이나 환율, 전염병 같은 예상치 못한 '부정적 외부효과' 등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한진해운도 그런 안타까운 일반적인 사례 중 하나인 줄 알았습니다. 적어도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 일가가 갖고 있던 한진해운 주식을 깡그리 팔아버리기 전까진 말입니다.
● 자율협약 신청 이틀 전, 보유 주식 전량 매각
최 전 회장은 자신과 두 딸이 보유한 주식을 모두 매각한 건 정확히 '자율협약' 신청 발표 이틀 전이었습니다. 96만 7,927주, 시가로는 31억 원어칩니다. 한마디로 주가가 최대한 덜 떨어졌을 때 보유 주식을 냉큼 팔아 손실을 최소화했다는 얘깁니다.
만약, 이들이 정직하게 자율협약 발표 이후에 주식을 팔았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자율협약을 신청한다는 소식이 처음 나온 22일 한진해운 주가는 7%가 빠졌습니다. 3일 뒤인 25일엔 하한가(-29.94%)까지 기록했습니다. 최 전 회장이 정직하게 거래해 자율협약 이후에 주식을 매각했다면, 건질 수 있는 돈은 고작 15억 원 남짓에 불과했습니다.
하한가에도 주식을 못 판 주주들이 수두룩한 게 현실입니다. 매수 물량이 사실상 전무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주주들이 피눈물을 흘리는 동안, 경영악화의 책임이 있는 전직 최대주주는 주식을 미리 다 팔아버린 겁니다.
● 최은영 전 회장, 넘겨받은 남편 회사 경영
논란의 중심에 선 최은영 전 회장은 누구일까요? 그녀는 한진그룹 창업주인 조중훈의 3남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의 부인입니다. 또,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10남매 중 여덟째인 신정숙 씨의 장녀이기도 합니다.
조중훈 명예회장은 한진그룹을 항공, 중공업, 해운, 금융 등 4개 분야로 나눠 4명의 아들에게 물려줬습니다. 장남인 조양호 회장은 주력 계열사인 대한항공과 한진그룹을 받았고, 차남인 조남호 회장이 한진중공업을, 삼남 조수호 회장은 한진해운을 가져갔습니다. 4남 조정호 회장은 메리츠금융그룹을 담당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2006년, 삼남 조수호 회장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조 회장의 부인이었던 최은영 회장이 남편을 대신해 한진그룹을 맡게 됐습니다.
최 전 회장은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려고 노력했습니다. 2009년엔 그룹 이름까지 (한진그룹 소속이 아니라는 뜻에서) '한진해운그룹'이라고 바꿨습니다. 그리고 "한진해운은 1949년 우리나라 최초의 국책기업인 대한해운공사로 출범해, 현대 한국 해운의 서막을 열었다"라고 밝혔습니다. 한진해운의 시작은 시아버지인 조중훈 회장이 아니라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최 전 회장이 이처럼 한진해운에 지배력 확보에 열을 올린 건 시아주버니인 조양호 회장이 한진해운의 계열 분리를 늦췄기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조 회장은 "한진해운은 조카들(조유경, 조유홍)이 경영권을 갖게 되면, 자연스럽게 계열분리가 이뤄질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밝혔었습니다. 이는 '조씨 가문'이 아닌 최 전 회장에게 회사를 물려줄 듯이 없는 것으로 풀이됐습니다.
● 재앙의 시작, '용선료 협상'
이런 논란 속에서도, 최 전 회장은 한진해운에 대한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최 전 회장의 경영은 한진해운이 자율협상을 신청하며 실패로 끝났습니다. 전문가들은 한진해운의 위기가 6~7년 전 맺은 용선료 협상에서 시작했다고 분석합니다.
해운 회사들은 배를 선주에게 빌려서 물품을 운송합니다. 배를 빌린 대가로 지급하는 게 용선료입니다. 그런데 한진해운이 지금 지급하는 용선료는 요즘 시세보다 5배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업계가 호황일 때 무리하게 높은 계약을 맺은 겁니다. 그로 인해 선주들에게 내야 하는 한 해에 용선료만도 한 해 1조 원에 달합니다.
이 용선료 협상을 이끈 사람이 바로 최 전 회장입니다. 당시 최 전 회장의 판단은 훗날 한진해운의 운명을 채권단의 손에 넘어가게 했습니다. 수많은 노동자가 직장을 잃을 위기에 빠졌고, 주주들은 피눈물을 흘렸습니다. 최 전 회장은 비난과 책임으로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 회사는 1조 8천억 원 적자…본인은 거액 수령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또 있습니다. 회사가 이렇게 만신창이가 됐는데도, 최 전 회장은 한진해운 회장으로 재직했던 2013~2014년 두 해 동안 임원 보수와 퇴직금 명목으로 무려 97억 원을 받아갔다는 겁니다. 이 두 해 동안 한진해운은 무려 1조 8,000억 원의 순손실(2013년 1조 3,392억 원, 2014년 4,679억 원)을 내는 등 최악의 상황을 겪고 있었습니다.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는 "회사의 적자 규모가 크다는 건 다시 말하면 부채를 외부에서 끌어와야 한단 얘기다. 쉽게 말해, 밖에서 돈을 빌려 와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그렇게 빌려 온 돈을 가져와서 자기가 자기한테 보수 주고 배당했단 얘긴데, 한마디로 어이가 없는 거다. 추악한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의 전형을 보여주는 거 같다."
● "퇴직금은 다 받아가진 않았다."
이에 대해 최 전 회장은 "2014년 5월 한진해운에서 손을 뗄 때 이미 보유한 지분을 모두 매각하겠다고 공정거래위원회에 보고했고, 지분 매각은 그 계획에 따른 것이다. 지분 매각 시점이 자율협약을 발표하기 직전이었던 건,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 그리고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퇴직금을 다 받아가진 않았다."
최 전 회장이 회사 내 미공개 정보를 미리 알고 주식을 처분했다는 비판이 나오자, 금융당국도 조사에 나섰습니다. 현행 자본시장법에는 '임직원은 공개되지 않은 사내 정보를 주식거래에 활용할 수 없다'라고 돼 있는데, 최 전 회장이 이를 위반했는지 조사하겠단 겁니다.
금융위원회관계자는 "객관적으로 볼 때 최 회장 일가의 최근 주식 처분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손실을 회피하려 한 게 아닌지 누구나 의심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라며, 자율협약과 별도로 신속히 조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위법 사실이 있으면 엄정히 책임 물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최 씨가 "자율협약을 먼저 신청한 현대상선의 사례 등을 참고해 한진해운 주가 흐름을 예측하고 보유주식을 판 것"이라고 버티면 내부 정보를 이용했다는 혐의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회장이 이미 경영권을 포기하고 물러난 상황에서 한진해운 경영악화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에 대해서도 논란의 소지가 있습니다. 최 씨의 버티기가 통한다면 또 한 명의 재벌의 도덕적 해이는 이렇게 역사 속으로 묻힐 가능성이 높습니다.
● "해결책을 마련하지 않고 문제를 잘못된 방법으로 반복하는 건 정신병자다"
결과적으로, 최은영 전 회장은 경영자로서는 물론 사회 구성원으로도 실패했습니다. 냉정한 의미에선, 수많은 생명을 배에 남겨두고 홀로 탈출한 세월호 선원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미국 예일대 법대 에이미 추아 교수는 "새로운 해결책을 마련하지 않고 문제를 잘못된 방법으로 반복하는 이를 정신병자"라고 했습니다.
다소 거친 표현이지만, 우리도 그 비판에서 벗어날 수만은 없습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 재앙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또 누가 어떤 책임을 져야하는지 처절하게 분석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그것은 잘못과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금융당국의 철저한 조사를 촉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