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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퇴직하는 사장에게 헹가래를…'꽃을 든 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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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열린 삼성정밀화학 주주총회는 어느 때보다 무겁고 엄숙하게 시작됐습니다. 삼성그룹 계열사로서는 마지막 주주총회로, '삼성정밀화학'에서 '롯데정밀화학'으로 사명 변경, 롯데그룹 출신 이사·감사 선임 등이 주요 안건이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회사의 주인을 ‘삼성’에서 ‘롯데’로 바꾸는 안건을 심의·의결하는 자리였습니다.

이렇게 무겁고 엄숙한 자리에서 매우 뜻밖의 상황이 연출됐습니다. 이날 총회를 마지막으로 회사를 떠나는 성인희 사장을 향해 노동조합원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이렇게 외친 겁니다. “성인희 사장님! 창조적 파트너십 실천에 감사드립니다! 노조는 '창조적 파트너십'으로 생산과 안전을 책임지겠습니다. 임직원 여러분, 노조는 임직원 고용 안전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성인희 사장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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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공장에서 서울까지 올라온 노조원 50여 명은 성 사장에게 꽃다발과 자체 성금으로 마련한 순금 100돈(약 2,200만 원)짜리 감사패를 전달했습니다. 성 사장은 뜨거워진 눈시울로 노조원들을 안아줬고, 노조원들은 성  전 사장을 헹가래치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들 노사는 집회·시위 현장에서 자주 부르는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열창하며 그렇게 마지막을 함께 했습니다. 자본주의의 결정체인 주주총회장에서 보기 어려운 이색적인 풍경이자, 노사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한 장면이었습니다.

● “여러분과 함께 회사를 다시 살리겠습니다!”

성 사장이 2011년 7월 취임 후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울산공장 노동조합 사무실'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성 사장은 노조를 회사 경영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노조와 함께 회사를 살리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노조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오히려 삼성그룹이 노조를 와해하려고 성 사장을 보냈다고 생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성 사장은 삼성전자 인사팀장,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인력팀장, 삼성인력개발원 부원장을 역임한 삼성그룹의 대표적인 '인사전문가'였습니다. ‘무노조 원칙’을 고수하는 삼성그룹의 인사담당자가 사장으로 왔으니, 노조가 그렇게 판단한 것도 어쩌면 당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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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사장은 긴 호흡으로 노조에 진정성 있게 다가갔습니다. 임원들만 참석하던 경영전략회의에 노조 관계자들을 참석시켰고, 재무·인사 등 회사 경영상황을 투명하게 공유했습니다. 해외 인력채용 행사나 해외 거래처 방문 때도 노조 간부들과 동행하며 회사 경영전략을 함께 만들었습니다. 또, 이익을 극대화해 성과를 공정하게 배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처럼 사측이 진정성을 담아 손을 내밀자, 차갑기만 했던 노조측도 마음을 바꿔 그 손을 꼭 잡았습니다. 2013년과 2014년 회사가 연속 적자가 나자, 노조는 희망퇴직을 골자로 하는 ‘구조조정안’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노사가 힘을 합쳐 더 우수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도 함께 했습니다. 그 결과, 성 사장의 임기 마지막 해인 지난해 적자를 극복하고, 매출 1조 1천691억 원, 당기 순이익 900억 원을 달했습니다. 배당도 주당 300원에서 500원으로 늘렸습니다.

● ‘믿음과 신뢰’로 인수·합병도 함께 대처

기업 인수·합병(M&A) 과정은 언제나 고통스럽습니다. 고용보장과 고용승계, 위로금 등을 놓고, 조직원들은 내분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4월, 삼성종합화학이 한화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노사는 ‘파업’과 ‘직장폐쇄’라는 초강수를 두며 첨예하게 대립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롯데정밀화학 노조는 삼성이 롯데케미칼에 지분을 매각을 발표한 지 일주일도 채 안 돼, “사측의 입장을 존중하고, 인수를 환영한다”라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일각에선, 직원들이 거액의 위로금을 받고 사측의 입장대로 움직였다는 추측까지 나왔습니다.

취재결과 이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한화로 인수된 종합화학 직원들보다 더 적은 위로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럼에도, 왜 노조는 인수를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을까요? 여기엔 성인희 사장이 줄곧 강조해온 노사간 ‘창조적 파트너십’이 중요하게 작용했습니다.

회사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던 노조는 지난해 매각이 결정된 이후에도 크게 반발하지 않고 경영진의 의견을 경청했습니다. 그리고 노사는 ‘공동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롯데그룹 편입을 함께 준비했습니다.

박인호 롯데정밀화학 노조 정책국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힘 있는 사람이 먼저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반대편에 있는 우리는 그 손을 잡아줬습니다. 노사 갈등을 푸는 데 그거면 충분했습니다. 항의하고 따지는 것만이 노조의 역할은 아닙니다. 노조는 조합원들을 위해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무잇어 최선의 선택이 노조와 회사가 함께 고민했고, 그 결과도 겸허하게 받아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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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받으며 떠나는 이의 아름다운 뒷모습

성 사장이 마지막 주주총회에서 남긴 메시지도 결국은 ‘화합’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려움 속에서 하나가 됐습니다. 고난 속에서 강해졌습니다. 삼성의 DNA와 롯데의 DNA를 합쳐, 세계 초일류 화학사의 꿈을 반드시 이뤄주길 바랍니다. 그게 제가 바라는 겁니다. 몸은 떠나지만, 제 마음과 영혼은 여러분과 끝까지 함께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이번 취재를 하며 마음에 남은 글귀가 있었습니다. 화엄경에 나오는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이란 구절입니다. '처음 다짐한 마음을 변하지 않게 그대로 간직하면, 곧 부처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라는 뜻입니다. 성 사장을 비롯한 회사 경영진과 노동조합원들 모두 처음 가졌던 ‘역지사지와 상호존중, 그리고 신뢰’를 끝까지 간직해 아름다운 마무리를 만들어낸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회사를 인수한 롯데그룹 역시, 이 '아름다운 노사문화'를 존중하고 노조와 상생해 회사를 세계 일류 기업으로 키워가겠다고 수차례 설명했습니다. 회사의 오늘보다 내일이 기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기자생활을 하며 여러 분야에서 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하지만, 이번처럼 박수치고 또 박수 받으며 떠난 이들은 좀처럼 보기 쉽지 않았습니다. 박수받으며 떠나는 성인희 사장 그리고 떠나는 사장에게 박수를 친 노조원 모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아울러 이런 아름다운 모습이 사회 곳곳에 만연해(?), 이런 사례가 더는 기사거리가 되지 않기를 소원해 봅니다.

▶ 회사 다른 곳에 팔렸는데…사장 헹가래 쳐준 노조

  ※ 취재과정에서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의 조언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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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현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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