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제 닭장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이 건전지와 비슷해 배터리 케이지(Battery Cage) 방식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공장형 밀집 사육은 닭 여러 마리를 철재 우리에 가둬놓고 키우는 것을 말합니다. 감금된 상태로 사육되는 닭에 붙은 진드기를 박멸하기 위해 살충제를 뿌리면서 이번 사태가 불거졌다는 주장입니다.
유럽에서는 밀집 사육을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한 지 5년이 지났는데 우리나라는 왜 아직도 밀집 사육 방식을 유지하고 있는 걸까요?
■ "이번엔 또 뭐야?" 사용금지 살충제 또 나왔다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은 양계농가들이 사용이 금지된 살충제를 닭에게 뿌렸기 때문입니다. 닭 진드기를 없애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살충제는 10여 종으로 제한돼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양계농가들이 사용이 금지된 피프로닐이 함유된 살충제를 닭에게 뿌린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현행법상 돼지나 소, 닭 등 식용으로 먹는 가축에는 피프로닐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1993년 개발된 피프로닐은 가축에 기생하는 벼룩과 진드기를 없애는 데 효과적이지만 독성 때문에 사용이 금지됐습니다. 인체에 대량 흡수될 경우 간이나 콩팥을 손상시키고 파킨슨병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대전의 한 양계농가에서 나온 에톡사졸은 농작물의 진드기와 거미 등을 없앨 때 사용하는데, 달걀에서는 나와서는 안 됩니다. 사과나 배추 등 농작물에 쓰이지만 축산업에서는 사용이 제한된 농약의 일종으로 먹었을 때 메스꺼움과 구토, 복통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플루페녹수론 역시 사용이 금지된 살충제 성분입니다. 17일 오후 현재 금지된 살충제를 썼거나 허용 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확인된 농장은 모두 31곳에 달하고 이 가운데 87%는 친환경 인증까지 받은 곳으로 드러났습니다.
■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공장형 밀집 사육
공장형 밀집 사육의 경우 닭 한 마리가 차지하는 공간은 가로 20cm, 세로 25cm로 A4용지 한 장보다 좁습니다. 공간을 최대 활용하면서 계란을 끊임없이 생산해야 농가의 수익을 최대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문제는 이런 환경에서 살충제 살포가 반복되면서 내성이 강해진다는 점입니다. 더운 날씨에 배설물과 먼지가 가득한 케이지는 해충에게 최적의 성장 환경을 제공합니다. 양계농가가 독성 강한 사용금지 살충제에 손을 대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닭 진드기를 박멸하려면 닭장을 모두 비운 뒤 방역에 나서야 하지만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방역하는 동안 닭을 수용할 수 있는 다른 공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닭고기나 계란을 계속 생산하기 위해 일부 케이지만 비운 뒤 살충제를 뿌리면서 진드기 박멸을 포기하고 있다는 겁니다.
■ 생산성만 쫓은 처참한 결과…밀집 사육부터 폐지해야
케이지에서 닭을 키우는 밀집 사육은 조류인플루엔자(AI) 등 가축 전염병을 키우는 주범으로 지목돼 왔습니다. 이번 살충제 달걀 파문 이전에도 문제로 지적돼왔습니다. 정부가 지난 4월, 산란계 1마리당 최소 사육면적을 0.05㎡에서 유럽 수준인 0.075㎡로 늘리겠다고 발표했지만 법 개정 작업은 아직 시작도 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축산 선진국인 유럽연합(EU)에서는 2003년부터 배터리 케이지 신축을 금지했고 2012년부터는 기존 농가에서도 케이지 사육을 금지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밀집 사육이 아닌 형태로 닭을 키우는 '동물복지 농장'들이 있기는 합니다. 닭 9마리가 최소 1㎡ 이상 공간에서, 가능한 본능대로 움직이면서 살 수 있게 해주는 환경을 조성한 겁니다.
(디자인 : 김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