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는데, 난 늘 왼쪽으로 턱을 괴고 인터뷰이의 말이 길어지면 초조해져 손에 들고 있던 볼펜을 360도로 휙휙 돌린다. 또 상대에게 질문할 땐(마치 유치원 교사처럼) 설명을 위해 양손을 많이 사용한다.
가끔씩 생기는 재밌는 일은 또 있다. 취재 중에 (좋은 의미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을 때, 스쳐 지나고 말았을 그 찰나의 순간이 영상에 담기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까, 기억 속에만 존재할 뻔 했던 어떤 사건이 기록으로 남아 두고두고 볼 수 있게 되는 거다.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몇 주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 “살아있는 천사를 만나고 오니 어때?”
소록도병원 개원100주년 취재차 출장을 다녀온 내게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한 질문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살아있는 천사는 마리안느 수녀님이다.
![소록도 마리안느 수녀](http://img.sbs.co.kr/newimg/news/20160426/200937707_1280.jpg)
기자회견은 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10년 전, 고국으로 돌아간 뒤 첫 방문이기에 수녀님의 한국말은 조금은 어눌했고, 그래서 조금은 알아듣기 어려웠다. 하지만 여느 진정성 높은 사람의 말이 그러하듯 모든 단어, 모든 문장이 따뜻했고 진했다.
● “하여튼 (기자들이) 거짓말도 하고”
갑자기 수녀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오자, 옆에 앉아 마이크를 들어 돕던 오랜 한국인 친구(이자 소록도병원의 간호사)분이 다급한 나머지 수녀님의 팔을 '찰싹'하고 때렸다. ‘으이구 이 사람아, 그런 말은 뭣 하러 해.’ 흡사 이런 말이라도 하려는 듯한 표정이었다. (방청객처럼) 그 모습을 보고 기자들이 소리 내 웃었다.
수녀님이 언급한 ‘기자들의 거짓말’은 다른 게 아니라 ‘대체 왜 나를 훌륭한 사람인 양 포장하느냐’는 것이었다.
“하루하루 사는 걸 목적으로, 내일에 대한 걱정 안 하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아니, 하루하루 사는 목적으로 그렇게, 그렇게 살았더니 43년이 지났어요.”
“하여튼 간호로서 그렇게 일하는 게, 그렇게 특별한 게 아니고요.”
(왜 지금껏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인터뷰, 하여튼 우리 특별한 거 안했으니까 그렇게 (우리에 대해) 알 필요 없어요.”
수녀님은 기자회견 내내 ‘하여튼’, ‘특별한 일 하지 않았어요’, ‘하루하루 살다 보니 43년이 된 거예요’ 같은 말을 여러차례 반복했다.
말인 즉슨, 나도 내가 고국 오스트리아에서 올 때까지만 해도 이곳에 이렇게 오래 있을 줄 몰랐다, 한 5년 있다 가야지 했는데, 주어진 일 하며 (한센인)친구들과 지내다 보니 시간이 그렇게 흘러 있더라, 왜 당신들이 나에게 이 정도로 관심을 쏟는지 모르겠다, 나도 내가 좋아서 이렇게 살았던 거지 어떤 거창한 계획이 있던 건 아니다, 이런 뉘앙스였다. 시쳇말로 정말 ‘쿨(cool)내 나는’ 할매였다.
“내가 파상풍에 걸려 독방에 있을 때야. 아주 더운 여름이었는데 새벽같이 마리안느가 들어와선 입을 '아' 벌리라고 하더니 우유를 한 방울씩 떨어트려 먹여 주더라고. 그게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어. 그러더니 나한테 한센병도 걸리기 어려운 병인데 파상풍까지 걸렸냐고, 이런 사람은 100명 중에 1명 나올까 말까라고, 당신은 정말 특별한 사람이라고 말하더라고.”
![](http://img.sbs.co.kr/newimg/news/20160512/200941724_1280.jpg)
누구도 한센인에게 다가서려 하지 않았던 그 옛 시대에, 비닐장갑 하나 끼지 않은 채 밤낮으로 간호해줬다고 한다. 마리안느는 그렇게 43년 동안 단 한 푼의 돈도 받지 않고 봉사했다. 그리고, 정작 자신이 병에 걸려 간호가 필요하자 주변 사람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며 홀연히 고국으로 돌아갔다.
“내가 아팠기 때문에 (친구) 마가렛도 같이 (고국으로) 돌아갔어요. 그날 우리도 진짜 결정하는 거 떠나는 거 아주 어려웠어요. 그래서 주교님, 신부님, 목사님에게 그렇게 이야기 이틀 전에 했어요. 그래서 하여튼 (한센인) 친구들한테도 조금 알려줘야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우리 마음 너무 무겁고, 또 아프기도 하고, 계속 그렇게 결정했었어요. 우리도 눈물 많이 흘렸어요, 그날. 우리 친구들 처음에는 모르고 나중에 조금 전화하면서 편지하면서 설명해줬어요.”
30분 가량의 기자회견을 끝낸 마리안느가 환하게 웃으며 친구와 손을 꼭 붙잡고 복도로 나섰다. 뭔가 아쉽고 충분치 않은 느낌이었다. 슬며시 곁으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수녀님, 안녕하세요. 저 SBS 류란 기자....” '혹여나 불편해하시면 어쩌지? 그런 기색이 보이면 냅다 뒤로 물러서 사라져야겠다(?)'고 다짐하던 그때,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따뜻하고 묵직한 손이 내 손을 잡았다. 나로선 ‘잡힌’ 거였다.
![](http://img.sbs.co.kr/newimg/news/20160512/200941723_1280.jpg)
두 사람과 헤어지고 나서, 영상기자 선배에게 손이 잡힌 모습이 담겼는지 확인을 부탁했다. '너무 급작스럽게 따라간 거라 프레임에 그 모습까진 안 들어갔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였다. 하지만 생생히 담겨 있었다. 그 모습은 8시 뉴스에 방영됐다.
'잘 생긴 남자한테 잡힌 것도 아닌데', 난 그 후로 몇 번 혼자 있을 때마다 그때 그 순간을 기억하고 또 기억하고 히죽히죽 웃었다. 손이 잡힌 느낌이 되게 생경했던 게, 그러니까 난 그날 그녀가 만난 수많은 기자 중 한 명일뿐, 우린 따로 어디서 인사 한번 나눈 사이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마리안느는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친구가 인사를 건네자 ‘응, 그래. 너 왔어?’ 이렇게 답하는 느낌으로, 내가 누군지 확인하려 곁을 돌아보기 전에 손부터 잡았다. 그 날 그 리포트를 본 누군가는 할머니와 손녀 사이 같았다고 했고, 또 누군가는 다정한 친구 사이 같았다고 했다.
![](http://img.sbs.co.kr/newimg/news/20160421/200936281_1280.jpg)
그리고 그 마음으로, 지난 반 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세상이 외면했던 타국의 병자들을 껴안고 어루만지며 돌볼 수 있었을 거다. 마리안느라는 사람을 단 몇 초 안에 가장 압축적으로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 감동적인 장면이 영상으로 남아있어 나는 두고두고 찾아볼 수 있게 됐다. (굉장한 행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