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이 친구야, 인간답게 살자는 말이야 - 故 김수행 교수 (1942-2015)>
안녕하세요, 김수행 입니다. 흰 머리에 불룩한 배를 가진 제가 누군지, 우리 젊은 친구들은 잘 모르겠지요.
제가 얼마 전 갑자기 멀리 떠나게 됐습니다. 그래서 힘겨운 현실과 불안한 미래에 지친 젊은 친구들에게 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럼 낯선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1942년 일본에서 태어났어요. 광복 이후 대구에서 자랐는데 집이 가난해서 공부할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돈을 벌 생각에 상업고등학교로 갔지요.
그런데 서울대 상대를 가면 4년 치 장학금을 준다고 합디다. 돈 벌겠다는 생각을 접고 서울대 상대에 들어갔어요.
저는 어렵게 자란 탓에 ‘가난’에 관심이 많았어요. 똑똑한 친구들이 가난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하는 걸 보면서 늘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죠.
경제학과니까 빈곤이라든지, 판자촌이라든지, 왜 우리나라가 못 사는지 이런 걸 가르쳐 줄 거라 생각했는데 수요와 공급이 어떻고, 시장이 어떻고... 피부에 닿는 게 없어서 화가 났습니다. 현실에 맞는 경제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돼서 남산 정보부에 끌려가기도 했죠. 그 뒤 어렵게 은행에 취직했고 런던발령을 받았는데 그곳에서 큰 충격을 받았어요. 한국에선 갖고만 있어도 야단나는 ‘빨갱이’ 책, <자본론>이 런던 서점에는 널려 있었어요.
얼마 안 돼 ‘오일쇼크’가 터졌어요. 원유 값이 폭등하면서 세계 경제가 ‘공황’에 빠져 나라마다 부도가 나게 생겼는데 대학에서 배운 수요와 공급, 시장이론으론 이 사태를 이해할 수 없었어요.
이 상황을 설명할 방법을 찾다가 마르크스 경제학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마르크스 경제학은 자본주의의 ‘공황’을 설명하면서 시장 만능주의를 비판하고 있었어요.
1982년, 마르크스 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 한 뒤 어려운 일을 겪다가 1989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가 됐습니다. 서울대학교 대학원생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현실을 연구할 교수가 필요하다’고 학교에 강력하게 요구한 덕분에 가능했지요.
교수가 된 뒤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모두 번역 했어요. 당시 검사가 이 책을 불온서적으로 보고 수사를 했는데 ‘잡아 갈 테면 잡아가’라고 했더니 결국 기소를 포기 하더군요.
제가 번역한 <자본론>은 자본과 자본주의의 모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열심히 죽어라 일을 해도 가난한 노동자들의 불평등한 현실을 분석하고 비판한 책입니다.
<자본론>이 쓸모 없는 옛날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를 한번 볼까요? 국민소득이 한 명당 2만 달러가 넘는 꽤 부유한 나라지만 빈부 격차는 여전히 심각합니다. 실업률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죠. 최저임금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이 늘고 있는데 부자들의 주머니는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20년 동안 서울대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을 가르친, 남들 말로 ‘유일한 비주류’ 교수였습니다. 모든 걸 시장에 맡기면 된다는 주류경제학과는 분명 달랐지요. 제가 떠날 때 학생들이 제 후임 교수를 강하게 요구했던 걸로 압니다. 하지만 5년이 지나도록 서울대 경제학과에는 노동과 계급, 착취와 소외, 불평등을 가르쳐 줄 교수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자본론을 어려워하던 제자들에게 했던 말을 하겠습니다. “자본론, 어려운 거 아니다. 인간답게 살자는 말이야”
* 이 글은 지난 7월 31일 심장마비로 타계한 故 김수행 교수의 생전 강의와 인터뷰, 저서를 바탕으로 1인칭 시점에서 재구성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SBS 스브스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