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http://img.sbs.co.kr/newimg/news/20150606/200842017_1280.jpg)
좌석벨트 표시등이 꺼지자마자 내 옆자리의 중년 남성은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섰고 통로 옆 좌석의 젊은 여성은 영화라도 한 편 보려는 지 주섬주섬 테블릿 PC를 켜 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나도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비행기 입구에서 받아 든 '환구시보'를 펴들었다. 눈에 힘을 주고 몇 문장 읽어 내려가다 보니 금세 눈에 피로감이 몰려왔다. '역시 난 한자 울렁증인가 봐' 그 순간 내 대각선 앞 좌석 승객이 펼쳐 든 서류 뭉치가 눈에 들어왔다.
얼핏 '눈팅'으로 파악한 그 서류는 국무원이 제작한 것으로 둥팡즈싱호 사고 개요 및 대응 수칙'을 담고 있었다. 아마도 그 사람은 이번 여객선 침몰사고 수습을 위해 현장으로 파견돼 가고 있는 정부 관리임이 틀림없었다. 순간 기자의 눈은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장 달려가 서류 뭉치를 낚아채고 싶은 마음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큰 제목 위주로 부지런히 '눈 도둑'을 했다. 다행히 앞 승객은 서류 한 장씩 넘기며 정독 중이었다.
먼저, 사고 개요 및 둥팡즈싱호의 재원과 두 차례에 걸친 구조변경 관련 내용이 눈에 들어왔고 리커창 총리의 사고 수습과 정부 활동의 효과적인 선전에 관한 지침이 뒤를 이었다. 본 자료 끝에는 부록으로 중국에서 이전에 일어난 선박 사고 개요와 전개 상황이 요악돼 있었다. 그 다음으로 지난해 한국에서 일어났던 '세월호' 사건이 등장했다. 자세한 내용까지는 파악하기는 어려웠지만 세월호 사고 수습 내용과 일정이 몇 페이지에 걸쳐 정리되어 있음은 확인할 수 있었다. 사고 며칠 만에 대통령이 현장에 왔고 며칠 만에 사고선이 인양됐고 등등 날짜들이 빼곡했다. 수시로 눈을 부릅 떠봤지만 결국 상세한 내용 파악에 실패한 채 노안 탓을 하며 두 눈이 벌게진 채 우한 공항에 내렸다. 이미 밤 10시를 넘었다. 내부 자료를 해킹당한(?) 그 관리는 마중 나온 차에 올라 어디론가 총총 사라졌다.
우리가 예약해 놓은 렌터카도 도착해 있었다. 왕 씨라고 자신을 소개한 렌터카 기사는 자기가 배가 침몰한 젠리현 토박이라며 그 일대는 자기 손바닥 안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차가 전조등을 환히 켠 채 우한-젠리현 간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와중에도 머릿속은 복잡했다. 중국 정부가 긴급 하달한 둥팡즈싱호 사고 수습 매뉴얼에 등장한 '세월호' 사고가 과연 이번 사고 수습에 어떻게 활용될 것인가? 예상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양쯔강 여객선 인양](http://img.sbs.co.kr/newimg/news/20150605/200841847_1280.jpg)
지난해 4월 사고 직후부터 한 달 가까이 CCTV 등을 통해 자국 내 사고라도 된 듯 상세히 세월호 수습 과정을 생중계했던 중국 언론과 정부의 평가는 한 마디로 "한국이 저 정도밖에 안 됐었나?"였다. 그랬던 중국이기에 세월호와 다른 듯 어딘가 흡사해 보이는 이번 사고를 지난해 한국 정부와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대응해 나가고자 할 것이다.
사고 며칠 뒤에야 박근혜 대통령이 현장인 팽목항을 찾았던 부분이나 내외신을 통해 유족들의 정부 비판을 가감 없이 전 세계에 생중계했던 당시 언론 보도 상황, 그리고 현장 구조팀과 지휘부의 미숙한 대응 속에 골든타임을 놓치고 선체 인양도 못 했던 수습 방식, 여기에 사고 원인 수사 과정에서 세모 유병언 씨 일가 비리 수사 및 추적 등으로 번지면서 몇 달간 온 나라가 혼란을 겪었던 전례를 중국 정부는 반복하길 원치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중국의 둥팡즈싱호 사고 처리 방식은 세월호 때 한국 정부의 대응과는 정반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컸다.
![양쯔강여객선인양작업](http://img.sbs.co.kr/newimg/news/20150605/200841889_1280.jpg)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잇따라 두 개의 의문 부호가 따라붙었다. 첫째, 과연 중국 정부의 의도대로 수고 수습이 가능할까? 둘째, 그런 중국식 수습 방식은 최선일까? 며칠이 될지 모를 이번 사고 취재의 방향타는 이제 이 두 개의 문제의식이 될 터였다. 비릿한 민물 내음과 함께 자동차 전조등 불빛 넘어 조용히 일렁이는 검은 물줄기가 눈에 들어왔다. 곁눈질하던 렌터카 기사가 재빠르게 껴들었다. "맞아요. 양쯔강이에요. 하지만 강둑을 따라 한 10km는 더 가야 현장에 도착합니다." 시간은 이미 새벽 1시를 넘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