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아킬레스의 병역기피와 오디세우스

아킬레스, 45kg, 오디세우스 <br>◆아킬레스 모자이크 <br>   아

아킬레스, 45kg, 오디세우스


◆아킬레스 모자이크


   아킬레스와 45kg. 이게 무슨 소리일까? 잠시 뒤에 살피기로 하고... 우선, 아킬레스 관련 모자이크 한장 보고 들어간다. 필자가 쓰는 글의 주제는 고대 그리스 로마 모자이크고, 일리아드에 나오는 트로이 전쟁의 주인공은 아킬레스다. 따라서, 아킬레스를 묘사한 모자이크는 글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이상적인 소재가 될만 하다. 아킬레스의 활약상을 전하는 관련 모자이크 사진을 많이 실었으면 좋으련만... 필자가 구한 것은 2장에 불과하다. 1장은 어린 아킬레스를 목욕시키는 장면이요, 다른 한장은 성인이 된 아킬레스가 5촌 당숙 파트로클루스와 함께 무장을 갖추고 서있는 모습이다. 이 가운데 오늘 소개할 사진은 [아킬레스의 목욕] 모자이크. 로마시대 만든 작품이다. 그리스 민족의 후예로 자부하고, 그리스어를 사용하며 그리스 정교를 신봉하는 나라 키프러스. 터키 밑 지중해에 자리하는 키프러스의 고대 그리스 로마 도시 파포스의 유적지를 탐방하면서 촬영했다. 로마시대 저택 바닥에 오늘도 그대로 남아 로마인들의 가슴 속에 살아숨쉬던 그리스신화의 세계를 들려준다. 바닥에 설치돼 있지만, 보존상태가 무척 좋다. 사진속에 선명하게 비쳐지는 고대의 잔영이 탐방객을 즐겁게 해준다. 안타까운 것은 성년 아킬레스 모자이크. 요르단 마다바에 있는 모자이크인데, 직접 촬영하지 못하고, 자료만 갖고 있어 저작권 문제로 독자들에게 소개하지 못하는 점 아쉽다.

아킬레스 목욕 장면. 왼쪽에 앉은 여인이 안고 있는 아기가 어린 아킬레스다. 어머니 테티스가 아킬레스를 불사의 신으로 만들기 위해 스틱스 강물에 목욕시키는 장면을 소재로 그렸다. 여기서 스틱스 강물은 가운데 물단지로 상징화 시켰다. 아킬레스는 어머니 테티스가 발목을 잡고 목욕시키는 바람에 발목에 강물이 닿지않아 이곳이 치명적인 급소가 됐고, 나중에 파리스의 화살에 발목의 근육을 맞아 죽었다. 그뒤 그 부위를 아킬레스건이라 부른다. 키프러스 파포스 모자이크 ®김문환

 

◆아킬레스의 목욕

 

   모자이크는 갓 태어난 아킬레스를 목욕시키는 장면이다. 제우스의 자손인 아버지 펠레우스와 바다의 요정인 어머니 테티스가 바라보는 가운데, 시녀들이 스틱스 강물에서 떠온 물로 목욕시켜 불사의 신으로 만들려는 순간을 그렸다. 왼쪽 끝에 선 여인은 암브로시아를 의인화(Persnification) 모습이다. 나중에 자세히 살펴보지만 의인화는 고대 그리스권 헬레니즘 모자이크의 전형적인 표현기법이므로 기억해 두면 좋다. 암브로시아는 신이 먹는 음식으로 신의 자손이라 해도 이 음식을 먹지 못하면 불사의 생명을 얻지 못한다. 암브로시아 옆에 앉은 여인은 시녀 아나트로페. 아나트로페의 무릎에 앉혀진 어린애가 아킬레스다. 그 앞에 아킬레스를 목욕시킬 물통이 보인다. 스틱스 강에서 떠온 신성한 강물이다. 이 강물에 목욕하면 신성을 얻어 불사의 신이 될수 있다. 가운데 홀을 들고 앉은 이가 아버지 펠레우스. 여신과 결혼할 만큼 젊고 잘생겼으며 늠름한 모습이다. 그리스 시절 홀은 신성한 신의 권위나 왕권을 상징했다. 펠레우스 왼쪽은 바다의 요정인 어머니 테티스다. 제우스와 포세이돈이 탐했을 만큼 아름다운 여신이었다.

 

   펠레우스 오른쪽으로 선 3명은 인간의 탄생, 생애, 죽음을 관장하는 운명의 여신, 3명의 파테스(Fates)다. 각자의 이름은 펠레우스 바로 옆에서부터 오른쪽으로 클로토(Clotho), 라케시스(Lachesis), 아트로포스(Atropos)다. 이 모자이크 작품에는 파테스 3명의 이름뿐 아니라 펠레우스나 테티스의 이름도 모두 그리스어로 적혀있다. 각각 개인을 보면 클로토는 실을 잣는 방추를 들었다. 탄생을 의미한다. 라케시스는 생사자의 명단을 기록하는 딥티콘(Diptychon,서판)을 잡고 있다. 아트로포스는 아킬레스의 운명이 담긴 스크롤을 든채 서있다. 죽음을 나타낸다. 성스러운 핏줄을 가진 아킬레스는 이렇게 축복받으며 태어난 뒤 나중에 트로이 전쟁당시 아카이아 연합군 최고 장군이라는 명성을 얻는다. 그러나,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초기에는 전쟁에 나가지 않으려고 도피했던, 병역기피자 였는데... 사연은 무엇일까?

아킬레스. 갓난 아킬레스지만 미래의 영웅됨을 미리 말해주는듯 건강하고 힘차게 울어젖히는 모습이다. 요즘도 여유있는 집은 그렇지만, 그리스 로마시대 집안의 모든 일은 시녀들이 맡았다. 어머니는 몸단장하고 집안 관리의 지시만 내리면 됐다. 시녀가 아기를 안고 있다. 키프러스 파포스 모자이크 ®김문환

 

◆아킬레스 여장, 병역기피

 

   아킬레스의 어머니 테티스는 아킬레스가 트로이 전쟁에 참전할 경우 죽게 될 것이란 예언을 알고 있었다. 아들의 죽음을 반길 어머니가 어디 있겠는가? 두려움에 걱정하던 테티스는 아카이아군의 트로이 원정이 모의되자, 아직 어린 아킬레스를 스키로스의 왕 리코메데스에게 맡겼다. 리코메데스 궁정의 후궁에 여자로 변장시켜, 리코메데스의 딸들과 함께 살도록 숨긴 것이다. 멀리 떨어진 다른 나라에 여장시킨 아킬레스를 아카이아 연합군이 찾아내지 못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아킬레스가 트로이 정벌에 참전할수 없을 것으로 여긴 계책이었다. 일종의 병역기피인데... 하리수도 아니고 여장이라니. 스키로스궁정에서 리코메데스의 딸들과 보낸 기간은 무려 9년. 아킬레스가 청년 시절을 전쟁 연습이 아닌 여자들과 소꿉장난 하면서 보냈다는게 새삼 놀랍다. 고대 그리스 신화 최대의 전쟁영웅이 겪은 유년시절 치고는 좀 격에 어울리지 않지만 실상은 그랬다. 평소 주변에서 얌전한 남자라고 탓할 일은 못된다. 언제 신의 부름으로 강한 남자가 될지 모를 일이니 말이다.

그리스 전차 부대.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쓴채 창을 든 전사가 말이 끄는 전차를 타고 달린다. 트로이 전쟁에서 영웅들은 모두 이런 전차를 타고 달렸다. 이런 전차병은 장수에게나 해당되고 힘없는 일반 병사들은 갑옷같은 보호장비도 없이 전쟁에 나갔다가 처참하게 죽는게 다반사였다. 이탈리아 파에스툼 박물관 도자기 그림. ®김문환

   

   아킬레스는 자신의 의지가 아닌 부모의 의지로 병역을 기피한 것인데, 요즘 한국의 병역 기피와 닮았다. 부모가 사랑스런 자식의 운명을 걱정해 병역을 면제시키려 갖은 노력을 다 기울이기는 동서고금은 물론 신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000원사를 통해 돈도 쥐어줘 보고, 병원에서 이런 저런 수술 시켜 진단서도 받아 보고, 문신도 새겨 보고... 역시 최선은 예나 지금이나 어렸을때 조치를 취하는 것. 아예 미국 가서 출산해 미국 시민권 얻으면 모든게 OK. 군대 걱정 할 필요가 없다. 타국 스키로스의 리코메데스 궁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듯이, 미국서 어린 시절 보내면 만사 형통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런 방법을 쓰려면 부모가 특권층 이어야 한다. 아킬레스의 어머니는 늙지도 병들지도 않는 불사의 여신, 아버지는 세속의 권력을 지닌 왕이다. 요즘도 재벌가나 최고의 부유층, 대통령은 아니어도 고위 공직자 정도는 돼야 가능한 일이다. 그리스 시대 평범하게 살던 일반 시민들은 여지없이 왕들의 전쟁에 끌려나가 귀한 목숨 내밀어야 했다. 영화 [트로이]에서 전쟁 영웅들의 칼날에 힘없이 죽어가는 그 수많은 병사들 처럼...

 

◆아킬레스의 발각과 한국의 45kg

 

   아! 그러나, 한국서 많은 병역기피자들이 잡히듯이 아킬레스의 병역기피 행각도 발각 나고 말았다. 아킬레스를 군에 끌고 간 사람은 누구일까? 트로이 전쟁에서 용맹도 용맹이지만 지략으로 맹활약한 오디세우스다. 영화 [트로이]에서 오디세우스는 별 비중없이 다뤄지지만, 그리스 신화나 트로이 전쟁에서 오디세우스의 역할은 대단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병역기피중이던 최고의 용장 아킬레스를 전쟁으로 끌고 나가 아카이아 연합군의 승리를 가져온 공이 가장 크다.

신전. 그리스인들은 모든 인간사 운명을 신의 뜻으로 돌렸다. 삶과 죽음, 고난과 행복의 결정권이 신에 있었다. 모든 중대사는 신에게 물어 결정했다. 신탁(Oracle)에 따라 행동했다. 영웅들의 활약상과 죽음은 개인의 능력이 아닌 신의 결정사항일 뿐이었다. 신에게 제사지내며 신의 뜻을 묻던 신전은 그래서 아주 성스러운 곳이다. 영화에서 아킬레스는 아폴론 신전을 마구 노략질 한다. 아폴론신이 대노하며 트로이군을 응원한 원인이기도 하다. 사진은 이탈리아 파에스툼에 남아있는 그리스 신전. ®김문환

 

   오디세우스는 어떻게 아킬레스를 참전시켰을까? 예언자 겸 점장이 칼카스는 "아킬레스 없이는 전쟁에서 진다"는 신탁을 일찌감치 내놓았다. 오디세우스는 이말에 영감을 얻어 타고난 수사형사의 기질을 발휘했다. 탐문 끝에 아킬레스의 어머니 테티스가 스키로스에 다녀왔다는 소문을 확인하고, 오디세우스는 스키로스로 달려갔다. [신의 아들]인데 분명 리코메데스 왕궁에 숨어 있을게 뻔했다. 팔라메데스를 비롯한 조사단 수사팀이 리코메데스왕을 만나 아킬레스의 행방을 대라고 다그치는데... 머리나쁜 사람들의 수사란 늘 이렇게 정공법에 그친다. 모른다는 발뺌에 난감해하던 수사팀에는 오디세우스가 있었다.

 

   불현듯 머리에 뭔가 스친 오디세우스는 후궁으로 들어갔다. 범죄수사는 우회해 뒤통수를 치는 방법이 더 효과적일 때가 많다. 변장도 필수. 오디세우스는 예전 최불암의 수사반장에 고구마장수가 자주 나오듯이 방물 장수로 둔갑했다. 여자들이 좋아할 물건을 잔뜩 싸가지고 가 후궁에 풀어놓으니... 리코메데스의 딸들이 입이 바가지 만해 져가지고 달려들었다. 그런데, 어느 한 여자만 시큰둥 한게 아닌가! 감 잡았다. 과거 프랑스에서 범죄자가 여장을 한채 피해다녔는데, 거울 앞에서 제모습을 들여다보지 않고 무심히 지나쳤다가 덜미를 잡힌 적이 있다. 오디세우스의 수사방법도 그랬다. 여자가 좋아할 물건에 무신경한 사람은 남자란 얘기다. 오디세우스는 슬그머니 멋진 창과 방패를 내놨다. 여장 남자 아킬레스는 본능적으로 불쑥 손을 내밀어 잡았고, 병역기피는 그자리에서 탄로 나고 말았다.

 

   일설에는 오디세우스가 리코메데스 왕궁 내실에서 전쟁 뿔나팔을 불었다고 한다. 그러자, 여자들이 혼비백산 사방으로 날뛰는데, 여자 옷을 입은 남자 아킬레스만이 무기고로 달려갔다가 탄로났다는 설도 있다. 아킬레스여! 군대를 가지않으려면 머나먼 극동의 방법 45kg이 최고의 처방이었을 것을. 가장 확실한 한국의 방법 [45kg 저체중]을 몰랐던 말인가? 아킬레스의 체중이 45kg이었다면 오디세우스는 물론 어떤 조사관이나 군의관도 깜짝 속아넘어갔을 텐데... 걸어다니는 장작개비를 누가 살벌한 죽음의 전쟁판에 끌고 가겠는가?

 

◆아킬레스의 어머니 테티스

 

   참고로 아들이 전쟁에 참여할 경우 숨질 것을 염려하는 모정 하나로 병역기피를 시켰던 모성의 여인, 아니 여신 테티스를 좀더 들여다 보자. 영화 트로이에서 여신 테티스역은 적절치 못했다. 주름이 가득하고, 검버섯까지... 왕년의 명배우 <닥터 지바고>의 줄리 크리스티를 등장시켜 과거의 향수를 그리는 팬들에게 서비스한 것 까지는 좋았지만... 그리스 신화의 실상과는 아주 다른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은 병들지도 않고,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언제나 젊음을 유지한다. 일리아드에도 아킬레스의 아버지 펠레우스는 늙어 쭈그러들지만, 어머니 테티스는 언제나 청춘의 여신으로 나온다. 아에아네스의 아버지 안키세스가 늙었지만, 어머니 아프로디테가 만년 청춘이듯이. 아무튼 테티스는 바다의 요정으로 미모가 빼어났다. 미인을 보면 꼭 만나 사랑을 나눠야 직성이 풀렸던 제우스와 포세이돈은 그녀를 호시탐탐 노렸다. 그러나, 만약 둘 가운데 누구라도 테티스와 결혼해 아들을 낳으면 그 아들이 아버지를 내쫓는다는 여신 테미스의 예언에 따라 제우스와 포세이돈이 포기하고 결국 인간 펠레우스와 결혼시킨다. 못먹는 감 찌른다고, 자신들이 못차지할 바에는 인간에게 결혼시킨 속셈이 좋아보이지 않는다. 영생의 신과 필사의 인간이 결혼하는 것은 곧 이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오디세우스의 병역기피와 소피아 로렌

 

◆오디세우스의 결혼

 

   오디세우스가 어떻게 그리 기민하게 병역기피자를 가려낼수 있었는지도 궁금하다. 결론은 죄지어 본 사람이 같은 종류의 범죄자를 발견하기가 그만큼 쉽다는 것. 한때 큰 도둑으로 널리 이름이 회자되던 조세형이 삼성그룹 산하의 국내 최대 경비회사에 취직한 적이 있다. 같은 원리다. 오디세우스도 병역기피자였기 때문에 같은 범죄를 저지른 아킬레스에 대해 날카로운 수사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스 신화의 주요인물 가운데 아킬레스에 앞서 최초의 병역기피자로 기록될 오디세우스건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일리아드에 뛰어난 지략가로 또 절제력 있는 인간성과 용맹성으로 묘사되는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에서 큰 활약을 펼치고, 나중에 일리아드의 속편 오디세이아의 주인공이 될만큼 비중있는 인물이지만, 처음에는 트로이 전쟁을 피하려 했다. 사연은 이렇다.

 

   트로이 전쟁의 표면적인 이유는 헬레네의 트로이행이다. 헬레네는 천하제일의 절대 미인이었다. 제우스의 딸이었지만, 인간세상에서 아버지역을 맡은 스파르타왕 틴다레우스. 헬레네를 아내로 얻기 위해 그리스 전역의 왕자들이 몰려 들었다. 오디세우스도 이때 끼어들었지만, 너무 지원자가 많자 꾀많은 그답게 얼른 생각을 바꿨다. 헬레네의 4촌인 또다른 미녀 페넬로페와 결혼하기로 마음먹고 작전을 폈다. 자신은 헬레네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서 빠지면서 너무 많은 구혼자들이 몰려 고민하던 헬레네의 아버지 틴다레우스에게 호감을 살 만한 멋진 제안을 내놨다. "구혼자들에게 누가 헬레네와 결혼해도 이의없이 받아들이며, 만약 결혼 뒤 헬레네의 신상에 문제가 생기면 모두가 나서 힘을 합쳐 해결한다". 이같은 조건에 맹세하는 구혼자만이 구혼경쟁에 끼어들수 있도록 한 것이다. 헬레네가 특정인에게 시집갔을 때 불만을 품은 자들이 혹시 문제를 일으킬까 염려하던 아버지 틴다레우스의 고민을 해결해준 오디세우스의 제안은 나중에 적중했던 것이다. 헬레네는 구혼자들의 맹세속에 메넬라오스와 결혼했고.. 오디세우스는 틴다레우스의 도움을 얻어 헬레네의 4촌 페넬로페와 결혼할수 있었다.

오디세우스. 트로이 전쟁에서 아킬레스 다음으로 맹활약을 펼치던 지략가 오디세우스. 병역기피중이던 아킬레스를 찾아내 참전시킨 그도 사실 신혼생활을 깨기 실어 처음에는 트로이 전쟁에 나서지 않기 위해 정신이상자 행세를 했다. 튀니지 바르도 막물관 모자이크 ®김문환

 

◆오디세우스의 병역기피와 발각

 

   세월이 흘러 헬레네가 트로이의 파리스와 눈이 맞아 도망가고, 남편 메넬라오스는 각지의 왕들에게 구혼당시 맺었던 약속을 되새겼다. 오디세우스는 이때 구혼자가 아니어서 참전의무가 없지만, 제안자로서 도의적인 책임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고민끝에 참전 요구에 응하지 않기로 했다. 징병기피.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그는 미인 페넬로페와 결혼해 아들 텔레마코스도 낳고,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행복을 깨고 전쟁터에 나간다는게 영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신탁을 들어본 결과 전쟁에 나서면 20년간 고국에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 아닌가? 20년간 미모의 젊은 아내와 갓난 아들을 홀로 내보려 둘수 없던 일. 그래서 오디세우스는 고민끝에 병역 기피를 결정했고, 아이디어를 냈다. 그러나, 그 아이디어가 좀 그랬다.

헬레네의 남편 메넬라오스는 오디세우스를 끌어들이기 위해 4촌 팔라메데스와 오디세우스의 나라 이타카를 찾았다. 사절단이 온다는 소리를 들은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왕궁을 비우고 숨었다. 사절단이 왕궁에서 마주친 것은 아름다운 아내 페넬로페와 울고있는 어린 아들 텔레마코스 뿐이었다. 어찌하나?

 

   팔라메데스의 제안에 사절단은 돌아가지 않고 사방으로 찾으러 다녔다. 일방적으로 숨기 어렵다고 판단한 오디세우스는 들판으로 나갔다. 사절단이 이소식을 듣고 들판으로 달려가 보니... 오디세우스가 정신 나간 짓을 하고 있었다. 황소와 나귀를 짝지워 쟁기질을 하는가 하면, 밭에 씨앗 대신 소금을 뿌리는게 아닌가? 소금의 염분은 농작물과 상극인데... 팔라메데스는 분명 오디세우스가 연극을 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오디세우스를 능가하는 꾀를 냈다.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를 데려와 오디세우스가 끌고 있던 쟁기 밑에 놨다. 미친 오디세우스라면 그냥 쟁기를 밀어 아들을 죽일 것이고, 미치지 않았다면 쟁기를 멈출 것이었다. 오디세우스는 쟁기를 멈추고, 제정신임을 드러낼 수 밖에 없었다.

 

◆영화 '해바라기'와 소피아 로렌

 

   [정신이상]의 병역기피를 논하니 영화 [해바라기]가 떠오른다. 60년대를 풍미했던 이탈리아 출신의 육체파 여배우 소피아 로렌이 지오바나라는 비극적인 여인으로 열연했던 영화다. 지오바나는 남편 안토니오(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와 결혼식을 올리고 행복하게 살지만, 2차 세계대전에 남편 안토니오가 징집되는 바람에 생이별의 순간을 맞는다. 막 결혼해 아름다운 신부와 헤어지는 것이 싫었던 남편 안토니오는 전쟁에 나가지 않으려고 미친 짓을 한다. 오디세우스와 마찬가지 심정이었을 게다. 심사관의 질문에 멍청하게 딴 짓을 하며 거짓연기를 성공시키는 순간. 심사관이 안토니오에게 말한다. "군에 안가도 됩니다." 그리고 심사관은 자리를 뜬다. 기쁨에 찬 안토니오는 심사관이 없는 사이 아내 지오바나를 껴안고 기뻐한다. 아 그것이 비극이 씨앗이 될 줄이야. 벽에 구멍을 뚫고 둘의 행동을 심사관이 엿보고 있었던 것. "입영" 이라는 재판정이 떨어지고 만 것은 당연하지만, 너무 잔인한 결과였다.

소피아 로렌. 이탈리아의 육체파 여배우 소피아 로렌이 출연했던 영화 해바라기는 전쟁이 인간의 삶을 인간의 행복을 어떻게 파괴하는 지 잘 보여준다. 그리스 신화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사의 행복을 위해 병역을 피하고 싶어하는 인지상정을 잘 나타내준다. (소피아 로렌 홈페이지 전재)

 

   안토니오가 전쟁터로 끌려나간 뒤 전사통지서가 날아든다. 지오바나는 그럴리가 없다며 남편이 참전했던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가 생존한 남편을 만나지만, 기억상실증의 남편은 이미 다른 여자와 결혼해 있었다. 지오바나는 귀국하고, 뒤늦게 기억을 되살린 남편이 귀국하지만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해 있는 지오바나. 다시 이별하고.. 눈물없이 볼수없는 영화 해바라기는 애상어린 영화음악으로 지금까지도 숱한 영화팬들의 사랑을 받는다. 1970년 제작당시 철의 장막 소련으로 들어가 우크라이나의 끝없는 해바라기 밭을 배경으로 촬영했던 영화. 당시 공산세계의 풍요로운 삶이 영화에 담겨 냉전에 유신으로 꽉닫힌 국내에서는 개봉조차 어려움을 겪으며 가위질 되던 영화였다. 전쟁에 나가지 않으려는 남자와 내보내지 않으려는 여자의 얘기는 그리스 신화시대부터 지금까지 현재 진행형이다.

 

◆양심적 병역기피와 미군 철수

 

   아킬레스와 오디세우스, 이탈리아 안토니오의 병역거부를 보면서 한국사회의 양심적 병역거부를 지나칠수 없다. 자기가 믿는 종교의 교리에 어긋나 반대해도 양심이요, 총들고 같은 민족과 싸우기 싫은 것도 양심이요, 집단합숙하며 국방비 갉아먹는 것 싫다해도 양심이다. 인간의 순수한 마음은 모두 양심인데... 이가운데 어느것만 골라내 양심적 병역거부라면 공정하지 못하다. 그러니, 판결이 뒤죽박죽. 이런 원칙 없는 세상에 누가 사법부는 물론 법이나 정부를 존중하리요. 국방력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인권을 존중하고, 국가의무에 만인이 예외없이 평등해지는 새로운 병역제도에 대한 논의는 요원한 것인가?

 

   그건 그렇고. 미국이 주한 병력 3만 7천명 가운데 3분의 1을 뺀다는게 요즘 뉴스거리다. 주한미군. 학창시절 "미제 용병 교육 반대"라는 구호가 떠오른다. 국군통수권이 정치경제 교과서대로 한국 대통령에게 있는 줄 오해하고 있던 신입생 입장에서 참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는데... 이런 오해를 푸는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지만, 미군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한반도에 주둔하며 북한 못지않게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일부 수구신문들은 요즘 미군 일부 철수를 맞아 미국의 불편한 심기와 한미 우호관계 균열 측면만을 강조한다. 마음에 들지않는 정권을 비판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사회개혁 저지와 미국의 이익만 높여 주는 결과로 귀결된다면 문제가 심각하다.

 

   더 안타까운 것은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한반도에 전쟁기운이 감돌며 먹구름이 끼다, 갑자기 마음 바꾸면 전쟁 위험이 줄어들며 군대를 빼도 되는 상황 자체다. 국운을 스스로의 힘이 아니라 외세에 좌지우지 당하는 처지도 뼈저린데, 미군 철수를 남북 군축,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정착, 통일의 초석다지기로 승화시키지 못한채 미군 빠진 자리에 국민의 뼛골 뺀 천문학적인 거액의 세금 들여 미국 무기 사들이는 결과로 귀착되고 마는 부조리한 인간사와 조국의 현실은 더욱 가슴을 짓누른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