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세종시 신도심 외곽을 지나는 29번 도로에서 로드킬을 당한 고라니 2마리를 발견했다. 고라니들은 3km 거리를 두고 차에 치여 죽었고 중앙분리대와 갓길에 각각 1마리씩 방치돼 있었다. 이맘때쯤 아침 일찍 지방도와 국도를 달리다 보면 고라니 폐사체가 흔하게 눈에 들어온다.
'한국고라니'(2016,국립생태원) 공동저자인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병원 부장은 로드킬이 집중 발생하는 시기가 고라니 출산 시기와 겹친다며 아마도 1년생 고라니들이 어미를 떠나 독립된 생활을 위해 새로운 서식지를 찾아가기 위해 이동을 하다가 차량 충돌 피해를 입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밤에 도로를 건너려고 찻길로 들어온 고라니는 차량불빛을 받으면 도망가지 못하고 잠시 주춤한 상태로 있기 때문에 차량 충돌에 아주 취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야생동물은 대개 안구의 안쪽, 망막 뒷부분에 휘판 이라는 반사판이 있다. 휘판은 망막을 통해 입수되는 가시광선을 반사시켜 광 수용기가 받아들일 수 있게 광량을 늘리는 역할을 한다. 쉽게 말하면 빛을 반사시켜 빛의 양을 늘리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어둠 속에서 더 잘 볼 수 있지만 빛이 산란되어 인지할 수 있는 상이 흐려지기도 한다. 이런 동물들은 야간에 충분한 빛을 받아들이기 위해 홍채를 개방한다. 이 때 차량 불빛처럼 과도한 빛에 갑자기 노출되면 모든 광수용기가 과도하게 흥분하여 일시적으로 눈이 멀게 된다. 이 때 빠른 속도로 차량이 접근하면 그대로 차에 치이고 만다.(한국고라니,113p)
이런데도 국도와 지방도 가운데 고라니 로드킬이 빈번히 일어나는 곳조차 아무런 안전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다. 우선 도로로 뛰어들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쳐야한다. 또 도로를 새로 개설할 때는 생태계가 단절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이동통로라도 만들어 줘야한다. 그리고 운전자들을 위해서 로드킬 위험을 알리는 표지판을 세워놓아야 한다. 더 나아가 길안내를 해주는 내비게이션 프로그램에 로드킬 구간을 안내해 운전자의 주의를 환기시켜주면 피해를 줄일 수 있다.
고라니는 우리나라에 유독 개체수가 많다. 농작물을 뜯어 먹어 농민들에게는 골칫거리 동물이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한국과 중국 중동부 두 곳이 서식지다. 국제자연보존연맹(IUCN) 적색목록에서는 '취약'으로 지정해둘 만큼 생물다양성 측면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
로드킬 사고는 단지 고라니만의 위험이 아니다. 차량 운전자에게도 큰 위협이며 2차 사고로 인한 인명피해로 이어지기도 한다. 고라니 로드킬을 더 이상 지켜봐선 안 된다. 폐사체를 수거하는데 그치지 말고 로드킬 발생률을 줄이는 행동을 해야 한다. 차량불빛을 멍하니 쳐다보다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고라니들의 원망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