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바로 방산비리 정부 합동 수사단의 고위 관계자 측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고위 관계자는 기자를 아는 한 인사를 통해 “군의 일방적인 주장만 듣고 편향된 기사를 쓰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누가 일방적이고 편향된 주장을 좇았을까요?
황 총장은 1심, 2심 그리고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정부는 황 총장이 국가에 기여한 공로를 높이 평가해 보국훈장을 수여하기로 했습니다. 같은 정부의 어떤 기관은 통영함 비리의 몸통이라며 황 총장을 교도소에 수감하고 어떤 기관은 이제 와서 나라에 공을 세웠다며 훈장을 줍니다.
황 총장은 교도소에서 온갖 수모를 당했습니다. 동료 재소자들은 황 총장을 방산비리 주범이라며 욕하고 폭행했습니다. 사법기관과 청와대는 이런 내용을 파악했으면서도 모른 척했습니다. 가족들은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퇴직금을 받아서, 또 대출을 받아서 변호사 비용을 댔습니다. 무죄로 밝혀졌지만 황 총장 뿐 아니라 가족도 만신창이가 됐습니다. 방산비리 수사의 피해자는 황 총장과 그의 가족만이 아닙니다.
해군의 신형 해상작전헬기 와일드 캣 사건에 연루된 장교들도 모두 혐의를 벗었습니다. 방산비리 합수단은 “와일드 캣이 작전요구성능 ROC에 못 미치는데도 시험평가서를 허위로 작성했다”며 장교들을 구속해 교도소로 보냈지만 법원은 혐의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본 취재파일 코너를 통해 여러 차례 지적했듯이 와일드 캣은 MB 정부 시절 4대강 사업에 돈 대느라 예산이 반토막 나는 바람에 선택한 대안입니다. 2013년 초 와일드 캣을 선정할 당시 정부의 가이드 라인은 5,890억 원으로 해상작전헬기 8대를 도입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현존 최고의 해상작전헬기라는 시호크는 대당 1,400억~1,500억 원이어서 배정된 예산으로는 4대밖에 살 수 없었습니다. 군은 5,890억 원으로 빠듯하게 와일드 캣을 8대 맞춰 계약했고 와일드 캣은 검찰 보란 듯이 ROC를 모두 충족했습니다.
그럼에도 와일드 캣 선정에 관여했던 장교들은 줄줄이 구속돼 감옥살이를 했고 가족들은 황 총장 가족처럼 변호사 선임에 옥바라지하느라 빈털터리가 됐습니다. 방산비리 가족이라는 손가락질도 감내해야 했습니다. 죄가 없는 것으로 판명됐지만 명예 따위는 돌아볼 겨를이 없습니다. 먹고 살 일이 막막합니다.
일부 매체가 방산비리 사건을 부풀려 연속 보도하자 2014년 10월 대통령이 “방산비리는 이적행위”라고 느닷없이 한마디 했고 정부는 부리나케 검찰을 중심으로 방산비리 정부 합동 수사단을 꾸렸습니다. 합수단은 이후 수조원대 방산비리를 적발했다며 몇 차례 수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통영함, 무기상 이규태 씨, 정옥근 전 해군 총장, 와일드 캣 사건이 가장 대표적인 합수단의 실적입니다.
그런데 통영함의 책임자라는 황기철 총장은 훈장을 받는다고 하고 와일드 캣 선정을 맡은 장교들은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규태 씨 사건과 정옥근 총장 사건은 이미 몇 년 전에 불거졌었지만 합수단의 주역인 검찰이 감사원이 국회가 덮었습니다. 이규태 씨 사건과 정옥근 총장 사건은 달리 말하면 검찰과 국회, 감사원이 몇 년 전 자행한 직무유기 또는 비리 사건입니다.
방산비리는 분명히 있습니다. 검찰비리, 언론비리, 기업비리, 사학비리가 있듯이 방산비리는 있습니다. 방산비리는 국가안보와 직결되기에 다른 비리보다 더욱 엄단해야 합니다. 그래서 방산비리 합수단은 군을 이 잡듯 뒤졌지만 실적은 요란한 빈수레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반면에 억울하게 누명을 쓴 군인들과 군의 신뢰는 철저하게 무너졌습니다. 정부는 모든 이들에게 “군은 비리 조직”이라는 인식을 심었습니다. 국산무기를 개발하다 실패해도 비리이고 실력이 모자라 개발일정을 못 맞춰도 비리라는 시각이 굳어졌습니다. “방산비리는 이적행위”라며 시작한 방산비리 수사가 되레 적을 이롭게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방산비리 합수단 출신 검사와 수사관들은 두루 승진했고 영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