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SDF 2018] 영화로 보는 '새로운 상식'…평론가 김혜리's picks

[SDF 2018] 영화로 보는 ‘새로운 상식-개인이 바꾸는 세상’, 평론가 추천작을 만나보자.
 
● 김혜리’s picks
 
<실크우드> (1983년. 마이크 니콜스 감독. 메릴 스트립 주연)
    - 당신 곁의 호루라기 

영화 실크우드
우리는 지배적 편견이나 권력에 홀로 맞서는 개인을 존경하면서도 그 사람 역시 나처럼 온갖 문제를 떠안고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생활인이라는 사실을 잊곤 한다. 내 코가 석자인 나보다 상대적으로 그들은 처지가 편하고 강한 신념을 가진 의인이려니, 유달리 사려 깊은 가족과 친구의 지지가 있으려니 가정해 버린다. 그렇게 믿어야만 대체로 순응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죄책감을 덜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영화 실크우드
마이크 니콜스 감독이 연출한 1983년작 <실크우드>의 주인공은 열사는 커녕 모범시민도 아니었으며 흔한 말로 제 코가 석자였던 블루칼라 여성이다. 메릴 스트립이 연기하는 실존인물 카렌 실크우드는 1970년대 말 원자로용 플루토늄 연료봉을 생산하는 미국 오클라호마 주 커-맥기 공장의 노동자였다. 회사가 방사능 피폭 위험을 숨기며 안전사고를 직원 탓으로 돌리고 있음을 감지한 카렌은 노조 교섭위원을 자원해 활동하고 이로 말미암아 경영진에 의해 익숙지 않은 부서로 발령받는다. 설상가상 연료봉 용접 검사 결과까지 조작되고 있음을 새 부서에서 발견한 카렌은 사측의 물밑 대응에 의해 동료들로부터 고립되고 심지어 피폭의 원흉으로 몰린다.
영화 실크우드
카렌의 삶은 회사와 투쟁하기 전부터 과제투성이다. 어린 나이에 사실혼으로부터 얻은 삼남매의 양육권을 빼앗긴 고통이 이 여성을 괴롭혀 왔다. 애인, 레즈비언 친구와 동거한다는 사실도 1970년대 미국에선 입방아거리였다. 줄담배에 남자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카렌은 메릴 스트립의 표현대로 결코 잔 다르크(성녀 투사)가 아니다.

그러나 이윤을 위해 노동자의 치명적 위험을 은폐하는 자본에게 호루라기를 불 수 있는 조건은 따로 없다. 상식을 믿고 동료를 염려하는 노동자라는 사실로 족하다. 혹자는 내부고발자의 사생활을 거론하며 사적인 불행이 투쟁을 부추겼다고 말한다. 당연히 인간의 동기는 복합적이며 오랜 싸움의 과정 역시 당사자를 병들게 한다. 그러나 이것이 사안의 쟁점을 오염시킨다면 사회 전체의 실패다. 피해자는 오점 없는 순결한 존재여야 하고 철저히 피폐한 모습을 보여야 피해를 입증한다고 믿는 지금 우리의 세태에서 <실크우드>는 결코 ‘옛날 영화’가 아니다.

영화 실크우드
2014년 타계한 마이크 니콜스 감독(<졸업><워킹 걸> <버드 케이지> <엔젤스 인 아메리카>)은 나치 독일로부터 망명한 유태계 가족 출신으로 많은 이민자 감독들이 그렇듯 미국 사회의 훌륭한 관찰자였다. 논쟁에 함몰되는 대신 카렌과 동료들의 일상과 관계를 담는 데에 러닝타임의 큰 부분을 들인 <실크우드>는 1970년대 미국 노동계급 문화의 좋은 스케치이기도 하다.    


[다른 추천작 더 보기]
▶[SDF 2018] 영화로 보는 '새로운 상식'…평론가 오동진's picks
▶[SDF 2018] 영화로 보는 '새로운 상식'…평론가 김효정's picks
▶[SDF 2018] 영화로 보는 '새로운 상식'…평론가 윤성은's picks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