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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 업자' 시절 아내의 텃밭에 화가 났는데…올해의작가상으로 이어졌다?! [스프]

[더 골라듣는 뉴스룸] 작가 양정욱

양정욱
국립현대미술관과 SBS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하는 ‘올해의작가상 2024’ 최종 수상자인 양정욱 작가는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쓰고 이를 움직이는 조각에 담아냅니다. 양정욱 작가는 사실 작업실을 정리하고 미술작업 도구도 대부분 '당근'에 내다 팔면서 작업을 접었던 시절이 있었는데요, 한동안 '당근 판매업자'로 지내던 그는 고민 끝에 올해의 작가상 전시에 참여하고 최종 수상의 영광을 안았습니다.

양정욱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밭을 가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는데요, 아파트 구석 공터를 분양받아 서투르지만 정성껏 작은 텃밭을 가꿨던 아내의 이야기도 녹아 있습니다. 그는 수고롭게 텃밭을 가꾼 사람이 남긴 '흔적'들이 바로 그 사람을 보여주고, '메시지'가 된다고 하는데요, 지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그의 작품들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친절한' 양정욱 작가가 직접 알려드립니다.
 

김수현 기자 : 심사 과정은 어떻게 진행됐는지 궁금해하실 분도 있을 것 같아요.

양정욱 작가 : 원래는 (수상자) 확정을 하고 발표를 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작년부터는 1차 심의가 있고 2차 심의가 있고 이런 식으로 됐던 것 같아요. 1차 심의는 2배수 내지 3배수 정도 추려서 발표를 한 번 하는데 사실 제안이 왔을 때 할지 말지를 고민을 많이 하고 했었어요. 왜냐하면 아이도 생기고 조금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싶어서 작업을 이제 그만하려고 하고 있던 차였어요.

이병희 아나운서 : 아, 정말요?

김수현 기자 : 진짜요? 작업을 그만한다는 건 그러면 작가로서 그만한다는 말씀이셨나요?

양정욱 작가 : 네, '그냥 글 쓰고 카페를 할까?' 그러고 있었는데.

김수현 기자 : 아, 정말이요?

양정욱 작가 : 네. 그래서 이 전시를 준비한 작품들은 제 와이프가 사무실 조그마한 거 빌려놓은 게 있었는데 거기서 작업했어요. 1년 전에 작업실도 다 정리를 했기 때문에. 홈페이지도 다 없앴고, 저한테 연락을 아예 할 수 없게. 연락이 오면 하고 싶어지잖아요. 그래서.

김수현 기자 : 아, 그래요?

양정욱 작가 : 네. 근데 누구나 좀 그런 게 있잖아요. 어떤 직업이든 3년 차, 6년 차, 9년 차, 한 번씩 흔들릴 때 오잖아요. 저도 그럴 때였던 것 같아요. 한두 번 그럴 때가 있었고 이번이 두 번째였는데, 그만두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글도 정리하고, '정말 책장수로의 삶을 살아볼까, 카페를 하면서'. 그때 둘째가 태어나기 전이기도 했고 집 이사를 하기로 한 때이기도 하고,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여러 가지 일들이 있는데 이 전시까지 제안이 온 거였어요. 작업실은 없고. 그래서 '이거 어떡하지? 다 팔고 이제 드릴 하나 남았는데'.

김수현 기자 : 아 정말이요? 어머.

양정욱 작가 : 드릴까지는 아니고 솔직히는, 뭐 큰 것들은 거의 다 팔았죠. 목재나 뭐 이런 거 다 팔고 이제 천천히. 재작년 1년간은 그래서 당근(중고거래 플랫폼) 업자였죠.

김수현 기자 : 아, 그래요? 뭘 파셨어요?

양정욱 작가 : '사포기 팝니다', '나사 한 묶음 팝니다', (웃음) 계속 그런 걸 열심히 팔고 다녔어요. 사진 찍으면서. 어떻게 하면 이걸 예쁘게 찍어서 많은 사람들이 사갈 것인가. 그런 직업을 가졌던 때였죠.
양정욱1

이병희 아나운서 : 어떻게 또 결심을 하셨어요?

양정욱 작가 : 이제 둘째를 보고... 생각을 해보면 둘째 출산 전이었는데, '열심히 해야겠다'. 그냥 다른 거, 주어진 거를 너무 생각하지 말고 열심히 한번 해 보자 이런 때였기도 했고, 그래서 제안이 들어왔을 때 고민을 하다가 '그래 맞아 그러기로 했잖아. 열심히 해보기로 했잖아.' 그래서 와이프랑 이제 해본 건데 여태까지 한 10년 좀 넘게 활동했는데 지원 사업에 대한 걸 많이 해보질 않았어요. 왜냐하면 제 작업 특성상 저는 현장에서 보는 걸 추구하거든요. 이걸 실제로 현장에서 봐야지, 각도와 높이와 때에 따라서 계속 변하고 있는 작업인데 사진으로 찍어서 설명하자니... 그러니까 '내가 사랑하는 무언가가 있는데 그걸 사진 한 장으로 설명하자니 이 시간과 이 사연들이 있는데 그렇게는 못하겠다' 하는 생각이 좀 컸고.

1차 심사 때는 심사위원분들이 해외 분들도 많이 계시니까 어떤 대본을 달라고 하셨어요. 원래는. 근데 라이브인데 대본을 드리고 통역하는 거를 내가 다시 한 번 읽는 게 무슨 소용이냐고 해서 그냥 아무 준비 안 하고 1차 심사 때는 즉석으로 답하는 걸로 했었어요. 통역도 잘 안 됐고 마이크도 고장 나서 첫 질문은 못 들었고, 질문 하나 받았어요. 밭에 대한 작업이 있어서 '작품에 과일 같은 게 나오냐?' '나올 수도 있죠.' 그게 끝이었어요 사실(웃음).

그리고 신작 제안을 받았는데 세 점 정도 드로잉을 아이패드로 급하게 한 거. 그때 와이프가 밭을 가꾸는 게 인상 깊었어서 밭에 대한 글을 쓰고 있고, 밭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어서 그냥 밭 생각나는 거, 제가 생각하는 밭, 사람의 흔적 등 스케치를 세 점 한 게 도록에 들어 있는데 그걸로 심의를 했죠. 2차 때도 또 말하다 보니까 자료는 한 점 보여드리고 그냥 말을 주로.

김수현 기자 : 말로.

양정욱 작가 :  말로 다 때웠죠.

김수현 기자 : '흔들리고 뻗어나고 올라가고 벌어지고 많아지고 고정하고 옮기고 포기하고 다시 하고 다시 하면' 이런 글들이 쓰여 있어요. '햇빛 바람 비 구름 조심 조심 하나하나 단단하게'.

이병희 아나운서 : 밭에 대해서.

김수현 기자 : 그래서 이걸로 나온 게 '아는 사람의 모르는 밭에서'라는 작품인가요?

양정욱 작가 : 네. 저 작업이에요. 발표 안 한 소설들도 꽤 많거든요. 소설이나 시 같은 것들. 거기서 작업들을 끄집어내는 거니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거기에 밭이 나왔어요. 밭이 어떤 매개였어요. 그 소설의 내용은, 어떤 사연들로 인해서 부모를 원망하면서 멀어지는 경우들도 좀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아들이 나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시골에 머물던 집에 유품을 정리하러 내려가 봤더니 조그마한 텃밭이 있는데, 농사꾼이 아니었던,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아버지가 시골 내려가서 가꾼 텃밭이 제대로 될 리가 없잖아요. 엉망진창이고 이것저것 주워서 얼기설기 묶어놓은 흔적들을 보면서 아버지를 떠올린다는 내용의 소설이었거든요.

근데 그 소설을 쓰면서 생각했던 게 어떤 흔적이 메시지를 줄 수 있다. 우리가 신발끈을 하나 묶는 것, 커튼의 매듭을 묶는 것, 옷차림을 어떻게 할지, 가르마를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할지 그런 흔적들로 심상이나 상태나 태도 같은 것들을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계속하던 때였어요. 그래서 '나는 매듭으로도 여러 가지를 표현할 수 있어. 실 하나 묶어도 이런 마음 저런 마음 표현할 수 있어' 그런 생각들을 하던 때였는데. 왜냐하면 첫째 아이 기르다 보니까 아이들이 모여 있으면 아이들이 옷 입은 것도 보이고 머리 모양도 보이고 이것저것이 보여요. 거기서 부모가 해놓은 흔적들이 보이는 거예요. 그것들로 아이들을 느낄 수 있죠. 그래서 소설 속의 아버지가 남긴 밭에서의 흔적들로 아들이 그 사람을 추억하게 해보자. '우리 아버지는 사실 이랬어. 그래, 늘 이런 분이셨지' 하면서 되돌아보는 순간들을 그린 소설이었거든요.

근데 그 소설을 써놓고, 제가 쉬고 있는 동안에 옛날 아파트 살았었고 지금은 이사 갔는데, 할머니들이 아파트 단지 조그마한 데는 무작위로 막 심어놓잖아요. 관리소에서 '안 된다. 분할을 해 줄 테니까 거기서만 경작을 해라. 추첨을 해서 10명을 뽑아줄 테니까 거기만 해라'. 이게 치열했는데 와이프가 됐어요. 근데 저는 항상 그런 것 같아요. 뭔가 일이 잘 풀릴 때는 잘 마음에 안 걸리는데 잘 안 풀릴 때는 왠지 집이 좁아 보이고 얼룩도 신경 쓰이고 힘든 생각들만 잔뜩 들잖아요. 와이프가 텃밭을 분양받았다고 했을 때 너무 화가 났어요. (웃음) 내가 일도 안 하고 이러고 있으니까 저렇게라도 하려고 하는 게 너무 속상한 거예요. 마음이. 그래서 되게 삐딱하게 그걸 봤죠.

근데 마침 제가 아파트 단지에서 왔다 갔다하면서 중고거래를 하고 있었거든요. 와이프 사무실에 짐을 갖다 놓고. 1년 내내 한 일이 그거였어요. 왔다 갔다 하면서 텃밭을 보는데 계절마다 작물들이 좀 달라져요. 근데 와이프도 소설 속 아버지처럼 처음 해보는 거예요.  토마토도 한 2개 심어보고 파도 한 3개 심어보고 여기저기 꿈들을 펼치는 거죠. 루꼴라도 심고. 공부를 한다고는 하지만 능숙함이 떨어지니까 쓰러지고 죽고, 그런 과정들이 보이는 거죠. 바람이 많이 불어도 쓰러지고, 해가 있어야 하지만 또 너무 많으면 타 죽고, 물도 필요한데 너무 많으면 다 떠내려가고. 그런 과정들을 몇 개월 동안 봐왔어요.

처음에는 '그냥 사 먹지, 상추도 천 원 2천 원에 사 먹지 왜 저러고 있어, 나와서 햇볕에 피부 다 타고 여름에 모기 물리고.' 너무 속상했는데 계속 반복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 딱 느낌이 변화하는 게 보이잖아요. 거기를 계속 반복적으로 (가꾸면서). 그러면서 밭의 흔적에서 딱 와이프가 떠오르더라고요. 토마토 2개 죽었네, 파 쓰러졌네 이런 것만 보다가 어느 순간에 탁 변하는 시점이 있었어요. 와이프가 세워놓은 철사에다가 옷걸이에다가 빵끈 묶어놓은 사소한 것들이 어느 순간 딱 보이면서 와이프가 밭에 딱 서 있는 거야. 그래서 옆의 밭을 봤더니 또 이 사람은 또 이럴 것 같고, 이 밭은 또 이런 사람이 꾸릴 것 같고. 보니까 흔적에서 사람이 느껴지네. 계속 왔다 갔다 하면서 보니까.

정성도 들어가고, 노력도 들어가고, 어떤 사람은 실망했고, 어떤 사람은 포기했고 좌절했고 그런 게 그 흔적들로 다 보이니까 되게 재미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고, 우리가 일상에서 그런 것들을 발견하기를 저는 늘 원하거든요. 제가 쓰는 소설이나 이야기도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라 일상에 다 있는 거예요. 누구랑 말싸움한 거, 직업 은퇴해서 고민하는 거, 못 자서 피곤한 거, 다 그런 뻔한 이야기들인데 그런 게 좀 많이 보였으면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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