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석·박사 학위가 모조리 가짜로 드러난 신정아(35.여) 동국대 교수에 이어 유명 라디오 영어강사 이지영(38.여) 씨 역시 학력을 위조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학력·경력을 위조해 출세하려는 풍조를 개탄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신정아 씨는 국내 최고 학부인 서울대에 합격했었고 세계적 명문대로 꼽히는 예일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는 등 가짜 학력과 경력을 내세워 젊은 나이에 교수로 임용되고 광주 비엔날레 예술감독으로 내정되는 입지전적 출세가도를 달렸다.
신 씨는 그러나 연합뉴스의 첫 보도에 의해 그동안 저지른 거짓말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거센 비난 여론이 뒤따르자 미국으로 도망가고 말았다.
급기야 소속 대학인 20일 동국대에서 추방되고 검찰에 수사의뢰되는 신세가 돼버렸다.
이지영 씨는 "중학교 3학년 때 영국으로 건너가 언어학 석사과정까지 수료했다"며 이같은 이력을 바탕으로 KBS 라디오 '굿모닝 팝스'를 7년동안 맡는 스타 진행자로 자리잡았지만 역시 학·석사 학력이 가짜로 밝혀져 중도 하차했다.
국내 간판 만화가인 이현세(51) 씨 역시 그동안 최종학력을 속여 오다 최근 대학 중퇴가 아니라 고졸(高卒)이라고 '커밍아웃'해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런 사례를 제외하더라도 학력과 경력을 위조해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거짓이 들통난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염동연 열린우리당 의원은 미국에서 정규대학으로 인정받지 못해 국내 언론에 이른바 '학위남발 학교'(Diploma Mill)의 단골 사례로 등장하는 미국 퍼시픽웨스턴대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고 해 '학력 뻥튀기'라는 비난을 받았다.
염 의원과 이 대학에서 '동문수학'한 교수 33명도 경찰에 함께 적발됐다.
작년에 49대 서울대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됐던 황라열(30) 씨는 자신이 고려대 의예과에 입학했으며 모 언론사 수습기자 경력과 격투기 프로선수 자격까지 있다고 자신의 경력을 부풀렸던 점이 지적돼 학생들에 의해 탄핵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명문대에서 MBA 과정을 마친 뒤 CNN 기자와 마젤란펀드 펀드매니저 등 신정아씨 못지 않게 화려한 학력과 경력을 날조해 자랑하고 다니던 황인태(42) 씨는 귀국 후 국내 방송계를 활보하는 대담함을 보이다 이력이 새빨간 거짓으로 탄로나 방송계에 충격을 던진 바 있다.
이처럼 학력과 경력 위조는 특정 직업이나 세대에 집중된 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전문가들은 학력·경력 위조가 만연한 원인을 실력보다 '간판'과 `배경'을 중시하는 세태와 거짓말을 스스로 합리화하고 거짓 학력·경력으로 만들어 낸 허상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심리적 현상에서 찾았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는 "거짓 학력과 경력을 내세워 성공하려는 개인에게도 문제가 있지만 실력만으로 승부할 수 없는 사회 풍토가 거짓말을 유도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곽 교수는 "'나는 이러이러한 능력을 갖췄으니까 학력 위조쯤은 해도 무방하다'는 심리로 거짓말을 하게 되고, 거짓말로 거짓말을 덮는 연쇄 작용에 의해 결국에는 가책마저 상실하게 된다"며 "학력·경력 위조는 개인의 문제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종국엔 사회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현세씨도 최근 출간한 만화 '버디'의 서문에서 자신의 학력 위조 사실을 고백하고 "학력은 25년동안 벗어날 수 없는 핸디캡이 됐다"며 학력을 속이게 된 속사정을 털어놨다.
지금까지 밝혀진 학력·경력 위조 사례는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뿐이므로 '제2의 신정아 사태'가 터지지 않도록 제도적 보완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한 한 교수는 "학술진흥재단이나 대학에 학위 검증 시스템이 갖춰져 있기는 하지만 아직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교수들 사이에서는 '어느 대학 어느 교수가 가짜 박사라더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라며 "거짓을 막을 수 없다면 거짓을 걸러낼 수 있는 시스템을 강화하는 게 대책"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정아 사태의 한 축에는 외국 대학, 특히 미국 대학 출신자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과 의존이 자리잡고 있다고 꼬집으며 "미국도 일류대학에서 엉터리 대학까지 다양하다. 대학의 국적이나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의 학문적 성취가 중요한 것이다"라고 역설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