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당시 월맹군에 의해 포로가 된
한국군 중 상당수가 북한에 강제송환됐다는 증언이 공개됐습니다.
최근 포로생활을 담은 수기 「느시」를 펴낸 베트남 참전용사
박정환씨는 13일 오전 서울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월맹 포로수용소와 캄보디아 포로수용소에서 북한행을 택할 것을
강요받았으며 북한으로 송환된 참전군의 사진을 담은 전단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전단에는 맹호부대 박승열 병장과 비둘기 부대 안학수 하사가 각각 북한의
모란봉과 김일성대학에서 찍은 사진과 함께 북한으로 귀순할 것을 선무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또한 그는 월맹군 포로수용소에서 자신을 고문하던 월맹군 대령 리쿠이가
"당신들은 미 제국주의자의 침략전쟁에 팔려온 용병이기 때문에 전쟁이 끝나도
한국군과 포로를 교환하는 일은 절대로 없으며 살길은
오직 북한으로 가는 것뿐"이라고 강요했다고 말했습니다.
박씨는 "당시 월맹 당국의 자료에 900∼1000명의 한국군 포로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미국 CIA 문서에도 한국군 포로 9명이 북한에 송환됐음을 확인하는
기록이 남아 있는 만큼 적어도 수십명의 한국군이 북한으로 끌려갔을 것"이라고
주장한 뒤 "남측 비전향 장기수와 북측의 국군 포로의 맞송환 문제를 논의할 때
북한 억류 월남전 참전자들도 함께 포함시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박씨는 미국으로 이민간 뒤에도 여러 차례 이같은 주장을 제기했으며
정부 관계자에게도 월남 참전자 북한 강제송환 사실을 확인해줄 것을
요청해왔습니다.
그러나 박씨는 전단에서 북한 귀순자로 선전하는 참전자 사진을 보았다는
증언이외에는 뚜렷한 물증이나 정황증거를 제시하지 못해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현재 우리측 자료에는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월남전 참전 실종자가 없는 것으로
기록돼 있으며 관계당국도 북한 강제송환 가능성을 부인해왔습니다.
경북대 수의대를 졸업하고 ROTC 소위로 임관한 박씨는 1967년 10월 베트남에
태권도 교관으로 파견됐다가 1968년 포로로 붙잡혔으며 북한 강제송환 직전
캄보디아로 탈주했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캄보디아 구치소에 수감됐고 또다시 캄보디아
군사정부의 북한송환 방침에 항거하던 중 그의 편지를 라오스의 미국 대사관에
전달한 월남 장교 수감자의 도움으로 1969년 극적으로 생환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포로가 된 뒤 어머니가 백방으로 생존 여부를 확인했으나
관계당국은 냉담한 태도로 일관했다고 들었으며 포로생활 502일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을때 그의 병적기록부도 이미 말소돼 나중에 복원시켰다고 폭로했습니다.
'느시'에는 영화 「킬링 필드」나 「디어 헌터」 못지 않게 죄수들이 미쳐가고
인간의 내장을 먹는 캄보디아 군인형무소의 참상과 목숨을 건 대탈주 과정이
생생히 묘사돼 있습니다.
(서울=연합뉴스) 이희용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