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포츠의 양대 실세로 평가되는 두 사람은 오래전부터 불편한 관계였습니다. 올해 초 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의 성폭력 파문이 터지자 안민석 위원장은 1월 23일 모 방송사의 TV 토론 프로그램에 나와 "이기흥 회장이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요구했습니다.
안민석 위원장은 "이기흥 회장이 물러나지 않으면 대한체육회와 대한올림픽위원회(KOC)를 분리하면 된다. 그러면 대한체육회장 선거를 다시 치러야 한다"며 KOC 분리를 주장했습니다. 이기흥 씨가 대한체육회장과 KOC 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는 것을 겨냥한 발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기흥 체육회장은 사퇴하지 않았고 KOC 분리에 대해서도 "이런 상태에서 KOC 분리라니 지금 앞뒤가 안 맞는, 애들 장난도 아니고"라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두 사람의 껄끄러운 관계는 이번 국정감사를 둘러싸고 극명하게 노출됐습니다. 이기흥 회장은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문화체육관광위 회의실에서 열린 2019년 체육단체 국정감사에 처음으로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대한체육회는 "이기흥 회장이 카타르 도하에서 열리는 제1회 도하 월드비치게임(12~16일)과 국가올림픽위원회총회(ANOC) 참석 때문에 출석하지 못했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안민석 위원장은 체육회의 해명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본 위원장이 이 일정을 보고 받고 국정감사에 불참할 만큼의 위급한 사항이 아니니 출석하라고 요청했다. 본 위원장의 요구를 거부하고 무시한 채 카타르로 출국한 것이다. 초유의 상황이고 좌시할 수 없는 사안"이라며 이기흥 회장을 강한 수위로 성토했습니다.
카타르에서 귀국한 이기흥 회장은 어제(21일) 국회에서 열린 종합감사에는 출석했습니다. 안민석 위원장은 이 회장에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헌장 50조 2항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기흥 회장이 "파악 못하고 있다"고 대답하자 "체육회장이 모르고 있다는 것은 납득이 안된다"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안민석 위원장은 "50조 2항은 올림픽 경기장이나 밖에서 정치적 행위를 금지한다는 내용"이라며 "일본의 도쿄올림픽 욱일기 반입 허용이 위배하고 있는 조항"이라고 말했습니다.
안민석 위원장은 4선의 여당(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 서울대학교 체육교육과를 졸업한 대학 교수 출신입니다. 생활체육과 학교체육을 강조하고 KOC 분리를 주장하는 대표적 인사입니다. 반면 이기흥 회장은 대한카누연맹, 대한수영연맹을 이끈 뒤 대한체육회 부회장을 거쳐 2016년 10월 통합 대한체육회장으로 선출된 입지전적 인물로 안민석 위원장과는 기반이 상당히 다릅니다. 안민석 위원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기흥 회장을 이른바 '처세술에 능한 노회한 인물'로, 이 회장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안민석 위원장을 '지나치게 권력을 휘두르는 정치인'으로 서로 폄하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두 사람의 갈등이 한국 스포츠 발전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를 보면 안민석-이기흥 두 사람의 불편한 관계만 재확인됐을 뿐 정작 올해 스포츠계 최대 화두였던 스포츠 혁신과 관련해서는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여야 간의 대립으로 중요한 증인도 채택되지 않았습니다. 대한체육회의 한 관계자가 "국정감사의 긴장감이 이렇게 떨어진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현재 우리 체육계는 산적한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각종 비리 척결, 폭력-성폭력 근절, 엘리트 스포츠와 생활체육의 균형 발전, 체육 행정 시스템 선진화 등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남북 스포츠 교류까지 완전히 난항에 빠져 있습니다. 안민석-이기흥 두 사람이 손을 잡고 힘을 합쳐도 녹록지 않은 상황입니다.
2020년 4월에 안민석 위원장은 5선에 도전하고, 이기흥 회장은 2020년 12월 대한체육회장 재선에 나설 전망입니다. 두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결과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국 스포츠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 두 실세의 소모적인 대립이 빨리 끝나기를 많은 체육인들이 바라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