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바이낸스에서 벌어진 약탈 사건에 세계가 경악했습니다. 먼저 탈취된 가상화폐의 규모가 놀랍습니다. 63억 달러, 우리 돈 약 8조 4천억 원으로 단일 사건으로 사상 최대입니다. 탈취당한 방식도 공포스럽습니다. 바이낸스 보안팀이 이상 징후를 포착한지 몇 분만에 바이낸스 경영진과 관련 직원 100여 명이 화상회의에 모여들었습니다. 모두가 탈취를 막기 위해 갖은 수단을 썼습니다. 하지만 뻔히 보는 앞에서 천문학적 자산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탈취에는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번 사건을 일으킨 해킹 조직의 정체도 화제입니다. 북한이 국가적으로 지원하는 곳입니다. 이미 여러 차례 대규모 해킹 약탈을 자행했습니다. 정리하면 국가가 뒤에 있는 첨단 떼도둑이 경비원들이 지켜보는 데도 거래소에 뚫고 들어와 천문학적 돈을 빼앗아간 셈입니다. 전 세계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업습니다.
코인데스크 등의 분석 결과 이번에 탈취된 비트코인만 1만8,270개에 달합니다. 훔쳐갈 때 시세로 약 14억 달러, 1조8,667억 원입니다. 가장 활발하게 가상화폐에 투자하는 거대 기업 테슬라보다 59% 많습니다. 한때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삼았던 엘살바도르 정부의 보유량과 비교해도 2.3배입니다. 지난해 북한의 상품 수출액 4억7,000만 달러에 대비하면 약 3배에 이릅니다. 전체 탈취액은 더 어마어마합니다. 비트코인 외에도 이더리움과 테더, USDC, 리플 등 각종 가상화폐가 빠져나갔습니다. 모두 약 63억 달러어치, 북한 연간 국민총소득(GNI)의 20%에 육박합니다.
다만 63억 달러를 모두 해킹 조직 또는 북한이 가져가지는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달러 가치에 연동되는 스테이블코인인 USDT·USDC는 발행사가 손을 쓸 수 있습니다. 테더 등이 돈을 빼돌리는데 쓰이는 것으로 의심되는 지갑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자산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실제 전체 탈취 자금 가운데 약 30억 달러를 동결하거나 확보했다고 바이낸스 측은 밝혔습니다. 글로벌 수사기관과 파트너십을 통해 도난 자산의 상당 부분을 회수, 무력화하면서 실제 손실을 축소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이 더 충격적인 것은 약탈을 초반에 파악하고도 막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앞으로 비슷한 해킹 공격이 이뤄지면 방어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얘기입니다. 왜 그럴까요?
① 개인키 탈취와 화폐 이동의 비가역성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은 블록체인입니다. 화폐의 발행과 유통을 관리하는 중앙 통제자가 없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가상화폐의 이동을 임의로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적 특성을 가집니다. 이번에 해킹 조직은 바이낸스 내부 엔지니어의 노트북에 침투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를 통해 핵심 관리자 권한과 다중서명 프라이빗 키를 탈취했고 합법적인 서명 권한을 확보했습니다. 따라서 블록체인 네트워크 입장에서 이번 약탈은 해킹이 아닌 정상 서명된 출금 이동으로 처리됐습니다. 한번 금고 마스터키가 넘어가면 훔친 돈을 들고 나가는 길에 바리케이드를 쳐도 막기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② 자동화된 대규모 분산 출금 속도
바이낸스 보안팀이 모니터링을 통해 평소와 다른 출금 패턴을 감지하고 시스템 셧다운이나 입출금 동결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실행까지 걸리는 수 분에서 수십 분 동안 공격자들은 사전 설계된 자동 거래 이행 시스템과 자동 지시문 생성 등으로 10여 개 이상의 주요 체인 지갑에서 초당 수백 건의 거래를 동시에 발생시켰습니다.
북한 해커들은 이를 통해 탈취한 가상자산을 여러 차례 쪼개 옮긴 뒤, 서로 다른 종류의 가상화폐 거래망을 넘나들며 비트코인과 이더 등으로 바꿨습니다. 한 거래망에 있던 자산을 동결이 불가능한 비트코인이나 이더로 바꿔 다른 거래망의 새 전자지갑으로 옮기는 방식입니다. 해커가 자금을 수백 개 주소로 쪼개고 블록체인을 반복해 갈아타면서 추적은 시간이 갈수록 복잡해졌습니다. 자금 이동을 동결할 수 있는 포인트는 줄고 자금 흐름은 통제 불가능한 온체인 영역으로 퍼져 나간 것입니다.
미국 FBI는 지난달 31일 이번 공격의 배후로 북한이 국가적으로 지원하는 해킹조직 '트레이더트레이터(TraderTraitor)'를 공개적으로 지목했습니다. 온체인 분석 결과 이번 탈취에 이용된 전자 지갑에서 과거 같은 조직이 행한 해킹 범죄 당시 돈의 흔적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북한 짓'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도 북한에 대해 책임 추궁이나 제재 움직임은 전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① 완전한 경제적 고립과 '제재 내성'
이미 북한은 수십 년간 누적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과 미국의 독자 금융 제재로 인해 국제 금융망에서 완전히 단절돼 있습니다. 일반적인 국가라면 경제 제재나 자산 동결이 치명타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제재 받을 대상 자산이나 정상적인 교역 관계가 전무한 북한에는 추가로 가할 경제적 압박 수단이 사실상 고갈 상태입니다.
② 사이버 범죄자에 대한 사법 관할권 부재
해킹을 주도한 라자루스(Lazarus), 안다리엘(Andariel) 등의 요원들은 북한 정찰총국의 보호 아래 평양 등지에서 국가 명령에 따라 활동합니다. 북한이 범죄인 인도에 응하지 않으면 이들을 미국이나 한국 법정에 세울 물리적·사법적 강제 집행 수단이 없습니다. 물론 북한이 최대 외화벌이 일꾼인 이들을 외국 사법 기관에 넘길 리는 만무합니다.
③ 중국과 러시아의 비협조와 유엔 안보리 마비
대북 제재의 집행과 감시를 총괄하던 UN 안보리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의 임기 연장이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된 바 있습니다. 사실상 안보리의 관련 기능이 마비됐습니다. 북한 해커들이 세탁을 거친 가상화폐를 최종적으로 위안화나 루블화 등 실제 현금으로 바꿀 주요 거점 창구가 중국·러시아계 브로커나 암시장입니다. 유엔 안보리조차 마비 시킨 양국의 태도로 볼 때 최종 환전망의 원천 차단에 협조하기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④ 군사 행동 등 물리적 보복의 불가능성
사이버 공격을 이유로 핵보유국인 북한에 물리적 공습이나 전면전을 감행하는 것도 어불성설입니다. 확전 위험이 너무 커 현실성 있는 비례적 대응 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지목된 지갑 주소를 블랙리스트에 올리거나 온체인 동결을 시도하는 기술적 차단 이 고작입니다. 실효성 있는 징벌 카드가 없다는 뜻입니다.
과거 북한은 이른바 '슈퍼노트', 미 달러화 위조에 깊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전에는 외교 행낭 등을 이용한 마약 밀수출을 했다는 혐의도 받습니다. 북한이 새로 발굴한 외화벌이가 해킹을 통한 가상화폐 약탈입니다. 투입비용, 위험성, 기대 수익 등애서 비교할 수 없는 압도적 가성비를 자랑합니다. 전 세계에서 정규 군사·정보기관(정찰총국 산하 110호 연구소 등)을 가상자산 절도와 금융 해킹 전담 부서로 운영하는 유일한 국가입니다. 앞서 봤듯 이번 해킹 약탈로만 북한 1년 무역흑자가 아닌 수출액의 3배, 북한 GNI의 20%를 벌었습니다. 이만하면 북한 경제의 근간이 되는 사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국가 경제의 핵심 산출을 약탈로 얻은 대표적인 역사적 사례가 바이킹입니다. 바이킹도 전 유럽, 심지어는 유럽 남쪽 지중해 지역까지 진출해 재화와 노비를 약탈했습니다. 1000년 전 아직 문명과 질서가 확립되지 않은 시기에 자행되던 야만적 행위가 21세기 디지털 금융자산으로 무대만 옮겨 벌어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물리적 피를 흘리지 않고, 국경을 넘지 않으며, 핵 억제력 뒤에 숨어 위험조차 감수할 필요가 없습니다. AI라는 신무기까지 주어진 상황에서 북한의 해킹 약탈이 우리 반도체보다 더 전도유망한 사업이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될 지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