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프 핵심요약
양육권 갈등 및 아동학대 위험 신호 묵살로 인한 비극:
국제 아동반환 강제집행을 앞두고 제주에서 발생한 4세 아동 사망 사건은, 가해자의 정신과 이력·잠적·어린이집 등원 중단 등 잇따른 명확한 위험 신호와 친모의 지속적 보호 요청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민사 문제로 치부하며 실질적 조치를 하지 않아 발생한 인재였습니다.
관계성 범죄 보호 체계의 반복적 기능 마비:
제주 교제 폭력 살인, 송파 납치·살인 등 피해자들의 거듭된 신고와 스마트워치 지급 등 기존 보호 조치에도 불구하고, 접근 금지실효성 부족과 단순 절차 중심 대응으로 위험을 막지 못하는 현장 대응의 한계가 계속 노출되고 있습니다.
경찰 수사권 확대와 실질적 보호 책무 강화 필요성:
형사사법 체계 개편으로 경찰의 1차 수사 및 판단 책임이 막중해졌음에도 사후약방문식 '전수 점검'만 되풀이되고 있어, 위험 신호가 감지된 초기 단계부터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범죄 예방 및 피해자 보호 체계의 근본적 재정비가 시급합니다.
지난 10월 12일 제주 서귀포시 한 주차장에서 아버지와 4살 딸이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주차된 차 안에 번개탄을 피운 흔적과 아이의 어린이집 가방이 남아 있었습니다. 아이는 불과 사흘 후면 호주에 있는 엄마에게 돌아갈 예정이었습니다. 엄마는 이제 딸을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됐습니다. 그동안 경찰에 여러 차례 딸의 안전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는데도 말입니다.
인근 상인
어제 여기 관리하시는 분하고 같이 차를 봤어요. 차를 하도 오래 대놓고 있어서. 경찰차가 생전 안 오던 차가 와서 한 10분 정도 있다가 갔어요.
01. 재회를 코앞에 두고 아이를 떠나보냈다
이들 가족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지난해 10월, 40대 남성 A 씨는 네 살 딸과 함께 호주에서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당시 이혼 소송 중이던 아내의 동의는 없는 상태였습니다. 아내는 곧바로 서울가정법원에 '헤이그 아동반환청구' 소송을 냈습니다. 이 소송은 부모가 자녀를 무단으로 다른 나라로 데려갔을 때 원래 살던 나라로 돌려보내달라고 요청하는 국제 소송 절차입니다.
올해 3월 30일, 법원은 아내가 딸을 데려올 수 있도록 하는 강제집행 허가를 내렸습니다. A 씨가 항고했지만 2심 법원 역시 딸을 호주로 돌려보내라며 아내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그러자 A 씨는 다른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10월 2일, 미국행을 이유로 아이의 어린이집 등원을 시키지 않은 겁니다. 아내는 호주 법원에 긴급 조치를 요청했고, 호주 법원은 딸의 여권을 취소해 간신히 출국을 막았습니다.
하지만 지난 10월 12일 결국 딸은 이혼 소송 중이던 남편 A 씨의 차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습니다. 아동반환 강제집행 예정일을 불과 사흘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02. 이미 수차례 신고가 있었다
아내는 지난해 11월부터 여러 차례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A 씨를 미성년자 약취, 유인과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했고, 12월에는 A 씨의 아동학대, 방임 신고와 함께 A 씨의 정신 건강 이력과 과거 자살 시도 이력을 전달했습니다.
숨진 여아 친모
애기 아빠가 자살 시도도 한 번 한 적이 있고, 정신과 약 안 먹으면 안 되는 사람이기 때문에 너무 걱정되니까 제발 좀 부탁한다.
지난 3월에는 이웃이 '아이가 계속 운다'며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아이가 늦게까지 잠을 안 자고 울었던 것'으로 결론 내렸고, 아내는 이 신고 사실조차 전달받지 못했습니다.
특히 A 씨가 미국행을 이유로 아이의 어린이집 등원을 중단한 걸 알고 경찰에 신변 보호 요청을 했지만 경찰은 아내의 신고를 단순 민원으로 처리했습니다. 아내가 경찰로부터 받은 건 '조치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대답뿐이었습니다. 그로부터 나흘 뒤 딸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03. 무엇을 놓쳤을까?
아내는 딸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조치를 다 했습니다.
숨진 여아 친모
제주도에서 여러 개의 사건들이 있는 걸 내가 봤는데 제발 우리 아이는 그 사건이 되지 않게 제발 (우리 아이를) 좀 확인해 달라, 15분 동안 제가 호소를 했습니다. 정말로 15분 동안 이 분은 듣기만 했어요.
경찰에 거듭 딸의 소재와 안전 확인을 요청했고, 호주대사관을 통해 관계 기관에 협조를 구했습니다. 지난 6월에는 국민신문고를 통해 제주경찰청에 정식 민원을 제기하며 아동학대 신고에 대한 경찰의 조치 내역까지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결국 딸을 잃었습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경찰과 지자체 아동 보호 담당 부서는 8차례나 부녀를 직접 만났고, 아동학대 의심 신고에 대한 현장 조사도 이뤄졌습니다.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와 절차가 존재했고, 실제로 여러 차례 조사도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아내가 마지막 신고를 했을 때 경찰은 부녀를 다시 들여다보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마지막 신고 직전 A 씨와 아이에게선 어린이집 등원 중단, A 씨의 미국행 언급과 잠적이라는 새로운 위험 신호들이 있었는데도 말이죠.
경찰은 양육권 문제는 민사 영역이며 자녀 반환을 강제로 집행할 권한이 경찰에는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또 이전까지 8차례에 걸쳐 부녀를 직접 확인했지만 위험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아이 엄마가 마지막으로 요청한 건 딸을 강제로 데려와 달라는 게 아니라 딸이 어디에 있는지, 지금 안전한지를 확인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경찰이 그 마지막 신고를 확인만 했더라도 결과는 바뀌었을지 모릅니다.
04. 반복되는 경고, 반복되는 비극
지난 10월 12일 새벽, 제주시 연동에서는 40대 여성이 전 연인의 흉기에 찔려 숨졌습니다. 피해자는 지난해부터 스토킹과 교제 폭력 등의 피해를 4차례나 신고했습니다. 하지만 가해자에 대한 접근 금지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경찰은 피해자가 정식 사건 접수를 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강제 조치 대신 긴급 신고용 스마트워치와 호신용 경보기를 지급했습니다. 하지만 이 스마트워치도 범행 당시 가해자에 의해 뜯겨나가면서 피해자는 버튼을 누를 수조차 없었습니다.
10월 11일에는 서울 송파에서 가정폭력으로 경찰의 보호를 받던 20대 여성이 남편에게 납치됐고, 이 과정에서 여성의 어머니가 흉기에 찔려 숨졌습니다. 가해자에게 내려졌던 접근 금지 명령이 끝난 지 불과 11일 만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피해 여성도 경찰이 지급한 스마트워치를 가지고 있었지만 당시 전원이 꺼져 있었습니다.
이 세 사건은 모두 다른 사건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위험을 알리는 신호와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이미 있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경찰의 대응은 피해를 막는 데까지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05. 또다시 전수 점검
잇따른 사건이 발생하자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전국의 관계성 범죄 사건과 피해자 안전 조치 현황을 전수 점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스토킹과 교제 폭력, 가정폭력 사건 가운데 고위험 대상자와 이미 종결된 일부 신고까지 다시 살펴보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경찰이 전수 점검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3월, 경기 남양주에서 발생한 스토킹 살인 사건 이후에도 비슷한 전수 점검이 진행됐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관계성 범죄는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06. 커진 수사 권한, 책임은?
경찰의 헛발질이 계속되는 가운데 경찰의 수사 책임은 오히려 더 중요해졌습니다. 지난 10월 2일 검찰청이 폐지되고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이 출범했습니다.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새로운 형사사법 체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겁니다. 검사의 직접 수사와 직접 보완 수사 권한이 사라지면서 일반 형사사건의 1차 수사를 담당하는 경찰의 판단과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물론 신고를 받고 위험에 처한 시민을 보호하는 일은 검찰청 폐지 이전부터 경찰이 맡아온 역할입니다. 그런데 반복된 신고에도 위험을 막지 못했다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살인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경찰은 대응 체계를 점검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합니다. 하지만 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건 사건이 발생한 뒤의 점검이 아니라 위험을 알리는 순간 실제로 작동하는 보호 체계일 겁니다. 경찰의 책임이 더욱 무거워진 지금 그 책임에 걸맞은 실질적인 변화가 필요해 보입니다.
Deep Dive Q&A
Q1. 제주 서귀포 아동 사망 사건에서 친모가 '헤이그 아동반환청구' 소송에서 승소했음에도 경찰이 현장 안전 확인을 거부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A1. 경찰은 자녀 양육권 및 반환 문제는 기본적으로 민사적 영역에 해당하며, 경찰에게는 자녀를 강제로 데려오거나 집행할 직접적인 법적 권한이 없다는 점을 해명 이유로 들었습니다. 또한 이전에 8차례 부녀를 직접 면담했을 때 학대나 위험 징후가 포착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친모가 요청한 것은 강제 집행이 아니라 부친의 자살 이력과 등원 중단·잠적 등 새로운 위험 신호에 따른 '소재 및 안전 확인'이었음에도, 이를 단순 민원으로 분류해 대응하지 않으면서 방임 논란이 발생했습니다.
Q2. 최근 발생한 관계성 범죄들에서 피해자 보호 장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 공통적인 한계는 무엇인가요?
A2. 가해자가 범행을 결심한 경우에는 사전 예방 조치들이 무력화된다는 한계가 드러났습니다. 제주 교제 살인 사건에서는 지급된 스마트워치가 가해자에 의해 물리적으로 뜯겨나가 신고 버튼조차 누르지 못했고, 송파 가정폭력 사건에서는 접근 금지 기간이 지나자마자 범행이 자행되었습니다. 피해자의 신고 거부나 정식 사건 미접수를 이유로 강제 조치를 철회하고 기계적 장비 지급에만 의존하거나, 한정된 기간의 접근 금지에만 의존하는 수동적 보호 체계의 사각지대가 공통 원인으로 지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