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전경
조카를 결박한 채 숯불 열기를 가해 숨지게 한 80대 무속인에게 살인의 고의가 증명되지 않았다며 형을 대폭 낮춘 2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파기됐습니다.
대법원 3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무속인 심 모(81) 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깨고 지난달 23일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습니다.
심 씨와 그의 자녀들, 조카, 신도 등 공범 6명은 2024년 9월 18일 인천시 부평구 음식점에서 30대 여성 A 씨에게 3시간 동안 숯불 열기를 가해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심 씨는 조카인 A 씨가 가게 일을 그만두고 부모가 있는 울릉도로 가겠다고 하자 "모친을 죽이고 싶어 하는 악귀를 제거해야 한다"며 '숯불 주술의식'을 하겠다며 A 씨를 결박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심 씨는 신도와 자녀를 동원해 철제구조물을 제작한 뒤 그 위에 A 씨를 엎드린 상태로 묶었고, 밑에 놓인 대야에 불이 붙은 숯을 계속 넣어 열기를 가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들은 A 씨가 여러 차례 의식을 잃었는데도 이런 행위를 계속하다 결국 의식을 완전히 잃자 현장을 정리하고 2시간 뒤에 119에 신고해 "숯 위에 엎어졌다"는 등 거짓 진술을 했습니다.
A 씨는 이틀 뒤 화상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부전 등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1심은 심 씨의 살인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무기징역을 선고했으나, 2심은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증명되지 않았다며 상해치사죄를 적용해 징역 7년으로 형을 대폭 감경했습니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은 피고인이 피해자의 사망 가능성을 충분히 예상했고 사망해도 어쩔 수 없다는 인식이 있었을 경우 인정됩니다.
심 씨의 자녀들을 포함한 공범 6명도 1심에선 살인·살인방조 혐의가 인정돼 징역 10∼25년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선 상해치사·상해치사방조죄만 적용돼 징역형 집행유예가 선고됐습니다.
2심 재판부는 심 씨에게 살해 동기가 있었다거나, 나머지 피고인들이 열기를 어떤 방식과 강도로 얼마나 가할지 구체적으로 알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머지 피고인들과 피해자가 심 씨의 영적 능력과 주술의식의 효험을 상당히 신뢰했던 상태였으므로 미필적 고의를 추단 하는 데에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심 씨 등에게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고 피고인들 사이의 순차적·암묵적 공모도 이뤄졌다고 봐야 한다며 살인죄를 유죄 취지로 판단했습니다.
대법원은 "피고인들의 '주술의식'은 이들의 무속신앙을 고려하더라도 지나치게 잔인하고 위험한 데다가 40년 경력의 무속인 심 씨도 한 번도 시도해 본 적 없는 행위"라며 "굿이나 제사 등의 통상적인 무속 행위와 달리 최소한의 안전이 보장된 의식이 아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주술의식으로 악귀를 퇴치하겠다'는 의도와 '주술의식으로 A 씨가 사망할 수도 있다'는 인식은 양립할 수 있다"며 "설령 주술의식의 효력을 진정으로 믿었다 해도 사망의 위험성을 현실적으로 인식한 이상 '악귀 퇴치 의도'를 이유로 살인의 고의를 부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은 주술의식 전 위험성을 듣고 여러 차례 지켜보고도 제지하지 않아 방조죄가 적용된 피해자의 오빠와 사촌언니(심 씨 자녀)에 대해서도 "구호 조치를 전혀 하지 않고 방치하는 등 살인 범행을 용이하게 했다"며 부작위에 의한 살인방조를 인정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