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와 재난, 그 이후> 취재파일 읽기
☞ [취재파일①] 수색·확인·재발방지…유족에게 넘어온 국가의 일
☞ [취재파일②] 죽음의 이유를 모른 채 애도할 수 있을까?
☞ [취재파일③] 유족이 호미 들고 찾은 유해…뒤늦게 시작된 재수색
추석을 보름여 앞두고 이영문 씨는 아들 허재용 씨의 이름이 걸린 한 사찰을 찾았다. 공양미를 올리고 법당에 들어가 향을 피운 뒤 한동안 기도했다. 가족들은 허 씨의 생일과 명절, 스텔라데이지호가 침몰한 3월 31일이면 이곳을 찾는다. 이 씨는 매달 초하루 기도회에도 가능한 한 빠지지 않으려고 한다. "올해는 될까, 내년에는 될까" 하며 아들을 기다린 시간이 어느새 10년을 향하고 있다.
스텔라데이지호는 2017년 3월 31일 남대서양에서 침몰했다. 한국인 8명과 필리핀인 14명, 모두 22명의 선원이 돌아오지 못했고 허재용 씨도 그 가운데 한 명이었다. 이영문 씨가 아들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보다 넉 달여 전이었다. 어머니는 음력 생일을 맞은 아들에게 미역국을 끓여줬고, 출국을 앞둔 아들은 다음에 돌아오면 어머니의 다리 수술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참사 뒤 몇 년 동안 이 씨는 아들의 생일이나 명절이 돌아올 때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유해를 찾지 못해 장례를 치를 수도, 찾아갈 묘소나 납골당을 마련할 수도 없었다. 다른 참사 가족들이 자녀가 좋아했던 음식을 준비해 납골당에 다녀왔다는 글을 볼 때면 부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너무 속상했어요. 부럽고. 그런데 차마 그걸 부럽다고 해서도 안 되잖아요."
참사 직후 가족들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구명벌을 포함해 수색을 계속해 달라고 요구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가족들의 요구는 침몰한 선체를 찾아 실종자의 흔적을 확인하고 침몰 원인을 밝혀 달라는 쪽으로 이어졌다. 정부가 심해수색을 결정한 것은 참사 발생 1년 4개월여 뒤인 2018년 8월이었다. 미발견 구명벌을 확인해 실종선원의 생사 여부를 파악하고 선체를 찾아 침몰 원인을 규명한다는 목적이었다. 그해 12월 정부는 심해수색 전문업체 오션 인피니티와 약 48억 4천만 원 규모의 계약을 맺었다. 계약에는 선체를 수색하고, 발견 시 미확인 구명벌의 위치를 확인해 선체의 3D 이미지를 작성하며, 기술적으로 가능한 경우 항해기록저장장치
(VDR·선박의 블랙박스)
를 회수하는 작업 등이 포함됐다. 하지만 가족들이 기대했던 유해 수습은 과업에 들어 있지 않았다.
그 차이는 실제 수색이 시작되면서 드러났다. 2019년 2월 침몰 해역에 투입된 수색 업체는 스텔라데이지호의 선교
(배를 조종하고 항해를 지휘하는 곳)
를 비롯한 선박 잔해를 발견했고 VDR도 회수했다. 해저에서는 사람의 뼈로 보이는 물체와 작업복으로 추정되는 물체도 확인됐다. 정부는 유해로 추정되는 대상을 수습해 달라고 업체에 요청했지만, 업체는 특수 장비와 기술이 필요해 당시에는 수습할 수 없고 추가 협의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외교부 역시 유해 수습은 애초 계약 과업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침몰 원인을 밝히기 위해 회수한 VDR도 데이터 칩이 훼손돼 일부 자료만 추출됐고, 침몰 당시 상황을 온전히 복원하지는 못했다.¹
결국 첫 심해수색은 선교와 선체 잔해, 사람의 흔적까지 확인했지만 유해를 수습하지도, VDR 기록을 온전히 복원하지도 못한 채 계약이 끝났다. 가족들이 이후 ‘2차 심해수색’을 요구한 것은 그래서였다. 별도의 예산을 마련하고 계약을 맺어 다시 침몰 해역으로 가서 유해를 수습하고, 첫 수색에서 밝혀내지 못한 침몰 원인을 더 규명해 달라는 것이었다.
2차 심해수색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는 예산과 책임 주체 문제가 걸림돌이 됐다. 국회에서는 첫 심해수색 결과와 추가 수색의 필요성을 논의하는 공청회가 잇따라 열렸고, 외교통일위원회에서는 2차 수색을 위한 100억 원 규모의 예산을 반영하는 방안이 거듭 논의됐다. 상임위 단계에서 증액안이 의결되기도 했지만 최종 예산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기획재정부는 스텔라데이지호가 민간 선박인 만큼 원칙적으로 선사가 책임져야 하고 정부가 이미 첫 수색에 예비비를 지원했다는 점, 국가가 민간 선박의 수색 비용을 반복적으로 부담하면 다른 사례에도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었다. 반면 외교부는 가족과 국회의 요구를 고려해 추가 수색 예산을 확보하려 했지만 최종적으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사람을 데려와 달라"는 요구는 이제 어느 부처가 수색을 추진하는지, 예산은 어디에서 결정하는지, 국가와 민간 선사 가운데 누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지를 둘러싼 문제로 이어졌다.
가족들은 2020년 2차 심해수색을 요구하며 국가인권위원회에도 진정을 냈다. 외교부가 추가 심해수색을 하지 않아 가족들의 기본적 권리가 침해됐다는 취지였다. 2021년 인권위는 정확한 침몰 원인을 규명하고 미수습자의 유해를 수습하기 위해 추가 심해수색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법적 형식은 '권고'가 아니라 국무총리에게 한 '의견표명'이었다. 다만 가족들이 추가 수색 미실시에 따른 국가 책임을 묻는 재판을 이미 진행하고 있다는 이유로 진정 자체는 각하했다.
가족들은 첫 심해수색 관련 자료를 확인하기 위해 외교부의 정보공개 거부처분을 다투는 행정소송도 진행했다. 추가 수색을 요구하는 과정은 국회의 예산 심사와 인권위 진정으로 이어졌고, 첫 수색 자료를 확인하기 위한 정보공개소송도 별도로 진행됐다. 하지만 이 가운데 어느 한 절차의 결론도 곧바로 2차 심해수색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2차 심해수색 예산 논의가 국회와 정부 부처에서 이어지는 사이, 침몰 원인을 판단하는 해양심판은 별도로 진행되고 있었다. 가족들이 부산지방해양안전심판원에서 스텔라데이지호 심판이 열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2020년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과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허재용 씨의 누나이자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참사 대책위원회 공동대표인 허영주 씨는 그 전까지 정부 관계자들을 여러 차례 만났지만 해양심판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나 가족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안내는 받지 못했다고 했다.
가족들은 이후 '해양사고의 조사 및 심판에 관한 법률'을 직접 찾아 읽다가 '이해관계인'으로 심판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해관계인으로 인정되면 해양심판에서 변론을 맡는 심판변론인을 선임하고 관계 자료의 열람·복사를 신청할 수 있으며, 심판장의 허가를 받아 심판에 참여해 의견을 낼 수 있다. 가족들도 이 제도를 활용했다. 재난피해자의 참여권을 다룬 정책연구는 가족 인터뷰를 토대로, 해심원이 가족들에게 심판 진행 사실이나 '이해관계인' 제도를 먼저 안내하지 않은 점을 설명했다.²
2023년 12월, 부산해심은 스텔라데이지호의 구조적 취약성에 불충분한 보수·유지, 허용되지 않는 격창 양하
(여러 화물창의 화물을 고르게 내리지 않고 일부 화물창을 먼저 비우는 방식)
등 선사의 관리 소홀이 겹친 것이 침몰의 중요한 원인이 됐다고 판단했다. 이후 선사가 재결에 불복하면서 사건은 중앙해양안전심판원으로 넘어갔고 가족들도 이해관계인으로 2심에 참여했다.
중앙해심은 2026년 3월 25일 재결에서 개조 이후 선체가 취약해진 데다 장기간 피로손상
(반복적인 힘을 받으면서 생기는 손상)
이 누적되고 선사의 안전관리 소홀까지 겹쳤다고 판단했다. 이로 인해 항해 중 선체가 손상되고 침수가 확대되면서 침몰한 것으로 봤다. 참사 발생 거의 9년 만에 나온 해양심판 2심 재결이었다. 그러나 선사는 이 재결을 취소해 달라며 대전고등법원에 소송을 냈다. 부산해심과 중앙해심에 이해관계인으로 참여했던 미수습자 가족들은 이번에는 피고 보조참가인
(피고를 돕기 위해 소송에 참여하는 지위)
으로 재결취소소송에 참여하고 있다.
형사재판은 크게 두 갈래로 진행됐다. 먼저 결론이 난 것은 선박의 결함을 관계 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책임을 다룬 선박안전법 위반 사건이었다. 검찰은 안전한 항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결함을 신고하지 않은 혐의로 선사 전 대표이사 등을 기소했고, 2024년 7월 대법원은 전 대표이사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가족들은 전 대표이사가 기소됐다는 사실을 언론을 통해 알았고, 재판 기일이 바뀌어도 별도의 통지를 받지 못해 직접 진행 상황을 확인해야 했다. 선박안전법 위반 사건에서 가족들은 형사절차상 피해자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다.³
또 다른 형사재판에서는 선사 임직원들의 과실로 배가 침몰하고 22명이 돌아오지 못하게 됐는지를 따졌다. 참사 발생 약 5년 뒤 선사 전 대표이사 등 임직원 7명이 기소됐다. 부산지방법원은 2024년 2월 전 대표이사에게 금고 3년, 전 해사본부장에게 금고 2년을 선고했고 공무감독에게는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나머지 임직원 4명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다. 1심은 노후 개조선에서 반복적으로 결함이 확인됐는데도 필요한 점검과 수리, 안전조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일부 피고인의 과실로 인정했다. 다만 승인된 적재 조건과 다른 격창 적재·양하 방식이 선체를 손상시키고 실제 침몰로 이어졌다는 검찰 주장까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달 17일, 항소심은 이 부분에서 1심과 다른 판단을 내렸다. 부산고법은 격창 적재·양하가 선체의 구조적 손상과 취약성을 키워 침몰을 일으키거나 가속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했다. 또 전 대표이사와 전 해사본부장이 반복적으로 보고된 결함을 알고도 필요한 조치를 충분히 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1심에서 인정하지 않았던 격창 적재·양하와 침몰 사이의 인과관계를 항소심에서는 인정한 것이다.
다만 형량은 1심보다 낮아졌다. 전 대표이사는 금고 2년, 전 해사본부장은 금고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공무감독은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전 대표이사와 전 해사본부장에 대해서는 유족들과의 합의와 공탁, 별도 사건의 확정판결 등을 양형에 고려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미수습자 가족과 대책위는 과실과 인과관계의 인정 범위가 넓어졌는데도 형량은 낮아졌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허영주 씨는 "1심에서 인정하지 않았던 격창 양하라는 굉장히 중요한 침몰 원인을 인정해 당연히 1심보다 더 강한 형량이 나올 것으로 생각했다"며 "업무상 과실과 인과관계를 더 인정해 놓고 어떻게 형량을 깎아줄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 검찰과 피고인 측이 각각 상고하면서, 사건은 대법원 판단을 받게 됐다.
허재용 씨 가족들이 처음 거리로 나온 것은 참사 한 달쯤 뒤였다. 광화문광장에 나갔을 때 세월호 참사 가족들이 찾아왔다. 허경주 씨는 당시 세월호 가족들이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들을 끌어안고, 자신들이 3년째 싸우고 있는데도 해양수산부가 달라지지 않아 또 다른 가족들이 같은 고통을 겪게 됐다며 미안해하던 모습을 기억한다. 당시만 해도 허 씨는 동생을 찾고 침몰 원인을 밝히기 위한 가족들의 노력이 10년 가까이 이어질 줄은 몰랐다고 한다. 어렵게 첫 심해수색이 결정됐을 때는 배를 찾으면 침몰 원인도 밝히고 동생을 데려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첫 수색에서는 유해로 추정되는 대상을 확인하고도 수습하지 못했고, 2차 심해수색은 시작되지 않았다. 이영문 씨는 "아들의 장례를 치러주고 가야 눈을 감을 것 같다"고 말한다. "유가족이 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미수습자 가족이 아닌 유가족이 되고 싶습니다." 허경주 씨도 훗날 동생을 만났을 때 "누나가 너 때문에, 엄마 때문에,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너에게 부끄럽지 않다"고 말하고 싶어서 끝까지 싸운다며 눈물을 닦았다.
내년 3월 31일이면 스텔라데이지호 참사 10주기다. 그동안 가족들은 사람을 찾기 위해 심해수색 계약을 들여다봤고, 다시 수색해 달라며 정부 예산의 흐름을 쫓았다. 해양심판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돼 직접 법률을 읽어 '이해관계인'으로 참여했고, 선사가 재결취소소송을 내자 이번에는 피고 보조참가인이 되어 다시 법원으로 향했다. 수색과 예산, 침몰 원인 조사와 형사책임이 서로 다른 기관과 절차에서 다뤄지는 동안 그것들을 하나의 참사로 이어 붙이는 일은 오로지 가족의 몫이었다. 아들을 데려와 장례를 치르고 싶다는 어머니의 바람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 바람이 언제 이뤄질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이영문 씨는 이제 팔순을 앞두고 있다. (끝)
¹ 「스텔라데이지호 '블랙박스' 복원…“사고 당시 상황 분석”」, 『연합뉴스』, 2019. 7. 29.
² 현 인권환경경영연구소, 『진상규명 과정에서 재난피해자의 참여권 보장 실태와 개선방안 연구』,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 정책연구용역 보고서, 2024. 12. 15., 72~74쪽.
³ 같은 보고서, 74~75쪽.
방송 다시보기(2026.9.26 TV 방영)
☞ [뉴스토리 580회] 명절이 더 아픈 사람들-참사와 재난, 그 이후
(영상취재·편집: 김태훈)